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피는 꽃

느리다는 것은 또한

by 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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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말한다. 나는 그 변화 속에서 잘 적응해가며 지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늦게 피어나는 꽃이 되기로 했다.


사실 나의 이해력은 남들보다 느렸다.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국민학교 4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된다. 1~3학년 까지는 그럭저럭 남들과 비슷하게 학습의 진도를 따라갔던 것 같다. 하지만 4학년이 된 후로 산수와 음악 등 여러 과목을 이해하기 힘들어지면서 점점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음악수업에서 다장조를 바장조 바꾸라고 했는데, 나는 이것을 대체 왜 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해내지도 못해 매번 뒤로 가서 손을 들고 서 있어야 하는 음악수업이었다. 산수 시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수의 난이도가 올리자 진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매번 나머지 공부를 해야만 했다. 나머지 공부를 마치고 남들보다 늘 늦게 집에 가게 되었다. 엄마에게는 친구랑 놀다가 왔다는 거짓말로 그 기억을 대신했던 것으로 안다.


시간은 흘러 중학생이 되고 나는 처음으로 과외라는 것을 받았다. 수학과 영어 과목을 받았는데, 기초가 없으니 배우는 나와 가르치러 온 과외 선생 역시 힘들긴 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ABC 과자를 좋아할 뿐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영어라니 그리고 한국어 말고 언어를 또 배우라니 그것은 내게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여느 또래의 아이들과 같이 공부보다는 축구와 비디오게임을 좋아했다. 사실 이때 축구를 제대로 했다면 아마 미래의 국가대표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랬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길)


대학생이 되어 다들 사랑을 시작할 때에도 나는 축구를 더 사랑했다. 심지어 다른 과 여학생들이 내가 축구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왔었지만, 그것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서야 친구가 말해주어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알고 난 뒤로는 그들이 날 본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운동을 하는 동안에 어색한 동작들을 반복하게 되어 혼이 난적이 더러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이 취업에 자신의 운명이 걸려 있는 사람들처럼 힘들어 보였다. 달리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곳에 취업이 되겠지 하고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열심히 대학 생활을 한 결과인지 좋은 곳에서 오퍼가 왔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에서는 제일 좋은 곳들이었다. 대축, 프로구단, 스포츠 센터 등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좋은 직장인지도 모르고 나는 나만의 길을 선택했다. 나중에 후회를 조금 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이때 축구에 미쳐서 축구 코치를 선택했었다.)


취업을 하고 나니 사람들은 다들 내 집 마련이나 주식 등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적금이며,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 등 다양했다. 나는 이런 것에는 대해서 무지몽매한 사람이었다. 적금은 들어봤어도 내 집 마련을 위한 청약과 주식 같은 것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살다가 결혼할 때쯤 집하나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만 하고 살았다. 그만큼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결혼을 못 한 건가?)


시간은 흘러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40대가 되어서야 20대나 30대가 하는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다. 내 집 마련을 준비하고,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여자는 없지만) 따지고 보면 늘 어리고, 느렸다. 남들이 좋다는 것을 보면 왜 좋은지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들이 왜 그때 그렇게 살았는지 이해를 했다.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이 모자람이 꼭 나쁜 것만은 없었다. 때론 생각이 느려서인지 젊은 사람들의 감각과 잘 맞았고, 내 아버지 세대와 다음 세대의 중간지점에서 양쪽 모두의 의견을 가지고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이 40대인 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어떤 이들은 젊은 세대를 사고방식을 이해하느라 힘들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전혀 그런 것이 없다. 최근에서야 연예인들의 이름이나 줄임말들을 못 알아듣는 정도지만 그래도 윗세대와 다음 세대가 모두 이해가 간다.


현재는 느리게 산다라는 말로 나를 포장하고 있다. 젊은 시절보다 조금 늦은 지금 분명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살고 있다. 남들과 다른 나를 인정하고 남들과 다른 삶의 속도록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어찌 보면 느리다 보니 세대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금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세대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분명 필요할 것이다. 남들보다 느리지만 나다운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늦게 피는 꽃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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