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보통 하루 두 번 산책을 나간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서 항상 다른 코스로 산책을 다녀오는데 한 번은 꼭 산으로 산책을 나선다. 이유는 사람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 등산길은 목줄을 풀어주고 편하게 맘껏 뛰어놀 수 있어서 그렇다. 물론 여름에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와 산길을 안다. 하지만 여름철에만 만나는 불청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안충- 이라는 벌레인데 이것들이 개들 눈에 새끼를 깐다. 사람이야 벌레가 눈에 보이면 손을 저어 날려버리든가 입으로 바람을 불어 쫓아내면 그만이지만 개들은 무방비 상태로 당한다. 그것이 잘못되어 뇌까지 들어가게 되면 큰일 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산에 가는 것은 여름철은 될수록 피하라고 하였기에 나는 이 녀석들을 데리고 겨울에 자주 산으로 산책을 간다.
오늘 춥다는 건 뉴스를 봐서 미리 알았지만 이 정도로 추울지는 몰랐다. 영하 10도 정도로만 알고 여느 때처럼 두터운 점퍼와 장갑 그리고 약간 두텁고 귀를 덮어 주는 귀마개가 있는 모자로 아주 단디 무장을 하고 길을 나섰다. 시내에서 산으로 가는 길까지는 그렇게 춥다는 느낌보다는 “오~ 영하 10도의 추위는 이 정도로 군” 하며 견딜만하네 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막상 산으로 올라가는 길부터 어째 예감이 좋지 않았다. 손끝부터 약간 얼얼한 느낌이 들었는데 산에 오르다 보면 몸에 온기가 돌며 괜찮아 지겠지 위로하며 오르기 시작한 것이 잘못의 시작이었다.
내가 감지한 추위에 대한 경계심과는 반대로 강아지들은 어느정도 산에 올라가서 목줄을 풀어주자 나를 벗어나 자유를 위해 필사적으로 내달리듯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신나 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신나 하면서라는 말은 는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신이 난건지 지들도 추워서 열을 내기 위해 냅다 뛴건지 나로써는 알 방도가 없다. 다만, 멀리 갔다가 다시 나에게 왔다가 다시 달려갔다가 달려 오기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산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한 50미터 정도 올랐을까 이 부분부터 산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코로 숨쉬기가 미안할 정도로 코끝이 찡해졌고, 눈 옆으로 스치듯 부는 날카로운 바람은 그 날카로움이 옷들의 빈틈 사이로 비짖고 들어와 칼로 찌르는 것처럼 눈에 눈물을 맺히게 했다.
이건 아니다(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싶어 개들을 불렀다. 불러 보았지만 좀 전에 말했듯이 이녀석들은 나와 달라도 한 참 달랐다. 추위와는 무관한 듯 보였다. 오히려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 힘이 생기는 듯 더 잘 뛰고, 냄새를 맡는 동작을 무한정 반복할 뿐이었다.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었다. 내가 뒤에서 한참을 불러도 쳐다보기만 할 뿐 내려올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주인아 이 정도 추위로 벌써 집에 가려고?? 우린 이제 막 산책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너도 우리처럼 막 뛰어봐?? 그럼 신나고 하나도 안 추울 거야 ?? 그리고 넌 두터운 옷도 껴입어서 안 추울 거야”
라고 비웃는 듯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 말을 듣고 나도 바로 맞장구 해주었다.
“너희들은 따뜻한 이중 털로 온몸을 무장한 주제에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내가 발에 부상만 없었더라면 여느 때처럼 너희들보다 산을 더 뛰어다녔을 거야”
라고 실은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말해도 못 알아들을 테니 말을 안 했다 아니 안 했다기보다는 너무 추워서 입이 얼어 내입이 아니었다.(젠장) 그때 산 위로 뛰어다니는 녀석들을 보며 잠시 옛 기억이 되살아 났다. 스물한 살 한 겨울의 철원에서 보낸 군대시절을 나는 어떻게 견뎌냈는지 보통은 이럴 때 예전 생각을 떠올리며 그래 그때도 그렇게 추웠는데도 잘 견뎌내지 않았는가. 지금 이까짓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니올시다. 지금은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고, 오늘도 이런 말을 사용하기 좀 그렇지만 보다 더 생생하게 묘사를 하자면 “불알이 얼어버릴 것 같이 더럽게 춥고 추워 뒈지겠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산바람은 정말 장난이 아니게 쉬지도 않고 불어 닥쳤다. 만약 북한의 특수부대가 몰래 남한을 침입했다가도 이런 추위를 맛보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개인적으로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나는 추운 게 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 중에 하나가 되었을 정도다.
결국 개들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아 주인이 개들의 말을 따랐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 산책이 아닌 약수터가 있는 곳 정도의 거리라서 도착 후 바로 그렇게 발길을 돌렸다. 올라가는 길은 일정한 템포에 맞게 올랐지만 내려오는 길은 급한 똥이라도 마려운 사람처럼 황급하게 내려왔다. 옆에서 맹렬한 소리와 함께 불어오는 칼같은 바람에 정신없이 내려오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벌써 다 내려와 있었다. 그렇게 오늘 오전의 산책은 급 마무리 되었는데 산을 한참을 내려오고도 계속 아쉬움이라도 남듯이 산쪽을 바라보는 개들을 보며 미안함을 느꼈다.(난 추워 죽겠다. 주인 좀 살려주라)
최근 일 년 내내 김어준의 월말 김어준을 정기구독하여 듣고 있다. 다양한 내용이 있어 좋고, 내가 모르는 영역( 알고 있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을 배우고 간접적으로 알 수 있어 참 좋아 잠들기 전 반복하여 듣고 있다. 그중에서 극지와 극한을 택하며 산에 오르는 두 전문 산악인 홍성택과 박정현 씨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오늘과 같이 강한 추위를 경험해 보니 그들의 이야기가 더 실감나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매번 들을 때마다 살아서 돌아왔으니 죽을 고비를 웃으면서 이야기 한다지만 이분들은 언제나 항상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도전한다는 사실이 그들을 훌륭하다고 하는 것 같다. 오늘 내가 경험했던 아주 짧고 강한 혹한기 산책은 그들에 비할 바는 안되지만 나를 다시는 정신 차리게 해준 아주 고마운 경험이었다. 그나저나 추운 건 정말 싫다.
어느새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는 강추위가 빨리도 찾아온 듯 하다. 이번 겨울은 좀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역시 내뜻대로 되는 일 하나 없다. 그럼 뭐 어쩌겠는가 내가 옷을 더 따뜻하게 입던가 마음을 더 따뜻하게 먹으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