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
휴일이 되면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매번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결국 잠도 오지 않아 개들과 산책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사람 없는 한적한 곳을 향해 산책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났다. 주위 온 가득 퍼진 아카시아꽃내음이 그 정체였다. 하천 길에 길게 쭉 늘어선 아카시아 나무들을 보며 잠시 행복에 빠졌다. 한 공간을 가득 채운 아카시아 향기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과천 막계리란 동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현재는 서울랜드가 그 자리에 터를 잡았다. 그때도 봄이 되면 늘 아카시아 향기가 났다. 그래서일까 집 근처에는 양봉장도 있었다. 거의 매일을 날아다니는 꿀벌들을 볼 수 있었다. 가끔 벌에 쏘여 울면서 된장을 바르는 날도 많이 있었다.
아이가 벌에 쏘여 울었다는 소식을 들은 양봉장 주인아저씨는 집에 찾아와 미안한 마음에 꿀을 나눠 준 적도 있었다. 아카시아꽃에서 얻은 꿀로 만든 거라는 양봉장 아저씨가 가져온 꿀을 맛본 이후로 벌들이 더 이상 밉지 않았다. 어쩌다 먹는 한 숟가락의 꿀이 어찌나 맛있던지 아끼고 아껴 먹었지만 늘 생각보다 빨리 없어졌다.
하루는 동생와 산에서 놀다 땅벌 집을 잘못 건드려 온몸을 벌에 쏘이며 허겁지겁 도망친 적이 있었다. 엉망진창이 된 몰골로 울면서 나타난 우리들을 본 엄마는 우리를 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어릴 적부터 쏘였던 벌침에 단련된 덕분(?)인지 기도가 막히거나 알레르기 반응은 없었다. 보통 벌침과 다르게 땅벌의 침의 통증은 톡 하고 쏘는 듯이 아팠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나 어린 시절은 지금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과 함께 살았다. 계절에 따라 방앗개미와 메뚜기 그리고 땅강아지 등을 어디에서나 보고 잡았다. 또한 밤이 되면 뻐꾸기소리도 매일 들렸고, 반딧불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동생과 산에서 놀다가 뭔가 신기한 게 있어 집으로 가져왔다. 소나무 밑에 지팡이처럼 생긴 것을 가져오니 엄마가 이거 어디서 찾았냐고 물어보길래 엄마를 그곳에 데려갔다. 함께 있던 것을 더 캐왔다. 바로 영지버섯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영지버섯은 한약방에서 좋은 약재로 쓰여 좋은 가격에 판매를 할 수 있었다. 다음에 이런게 있으면 또 가져오라는 말과 함께 태어나서 처음 엄마에게 용돈이란 걸 받았다. 그 이후로 도라지나 더덕 등 신기하게 생긴 것을 보면 집에 가져갔다. 하지만 매번 용돈을 받지는 못했다.
그 시절엔 소달구지와 지게를 진 사람 그리고 허수아비가 흔했다. 지금 이런 걸 어린 시절에 경험해 봤다고 하면 못 믿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나이가 몇이길래 그런 삶을 살았냐고 되물어 본다.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자란 사람은 모를 수도 있지만 지금 사십 대이고 약간 지방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이야 예전보다 살기 편해진 것들이 많아 좋기도 하지만, 가끔씩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뛰놀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더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