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생일이다.
시어머니가 맛있는 밥을 사준다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
생일날이 마침 휴일이라 부푼 기대를 가슴에 안고 남편과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아침 9시, 마당 수돗가에는 소금에 절여진 배추 여섯 포기가 축 늘어져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김치 담가야 하는데...”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고무장갑을 꼈다.
절인 배추에 속을 넣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내 생일 맞는 거지?’
김치를 담그고 뒷정리를 한 다음에 오이도로 회를 먹으러 갔다.
내 생일이지만 점심 메뉴는 어머니가 정했다.
‘오늘 내 생일 맞는 거지?’
설핏 스치는 생각을 지우개로 싹싹 지웠다.
오이도 횟집에서 싱싱한 가자미와 갑오징어 회를 먹었다.
감사히 맛있게 먹었다.
오이도에서 회만 먹고 바로 시댁으로 출발했다.
회를 먹으려고 차로 왕복 4시간 거리를 오갔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땅콩 밭에 비닐을 씌워야 한다며 남편이 하얀색 목장갑을 건네주었다.
둥그렇게 뜬 눈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히죽 웃기만 했다.
어머니, 남편과 셋이서 한 팀이 되어 밭에 내 마음처럼 까만 비닐을 씌었다.
어머니와 남편은 삽으로 흙을 푸고 나는 비닐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꽉 붙잡았다.
꽃가루 대신 바람에 흩날리는 흙가루가 머리부터 운동화까지 감쌌다.
입안으로 흙이 들어왔다.
퉤, 생일날에 이렇게 일을 많이 할 줄이야.
“오늘 내 생일 맞는 거지?”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그 말이 스프링이 되어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머니와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옷에 묻은 흙을 털고 허리를 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는 작업복을 입은 채로 김치냉장고에 있던 코다리를 꺼내 왜간장을 듬뿍 넣은 코다리찜, 미나리와 부추를 담뿍 넣은 미나리 부추전을 뚝딱 만들었다.
저녁 한 상이 그득하게 차려졌다.
이마의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는 어머니를 보니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얀 밥을 한 수저 떴다.
그 위에 남편이 두툼한 코다리 살을 올려 주었다.
'오늘 내 생일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