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Vol.9 그게 뭐가 문젠데??

by 민감성





오전 그녀의 이별 통보가 있고 나서 평소 잘 웃던 내가 웃음기 없는 얼굴을 하자 다니자 사람들의 걱정하듯 물었는데 그 질문이 누구나 같았다.


“무슨 일 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저녁이 되어 밤 사람들에게 헤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이후로 만나는 과 선, 후배들은 물론 기숙사 사람들마다 둘이 엄청 잘 어울렸는데 대체 왜 헤어졌냐고 되물었다. 나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처지였다.


생각없는 며칠이 흘렀다. 내 삶의 한 축이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게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모든 이별 노래가 모두 내 노래되고, 세상 사람들 중에 나 하나만 슬픔에 빠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문자 하나를 보냈다.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잠깐 나와 줄 수 있어?”


오전에 보낸 문자에 늦은 밤에 답이 돌아왔다.


“오빠 미안해요 오빠랑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요.”


그녀에게 이런 연락을 받자 불씨는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다만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일주일이 흘렀다. 결국 나도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해야 할 것들을 다시 해나가면서 차츰차츰 그녀를 잊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을 갔는데 그곳에서 진희와 같은 방을 쓰는 누님을 만났다. 아마 누님이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했을 것이다. 웃음기 없는 내 모습에 누님이 내게 말을 조심히 걸었다.


“성일 학생 무슨 일 있어요?” (당연히 누님은 우리가 헤어진 것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네 진희가 아무말 안 했나요?”


"아무말 없었는데 왜요 싸웠어요?"


"아..싸운게 아니라 헤어졌어요"


“네..뭐라고요? 헤어졌다고요? 누구랑? 진희랑 헤어졌다고요?”


“네.. 헤어진 지 일주일 됐어요. 진희가 말 안 했나 보네요?”


“아니, 진희는 그런 말 안 하던데”


“아 그래요..”


“성일 학생 미안한테 왜 헤어졌는지 물어봐도 돼요? 우리 진희가 싫어졌어요?”


“아니요! 제가 아니라 진희가 저한테 헤어지자고 했어요”


“진희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고? 왜 헤어지자고 했댔요?”


“저도 모르겠어요. 지난주에 만나서 갑자기 헤어지자고 해서”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어요?”


“진희가 자기 할말만 하고 말이 끝내자마자 가버려서”


“아.. 그럼 그 이후로 한 번도 진희 만난 적 없어요?”


“네.. 연락을 한번 해봤는데 만나서 할 얘기가 없다고 해서..”


“아 그래요”


“진희는 좀 어때요?”


“진희가 워낙 조용조용한 성격이고 티를 잘 내지 않는데 잘 웃던 애가 요즘 얼굴 안색이 별로 안 보여서 서로 싸웠는가 싶어서..”


“아..” (나뿐 아니라 그녀에게도 웃음이 사라졌다는 소리를 듣고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럼 내가 한번 진희 만나서 얘기해 볼게요. 성일 학생은 진희한테 아직 마음이 있는 거죠?”


“네 그렇죠”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며 누님과 이야기로 마치고 체육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뭔가 홀가분했던 기분이 다시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녀에게서 뜬금없이 문자가 왔다. 오후 2시에 도서관 로비에서 만나자는 메시지였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보다 대체 무슨 이유로 헤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녀가 말한 시간에 도서관에 도착하자 도서관 로비에서 홀로 앉아있는 진희가 보였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어색한 인사를 했다. 웃음으로 대해 주고 싶었지만 나 또한 웃어지지 않았다.


“왔어요”


“어 근데 오늘 왜 보자고 했어?”


내 웃음기 없는 얼굴을 본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이거 돌려주려고요"


“뭔데?”


그녀가 돌려주려고 한 것은 예전에 내가 그녀에게 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이라는 시집이었다.


“이거 주려고 만나자고 한 거야?”


“네 이거 오빠 거잖아요"


“이제 나한테 필요 없으니 버리던가 알아서 해”


“왜 버려요? 그리고 이거 오빠가 나한테 빌려준 거니깐 다시 오빠한테 돌려줘야죠”


“그래 알았어. 그럼 가기 전에 내가 뭐 하나만 물어볼게. 내가 진희한테 뭐 실수한 거 있어?”


“아니 없어요”


“근데 우리 왜 헤어져야 돼?”


“이 얘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아니 뭐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나도 어쩔 수는 없지만, 다음에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똑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되니깐 내가 뭘 실수를 했는지 알려줬으면 하는데 그렇게 갑자기 헤어지자고 할 정도의 문제면 내가 무슨 이유인 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오빠는 잘못한 거 없어요. 다 제가 잘못한 거예요”


“뭐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진희가 잘못한 거라고?”


“네 그러니깐 묻지 말아 줘요”


“아니 나는 진희가 잘못한 걸 못 느끼는데, 다 괜찮은데,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생긴 거야?”


“그런 거 아니요”


“그럼 대체 뭐가 문젠데..”


이 주제로 한참을 실랑이했다. 같은 이야기를 돌려가면서 서서히 지쳐 갈 때쯤 불현듯 내게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설마라고 생각해서 생각조차 안 하고 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예민한 문제여서 입 밖에 꺼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마지막 질문이라 생각하고 한참의 고민 끝에 조심히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진희야 혹시 귀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지?”


내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눈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커질 만큼 내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오빠 알고 있었어요?”


“어 알고 있었는데?”


“언제, 어떻게 알았는데요?”


“내가 진희를 좋아한다고 하니 사감이 나한테 먼저 말해줬는데”


“오빠 그럼 그거 알고도 나랑 사귄 거예요?”


“그게 문제가 돼?”


갑자기 그녀는 내게 미안해요 란 말과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울고 있는 진희를 안아주었다. 내가 더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 말을 하였다. 그녀에게는 나를 만나오면서 내게 말못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눈물이 진정이 되자 나는 진희의 눈을 보고 정확하게 물었다.


“그럼 우리 헤어진 거 아니지?”


“응. 우리 안 헤어졌어. 나 오빠 많이 좋아해요”


“그럼 뭐 아무 문제 없네 그럼 다시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네”


“오빠 너무 너무 미안해요” 그녀는 다시 울었다.


“아니 내가 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다시 날 좋아해줘서”


바로 이때가 딱 키스하기 좋은 타이밍이었지만, 도서관 로비는 공공적인 장소라 눈치를 살피며 할까 말까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희가 먼저 내게 다가와 내입술을 훔쳤다. 뜨거운 눈물이 섞인 그녀의 입술은 달콤하기보단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멈춰있던 내 심장을 다시 움직이게 해주었다. (결국, 도서관이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잠깐의 이별을 끝내고 우리는 오랜만에 다시 손을 잡고 기숙사로 향했다. 한동안 말없이 길을 걸었다. 다시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흘러나왔고, 별생각 없이 계속 웃음이 튀어나왔다. 웃는 나를 보며 그녀는 왜 자꾸만 웃느냐 라고 물으며 그녀도 웃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종종 도서관에서 만나 손을 잡고 길을 걷는 데이트를 줄겼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줬다. 기숙사 사감과 같은 방 형님 그리고 도서관 누님은 진희를 만나 내 이야기를 전하며 다시 한번 만나 보라는 등 우리 둘이 다시 잘 만나길 도와줬다. 나중에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 기억하고 있나요? Vol.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