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들을 보낸다.
십여년 전 중고로 구입한 TV가 있었다.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과 어제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빠르게 새로운 TV를 구입 하였다. 최신형으로 구입하고 싶었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다보니 결국 기존과 비슷한 크기에 화질만 좋은 녀석으로 구입했다.
오래된 친구를 보내고 새로운 친구를 맞이하기 위해 청소를 했다. 청소하는 김에 내방도 같이 청소를 하였다. 청소를 하다 보니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먼지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해 결국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옷 정리도 좀 할겸 옷장을 열어보니 낡은 신발 상자가 하나 보였다. 뭐가 들어 있지? 생각이 나지 않는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안에는 내가 스무살쯤 부터 그 당시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을 담겨져 있었다. 청소를 하다 말고 상자 속에 들어있는 사진이며 상품 라벨이며 그안에 잠겨져 있는 추억들을 차례 차례 꺼내 올렸다. 매번 그렇지만 옛 것들을 보면서 기억이 나는 것도 있고, 가물가물한 것도 있었다. 사진의 한뭉텅이가 끝나갈 무렵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사진을 보았다.
언제 들어가 있었는지도 모를 이십여년 전 처음 사귀었던 사람의 사진이 있었다. 잊고 지내고 있었다. 첫사랑의 사진을 보면서 가장 먼저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다.
지금 잘 살고 있을까 ??
다들 이런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오만하고 이기적인 생각임에는 분명 틀림이 없다. 간혹 살다가 한번쯤은 마주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십년이 지나도록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역시 옛것은 옛것 그대로 남아 있을 때가 아름다운 것이라 그 자리에 고스란히 다시 넣어둔다.
본의 아니게 대청소를 하니 버릴 것이 상당히 많았다. 사두고 몇 년 동안 한번도 꺼내입지 않은 옷이며, 노트와 책들이 즐비했다. 버리기 가장 아쉬운게 책이었다. 한번 읽고 좋은 책이라 고이 모셔두고 한번도 찾지 않으니 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8월의 마지막 떠나 보냈던 강아지가 벌써 4주기를 맞이했다. 나는 매해 여름 많은 것들과 이별한다.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도 슬슬 끝자락이 보이는 듯 싶다. 다만 이별하기가 아쉬워 여름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 멋지게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내게 왔던 많은 것들에게 안녕을 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