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타고르는 자신의 아내를 이렇게 표현했다. “당신은 시인인 내 마음속의 시인이다”라고 말이다. 이렇게 멋진 아내와 함께한 타고르는 그녀와 마지막을 맞이할 때까지 그의 시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십 년 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라며 본 ‘일 포스티노’란 영화가 있었다. 비록 늦게 보았지만, 영화를 보고 받은 큰 감동에 밀려오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혹은 채 가시기도 전에) 이 영화는 네루다의 시로 그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한다.
네루다의 ‘시(詩)’란 제목의 시는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쳐 가슴에 까지 와닿아 후벼 팠다. 그렇게 임팩트 강하게 뭔가가 훅하고 치고 들어온 느낌은 처음 받았다. 그의 시는 내가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것과 내가 말하려고 했지만 말로 표현 못했던 것들을 표현한 그 자체였다. 그저 막연한 무언가만 가슴에 그리고 입안만 머금고 있었는데, 네루다 시인은 그것을 멋지게 표현해 낸 것이다. 그것도 아주 명료하고 세련되게 말이다. 이런 격이 시인과 일반인의 차이이란 것을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나름 내 고독과 사랑의 느낌을 이리저리 머리 굴려가며 표현한 몇 개의 시는 분명, 그것 나름대로 그럴듯해 보였다.
However, 이 마저도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이란 시를 접하고서 마치, 돌멩이에 산산조각 깨어지는 유리 창문처럼 내가 시랍시고 끄적인 것들은 모두 쓰레기로 만들었다. 그는 단 세줄의 詩로 그의 시를 접하는 모든 이들을 예쁘고,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나에게는 필요한 갖가지의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들이 그에게는 단 몇 마디의 순박한 단어들로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태어나게 했다. 어디서 들은 말이라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시인들은 한 편의 시를 쓸 때 그에 알맞은 한 단어,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몇 개월 혹은 몇 년의 시간을 고민한다고 들었다.
도올 선생님의 말을 빌어, 고독과 사랑이 없는 시는 詩가 아니라 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사랑을 하는 자가 이별을 알 수 없듯이, 이별을 경험한 자만이 그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인들은 인생의 쓴맛, 단맛 등 별의별 맛을 다 맛 보아 본 사람일 것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또한, 유시민 작가는 그의 유튜브에서 도종환 시인과 함께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김훈의 시적 표현에 감명받은 듯 시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시인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자신은 도저히 그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 말한 것이 기억이 난다.(혹시 내 기억이 정확 치는 않아도 이와 비슷한 발언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손님으로 온 도종환 시인을 치켜세우려는 겸손한 표현인 듯싶었다.
나는 시인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뭔가가 그러지 못했다. 시인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그들의 사상이나 그들이 가진 정신과 감정 같은 것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의 비하면 티끌의 티끌의 정도도 안 되는 수준의 글을 쓰며 시를 말하고 있으니 참.. 말 다했다. 이별이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가 쓰고 싶다.
피천득의 수필 책 ‘인연(因緣)’에 나온 시로 마무리를 한다.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가 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