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통합교육을 꿈꿨던 교사의 고백
나는 늘 함께 배우는 교실을 꿈꿨다. 장애가 있든 없든,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배우고, 존중하며 자라나는 환경. 나에게 그것은 단순한 교육 철학이 아니라,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가치였고, 교육자로서의 신념이었다. 그 신념을 품고 교육 대학원에 들어갔고, 나는 대학원 시절 내내, 중증/중복장애 학생의 일반학급 환경에서의 '완전통합(full inclusion)'을 논문 주제로 삼고 싶었다. 왜 장애가 있다고 해서 별도의 교실로 가야 할까? 왜 수업을 나눠야 할까? 차별 없는 교육이야말로 이 땅의 정의이며, 이 사회의 희망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 서 있다.
나는 현재 중증 자폐 및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이다. 내 학생들은 대부분 의사소통이 제한적이고, 변화에 민감하며, 자극에 쉽게 과반응한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완전통합은 단순히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중증/중복 장애가 있는 학생의 Full inclusion은 높은 질의 교육 시스템과 훈련된 인적 자원이 동시에 제공 되어야만 가능한 모델이다. 나는 그런 이상적인 시스템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것이 실행되지 않는 학교가 있다면 내가 직접 가서라도 해내면 된다고 자신했었다.
이미 미국은 ‘완전’ 통합(full inclusion) 단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국의 모든 공립학교와 그 안의 일반학급이 예외 없이 통합교육(inclusive classroom)을 지향하며,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장애인교육법(IDEA)' 과 ‘최소제한환경(LRE, Least Restrictive Environment)’ 원칙에 근거한다. 즉, 장애 학생이 가능한 한 일반 교육 환경에서 또래와 함께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학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적 제한을 최소화하여 이들의 교육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교직 첫해, 나는 학생들의 IEP(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보조 교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던 우리 반의 두 학생을 데리고 일반 교실로 들어갔다. 사실 그 학생들의 LRE(최소제한환경)는 5% 미만이어서, 굳이 무리해서 일반 학급에 보내지 않아도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보여주고 싶었던 나는 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당당히 문을 열었다. 순간, 일반 교실의 선생님과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셋에게로 쏠렸다. "Good morning everyone! __ and __ are ready to join you! 커다랗고 자신있는 미소와 함께 두 학생들을 클래스에 소개했고, 내 소개가 끝나자 마자, 그둘은 내 손을 뿌리치고 교실안의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한 아이는 교실 한쪽 캐비넷 위를 등반하듯 기어올라갔고, 다른 아이는 교실을 뛰어 다니며 모든 아이들의 물통을 한 모금씩 마시고 다녔다.
아이들은 토끼눈을 하고 두 학생을 번갈아 바라봤고, 담임 선생님은 몹시 당황한 얼굴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결국, 가방 속에서 비상 간식인 스키틀즈를 꺼내어 두 아이를 유인해 그 교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내 클래스로 돌아올때까지 아무렇지 않은척 끝까지 미소를 머금으며 걸어왔지만,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바닥엔 진땀이 흘렀다.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몇년간 꿈꿔왔던 이상은 그 클래스 룸에 들어간지 단 1분만에 산산조각 났다.
'모두를 위한 교육'을 외쳤던 나는, 누구에게도 좋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학생들이 일반 학급으로 가는것에 매우 소극적으로 변한 나는 학생의 IEP가 허락하는 가장 미니멈한 LRE를 제공했다. 물론 이렇게까지 소극적으로 변한대에는, 단순히 당황스러웠던 내 경험담만 적용된 것은 결코 아니다. 현실의 장벽은 너무나도 많았다.
정교사인 나는 학생이 내 클래스룸에 있는한 항상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렇기에 내가 직접 학생 하나하나를 데리고 일반 학급으로 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학생들이 각자의 일반 학급으로 이동할 때에는 1:1 또는 1:2로 보조교사(Para-educator)를 붙여서 보내야 한다. 그러나 보조교사는 늘 부족하고, 아무리 정교사가 보조교사들을 관리하고 가르치고 훈련해도, 막상 현장에서 보조교사들이 그 모든 지식들을 알아서 척척 적용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잘 훈련된 보조교사를 붙여서 보낸다고 하더라도, 일반 학급의 교사들이 특수 학급에서 온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몰라서 어려움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일부 교육구(district)나 주(state)는 일정 수준의 보조 인력을 법적으로 보장하지만, 어떤 교육구는 완전통합교육을 표방하면서도 학생만 일반 학급으로 보내고 아무런 지원도 붙이지 않는다. IEP를 보면 이런 학생들의 LRE는 80-90%로 일반학급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되어 있는데, 반대로 학습능력이나 행동발달 또는 사회정서 능력이 일반학급에서 "독립적으로" 모든것을 해결해 나갈 수 없다고 되어있다. 이러한 상황은 실질적인 학습 참여가 이루어지는 통합이 아니라, 의미 있는 학습 참여 없이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함께 있는 배치에 지나지 않는다. 인적 지원과 학습 지원이 없는 형식적 배치는, 완전통합을 자랑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통합에 불과하다.
이런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또는 이러한 명분을 앞세워서, 내 학생들은 비장애학생들과 같이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었고, 일반 학급의 비장애 학생들은 내 교실의 장애 학생들과 같이 어울릴 권리를 놓치고 있었다. 서로가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순간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묻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inclusion인가? 이 상황에서 누가 배우고 있는가? 장애학생만 배우는가, 비장애학생만 배우는가? 장애/비장애 학생 모두를 위한 완전 통합교육은 현실 세계에선 없는 것인가? 실망감 속에서도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진짜 inclusion은 시스템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제도를 바라보면 불평하는 교사로 남지만, 학생을 바라보면 창의적인 교사가 된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 보기로 한다.
이 아이가 함께할 수 있는 수업 환경은 어떤 모습이 되야할까? 그 환경이 모두를 위한 교실이 되려면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될까? 나는 이제 무작정 일반 교실로 데려가지 않는다. 짧은 시간부터 시작하고, 사전 연습을 하고, 일반 학급의 동료 교사들과 협력하며, 모든 아이가 존중 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Inclusion의 실현은 정의감과 이상향으로 똘똘뭉친 단독 행동이 아니라 팀워크와 시간, 그리고 끊임없는 조율에서 가능해진다는 걸 매일 체감하고 있다. 나는 이제 더이상 누군가에게 완전통합만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고 싶다. "통합교육이 모두(장애/비장애 학생)를 위한 것인줄 알고 계신가요?"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떻게 하면 통합교육이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는지 방법을 생각해 보셨나요?" "장애/비장애 학생 모두에게 '같이 있음' 또는 '같이 배움'은 학생들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글은, 그 질문들에 대한 나의 고백이다. 나는 교사로서, 연구자로서, 부모로서 매일 이 질문 앞에 선다. 정답을 말하기보다,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