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 좋은 소식
태수형의 갑작스런 커밍아웃에 일단은 방어는 했지만, 그래도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이렇게 가만히 혼자서만 봐서는 누가 또 상대편으로 들어오겠단 생각에 점호를 마치고 같은 방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평소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놈들도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성에 대한 이야기할 때 그들은 눈빛부터 남달랐다. 내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형은 그녀에 대해 뭐 아는 거 있어요??”
나는 마치 엄청 아는 것처럼 그녀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녀의 이름과 같은 기숙사라는 걸 빼면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무슨 과인지, 성격은 어떤지, 몇살인지, 무얼 좋아하는지 결국 아는게 전혀 없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우선 그녀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유심히 알아가보기로 했다.
먼저 그녀 주위부터 알아봤다. 그녀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은 기숙사 식당인데 그녀는 늘 다른 여학생과 같이 밥을 먹으러 왔다. 아마 같은 방 사람이라 추측된다. 다행히 기숙사에서 단 한번도 남자와 밥먹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으로 보아 기숙사에는 남자친구가 없는 것 같았다.(다행이다.)
그녀를 알아가는 동시에 논문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들락날락 했었다. 거의 매일같이 도서관을 집 드나 들듯이 하다보니 도서관에 일하시는 분들과 친해졌다. 이것이 훗날 내게 큰 도움이 될줄을 꿈에도 몰랐다. 이것은 뒤에 말해보도록 하겠다. 바쁜 와중에도 그녀를 알아가는 하루 하루가 매우 즐거웠다. 그렇게 꿈만 같은 청춘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인 4월초 저녁 점호를 위해 층장들이 행정실에 모였을 때 태수형이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성일아, 이 여자는 어떤 것 같아?”
“형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거예요?”
“어 그렇게 됐어 허허허”
형이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굳힌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나는 몰래 그녀의 사진을 봤다. 이때부터는 다른 여학생들의 사진과는 다르게 그녀의 사진만 두드러지게 보였다. 점호를 마치고 다른 층장들은 모두 돌아갈 무렵 방으로 돌아가려다 한번 더 그녀의 사진을 보고 가자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잠깐 본다고 본 것이 오래 볼 줄은 몰랐다. 사진에 빠져 있던 내게 여사감이 슬그머니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성일 학생 혹시 마음에 드는 사람 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자 사감은 다른 사람들도 마음에 드는 사생이 있으면 꼭 여기서 사진을 확인하고 간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제서야 나도 쑥쓰러워하며 그녀의 사진을 가르키며 말했다.
“이 여학생이 자꾸 눈에 들어 오네요”
내가 좋아한다는 여학생이 누굴까 궁금해 하던 사감의 얼굴은 그녀의 사진을 확인하자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무표정으로 변하였다. 사감의 표정에 나는 단번에 그녀에게 이미 남자친구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감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였다.
“성일학생 이 학생에 대해 알아요?”
“아니요. 그냥 이름이랑 식당에 몇 번 마주친 것 밖에 없는데요.”
“이 학생 귀가 좀 불편한 친군데 그래도 괜찮아요?”
“귀가 불편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진희 학생은 귀가 좀 불편해서 보청기를 껴요. 그거 몰랐어요?”
“아..그래요 전혀 몰랐는데요.”
그렇다. 나는 그녀를 식당에서 잠깐 보는 정도라 자세히는 보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귀가 좀 불편하면 뭐 어때’ 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행정실을 나오며 그녀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 이후로 행정실에 일이 있을 때면 그녀의 사진을 잠깐식 보고 갔다.
아침과 저녁 그녀가 오는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니 그녀와 마주치는 날이 많았다. 그녀를 보게 된 날은 하루의 기분 좋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여느 때와 똑같이 점호를 마치고 잠깐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던 내게 여사감이 다가와 말했다.
“성일학생 그렇게 마음에 들면 내가 진희 학생 불러 줄까요?”
‘불러줄 수 있다고요?”
‘그렇구나. 사감은 사생을 부를 수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연결되는 고리가 없어 막막해 하던 내게 사감의 그 말 한마디는 어둠속 한줄기 빛과 같았다. 내 머리속엔 이미 행복 회로가 가동되고 있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지만 이미 사귀는 상상까지 하고 있었다.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 사감의 말로 현실로 되돌아왔다.
“왜 싫어요?”
“아..아니요. 아직 준비가 안되서요. 하지만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급하게 행정실에서 나왔다. 행정실을 나오면서 얼굴에 티는 안냈지만 “앗싸!!” 라고 속으로 외쳤다. 이때부터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실제론 그렇지 않지만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숙사 방에 돌아와서 행정실에서 얻은 쾌거(?)를 말했다. 다들 본인들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좋은 소식의 기쁨을 만끽 위해 같은 형이 야식을 시켜 주었다. 다들 한입 가득 족발을 입안에 머금었지만 주된 안주는 나의 짝사랑 이야기였다.
야식을 먹으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녀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의견을 나누었다. 각자의 필살기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꽤나 그럴듯하게 들렸다. 하지만 믿음은 가지 않는다. 왜냐 같은 방 사람들 중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적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를 제외하곤 다들 키보드 워리어 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들의 이야기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잠이 든 시각에도 나는 침대에 누워 그녀와 대화를 주고 받는 가상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반복했다.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행복한 꿈을 바라며 잠이 들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