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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늙어가는 처지

어미와 자식

by 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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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머리 염색을 해봤다. 첫 번째 염색은 대학생 때 내 인생 최대의 일탈의 행위로 염색을 하였다.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니 내 머리의 3분의 1도 흰머리로 흘러 내렸다. 이번에도 용기 내어 일탈을 하였다. 예전엔 체대생이었기에 염색하고 나서 선배한테 많이 혼났다. 하지만 지금은 염색을 하니 다들 잘했다고 좋아한다. 세월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내려진다.


일요일 저녁 화장실에 엄마의 쓰다 남은 염색약이 보였다. 호기심에 작은 일탈을 해보았다. 염색약을 머리에 발라 이 대 팔 가르마를 만들었다. 염색약이 잘 스며들기 바라며 이 대 팔을 유지한 채 방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가 웃으신다.


“왜 웃어??”


내가 물었다.


“네가 염색을 하니 이상하네ㅋㅋ”


라고 말을 하며 계속 웃으신다.


“학씨~!! 뭐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염색 뭐 돼??”


라고 유행어를 덧붙여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엄마와 나에겐 젊음이란 단어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 염색을 하고 나니 십 년은 젊어 보인다는 엄마의 말에 팔랑귀처럼 빈말인지도 모르고 히죽히죽 거리며 새까맣게 변한 머리를 보며 학씨아저씨 흉내를 연발하며 그 어색함을 달랬다.


또 다른 어느 날이었다.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엄마가 다시 웃는다.


“왜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항상 날씬했던 배가 이제 여느 아저씨들처럼 볼록 뛰어나온 것을 보고 뭐라 한다.


“뭐 아저씨 배가 다 그렇지 뭐 학씨~~”


라고 웃음으로 때워 본다.


부상을 핑계로 오랜 기간 쉬는 날이면 누워만 있다 보니 배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니 반쯤 열린 문으로 이미 잠들어 있는 엄마의 배가 보였다. 어미와 자식 아니랄까 봐 나의 배와 닮아 있었다. 젊은 시절 날씬했던 엄마는 온데간데없이 머리와 배는 이미 엄연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나도 곧 엄마 뒤를 따라갈 것 같다. 같이 늙어 간다는 것이 세상사 모든 일에 유쾌하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넘어갈 수 있어 좋은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와 몸이 둔해진 것이 조금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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