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의 힘
고민이 생길 때마다 달렸다. 달리다 보면 웬만한 고민들은 몸을 스치는 바람과 함께 서서히 달리는 몸의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보통은 그러했다. 이번에도 다가온 고민을 떨쳐버리려 달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달리는 내내 그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달리다 보면 사라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 달렸다. 하나, 달리기를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고민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달리기로 지친 몸에 비례헤 고민은 더욱 무거웠다.
평소에 잠을 잘 자는 편이지만 눈을 감아도 고민에 빠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생각이 한없이 나아갔다가 되돌아왔다가 되풀이할 뿐이었다. 고민에 대한 스트레스는 일에서도 나타났다. 평소 집중력 귀신이라는 별명과 맞지 않게 일을 할 때 딴 생각에 자주 빠졌다. 집중하지 못했고, 집중을 했다가 다시 고민에 빠져 멍 때리기를 반복했다.
고민을 없애보고자 오랜만에 성당을 찾았다. 꼭 내가 필요할 때만 찾는 것 같아 약간 죄스러움과 송구함으로 지금 당장의 나를 위로받고 싶었다. 기도를 하면 좀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기도를 열심히 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하나,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결국, 동네 친구를 만나 별생각 없이 내가 가진 이야기를 하다 고민도 함께 이야기 했다. 그러니 술 마신 다음날 북엇국으로 해장을 한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얹힌 것이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생각한 해결책들을 다 해봐도 없어지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참 신기했다. 이때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이 생각났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만나면 몇 시간이고 대화를 하는구나”
“저 사람들도 평소에 고민들을 이렇게 대화를 푸는 사람들이구나”
라고 말이다.
이전까지 나는 몇 시간이고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쩜 그리도 할 얘기가 많을까 생각했었다. 뭔 놈의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느낀 것은 청자의 힘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이야기를 주도 하고 대화를 이끌어가는 편이었던 나로서는 반성을 하게끔 만들었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말하는 사람 또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며칠에 걸쳐 내게서 떨쳐 낼 수 없던 고민이 한순간에 한 사건으로 인해 해결됐다. 이런 경험을 겪어보니 내가 가진 대화의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가지는 어떤 이가 내게 무심코 건네는 말들을 전혀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때의 나처럼 앓던 고민을 무심히 털어놓는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으로 온전히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한번 청자의 힘은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내 고민은 사라졌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몸도 가벼워졌다. 다시 한번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달리고 싶어졌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것이 그때는 왜 그리도 무겁게 가슴안에 달고 살았는지 후회된다.
자 이제 글도 마무리 했으니 달리러나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