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생일이다. 어머니가 생일을 맞은 나를 위해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마침 생일날이 휴일이라 부푼 기대를 가슴에 안고 남편과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아침 9시에 시댁에 도착하니 마당 수돗가 옆에 소금에 절여진 배추 여섯 포기가 축 늘어져 있었다.
“왜 이제야 왔어? 김치 담가야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어머니와 나는 파를 다듬고 남편은 무채를 썰었다. 어머니는 내가 주방에서 가져온 김칫소에 넣을 재료들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재료를 다 준비한 다음 원형 고무 통에 무채를 담았다.
어머니는 눈대중으로 고춧가루, 뉴슈가,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미원, 새우젓, 소금을 하나씩 넣었다. 고춧가루가 허공을 가르며 무채 위로 떨어질 때마다 붉은 꽃잎들이 흩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은 고무장갑 낀 손으로 재료들를 버무렸다. 무채에 양념이 스며들면서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김칫소 마사지가 끝나고 어머니는 맛을 본 후 부족한 재료를 더했다. 김칫소를 버무린 다음에 남편과 내가 맛을 보았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절인 배추에 김칫소를 넣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내 생일 맞는 거지?’
김치를 다 담그고 뒷정리를 한 다음에 숨 돌릴 틈도 없이 오이도로 회를 먹으러 갔다. 내 생일이지만, 점심 메뉴는 어머니가 정했다.
‘오늘 내 생일 맞는 거지?’
설핏 스치는 생각을 쓱쓱 지웠다. 오이도로 가는 차 안에서 본 창밖 풍경은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연초록 잎이 돋아난 나뭇가지와 노랗게 핀 개나리.
오이도에 도착하니 정오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횟집에서 싱싱한 가자미회와 갑오징어회를 먹었다. 제철을 맞은 가자미는 고소하고, 갑오징어는 달았다. 마음속에 스쳤던 의문이 가벼운 바람처럼 금세 사라졌다. 감사한 마음으로 회를 맛있게 먹었다. 회를 먹으며 잠시나마 생일 기분을 내보려 했지만, 바다를 볼 여유도 없이 곧장 시댁으로 출발했다. 차로 왕복 네 시간 거리를 오가느라 피곤했는지 눈만 감아도 잠이 쏟아졌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남편은 땅콩밭에 비닐을 씌워야 한다며 하얀색 목장갑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둥그렇게 뜬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씩 웃었다.
땅콩밭에 내 마음처럼 까만 비닐을 씌었다. 어머니와 남편은 삽으로 흙을 푸고, 나는 비닐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꽉 붙잡았다. 바람이 불자 종이 꽃가루 대신 흙가루가 날려 입안으로 흙이 들어왔다. 퉤, 생일날에 이렇게 일을 많이 할 줄이야.
“오늘 내 생일 맞는 거지?”
아침부터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던 말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머니와 남편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옷에 묻은 흙을 털고 허리를 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는 작업복을 입은 채로 김치냉장고에 있던 코다리를 꺼냈다. 왜간장을 듬뿍 넣은 코다리찜과 미나리, 부추를 담뿍 넣은 미나리 부추전을 뚝딱 만들었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저녁 한 상이 따뜻하게 차려졌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는 어머니를 보니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밥을 한 수저 떴다. 그 위에 남편이 두툼한 코다리 살을 올려 주었다. 그제야 비로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의 손맛과 남편의 다정함이 내 생일을 채워주고 있었다.
'오늘 내 생일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