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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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도 할 겸 외국인 친구 한 명 정도는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와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싱가폴로 돌아간 그와 한 달에 한 번 정도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겨울에 만났던 우리는 몇 개월이 지나 여름에도 만나게 되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 장대비가 굵직하게 쏟아져 내렸다.
날이 좋으면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돗자리 펴고 치킨을 먹으려고 했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려 63빌딩에 갔다.
오래전 일이어서 어떤 전시회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관람료가 비쌌던 것은 기억이 난다.
알바 같은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어서 월급이 넉넉하지 않아 관람료가 부담이 되었다.
전시회를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우산을 썼어도 대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운동화와 바지 끝단이 젖었다.
여의나루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비에 젖은 운동화를 보니 갑자기 나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점심값 아끼려고 편의점 도시락 먹는 주제에 무슨 전시회야. 말도 안 통하는 이방인과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그에게 그간 쏟았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오빠네 식구와 저녁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급하게 헤어졌다.
처음에는 영화 같은 우연한 만남이 신기하고 설레었다.
남자 주인공 모르게 혼자 영화를 찍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는 여자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는 더 이상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 뒤로 가끔 그의 안부 메시지가 와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내내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정말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아직도 친구로 연결되어 있는 그를 찾았다.
1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 홍당무가 된 얼굴로 그의 이름을 클릭했다.
2022년에 마지막으로 올라온 그의 결혼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그를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