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월
<<출사표>>
나는 올해 나이 32살에 (남들 보기에) 잘다니던 번듯한 회사를 졸업하고 말단의 9급 사서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백만번 칭찬해주고 싶은 잘한 일이었다.
그동안 나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지 기록하자 한다.
<<01. 밥벌이의 지겨움>>
김훈작가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이 있다. 읽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목 한 줄만으로도 내게 다가오는 무게감은 대하소설 한질을 읽은 느낌이다.
내 나이 이제 겨우 29, 벌써 밥벌이의 지겨움 따위를 논할 나이가 되었겠냐만은, 나이에 비해서는 만 6년의 사회생활이 짧지만은 않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성으로서는 거의 max에 가까운 경력이다. 나름 동급최강정도 되겠다 하겠다.
불행하게도 나는 단 하루도 회사를 가고 싶은 날이 없었다. 6년동안 단 하루도. 매일 매일 회사에 가기가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출근하는 것이 싫었고, 고요한 사무실에서 잔뜩 움추려 눈치를 봐야 하는것이 싫었고, 보기 싫은 사람 매일 봐야하는 것이 싫었고,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도대체 뭘 위한건지 몰랐고, 모르지만 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매2년마다 토익시험을 꼬박 꼬박 봐주고, 이력서를 가끔 쓰기도 하고, 취업커뮤니티/사이트를 가끔 들렀다. 실제로 신입사원 채용에 지원하기도 했었고 면접도 봤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회사가 싫다는 고민과 함께 날 가장 괴롭혔던 생각은 '내가 부적응자인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회사생활은 힘든다고 말한다. 상사도, 동료도, 일도, 진상고객도, 출근도, 야근도, 회식도, 출장도, 워크샵도, 보고도, 지시도, 다 힘들다고들 한다. 하지만 지난밤의 불평불만을 접어두고 모두들 아침마다 출근해서 아침인사를 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 일을 해내고야 만다. 투덜대지만 우리팀 동료들도 모두 회사를 잘- 겉보기에는 잘- 다니고 있다. 어쩐지 나만 못나 보였다.
나의 경우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프다는 거짓말을 하고 회사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고, 상사의 꾸지람과 질책에 그냥 뛰쳐나가버리고 싶었고, 무례하고 몰상식한 처우에 엎어버리고 싶었던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그럴때마다 겨우 참아가며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도 태연해 보였다. 회사생활이라는 것이 다 이런거겠지, 하며 생각하며 나도 태연한 척 했다.
대체로 이러한 단계를 밟았다.
1) 회사를 가기 싫다 --> 2) 주변사람들은 잘 참고 다닌다 -->3) 나도 참다보면 나아지겠지 -->4) 포기
그래도 가끔은 숨통이 트일때도 있었다. 이러한 '회사가기 싫은 병'은 대게 싸이클이라는 것이 있어서 죽도록 회사가 가기 싫다가도 어느날 문득 '살만한데?'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다. 그때가 되면 짜증이 피크를 찍었을때 써놓았던 이력서와 자소서는 다시 서류 젤 아래로 밀려나고 만다.
또한 회사를 벗어나 취미활동에 열을 올리다보면 이것들이 주는 삶의 기쁨이 엄청나서 회사의 존재는 미미한듯 느껴지기도 한다. 회사 다니기 한창 싫을때 시작한 동호회 활동과 여행은 어느 순간 그 자체가 내 삶의 1순위가 되어버렸고 자연스럽게 회사는 취미활동을 할 자금을 대는 수단으로서 필요하게 되기도 했다.
이러한 정신적 외도가 약발이 떨어지면 나는 다시금 '회사가기 싫은 병'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적응을 못하는 건가봐'라는 생각은 5년이 지나면서 '나는 평생 적응을 못할것 같아'라고 바뀌게 되었고, 정말 어느때보다 미친듯이 이직을 희망하게 되었다. 그리곤 이런 식이었다.
1) 회사를 가기 너무 싫다 --> 2) 이직을 고민한다 -->3) 갈만한 곳이 없다 -->4) 눈물을 머금고 포기
지겨웠다. 나는 기회가 보이면 바로 도망가고 싶었다. 이제는 그것이 비겁한 도피라고 손가락질 한다고 해도 우선 내가 살고봐야지 않나. 나는 어떻게 해서든 회사에서 나올 핑계가 필요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아, 완벽한 핑계를 내게 제시해 주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