나는 왜 이렇게 지우지 못할까

by 정유쾌한ㅅㅅㅣ

수영장에 있던 마음이 현실로 돌아왔다. 버스 안의 라디오에서는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라가 뒤숭숭하니 마음도 뒤숭숭했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날이 차츰 어두워지고 있었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댁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빠뜨린 준비물이 없는지 확인했다. 트렁크 안에 담아둔 짐들을 나보다 정리를 잘하는 남편이 차곡차곡 정리하였다. 새벽 5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새벽 1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했다. 두 시간 정도만 눈을 붙이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빠뜨린 준비물이 없는지를 재차 확인했다.


‘여권은 가방에 넣었고...’


알람을 설정하려고 휴대폰을 만지는 순간 아차 싶었다. 얼마 전부터 휴대폰에 저장 공간이 가득찼다는 알림이 자꾸 떴다. 여행 떠나기 전에 사진을 노트북에 옮기려고 했는데 깜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잽싸게 거실로 향했다. 남편은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기 먼저 자요. 휴대폰 용량이 부족해서 사진을 노트북에 옮기려고요.”


남편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내가 미리미리 하라고 했잖아. 그냥 자!”


얼굴이 상기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사진을 몇 장이라도 지우려다가 멈추었다. 사진마다 지울 수 없는 이유를 만들며 지우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지우지 못할까.‘


자책을 하며 침대로 향했다.




우리 다음 글에서 만나요.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