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행동일까 소통부제일까

Behavior is a form of communication.

by 신지은

Behavior is a form of communication. 행동은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다. 이말은 특수교육 현장에선 거의 성경말씀과도 같은 철학이다. 행동을 단순히 '옳다' 또는 '그르다'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상대가 어떤 필요나 감정을 표현하려 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러므로서 서로의 상호작용을 개선하게 만든다.


우리는 아기가 온몸으로 우는 것을 보고, 이것은 문제 행동이기 때문에 혼내거나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기가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오래 누워 있어서 불편하기 때문에 울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 필요가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진정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아기가 필요할 때 우는 것, 몸을 비트는 것, 팔다리를 휘젓는 행동이 곧 아기의 의사표현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발달 과정을 지나면서 아기의 언어였던 울음은 옹알이가 되고, 옹알이는 단어가 되고, 의미 없어 보이던 몸짓은 점차 의미를 담은 제스처로 발전한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감정과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 역시 점점 더 논리적이고 성숙해진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들이나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만 행동으로 소통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모든 인간은 행동으로 소통한다. 이때의 행동에는 언어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모두 포함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는 말의 톤이나 뉘앙스, 몸짓이나 태도 같은 비언어적 신호들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행동은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다.' 이 말의 깊은 뜻을 해석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 행동의 기능을 파악해 문제행동이 일어나기 전에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자는 접근이다. 또 다른 하나는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 행동이 나오게 된 마음의 배경을 이해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해 주어야 한다는 접근이다. 두 가지 시각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보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내 교실에 데리언이라는 킨더가든 남자아이가 있었다. 데리언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도와주기를 좋아했고, 학기 초라 음소 인식(phonemic awareness)을 아직 배우지 않았는데도 혼자 책을 읽을 줄 아는 똑똑한 아이였고, 학급의 모든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아주 스윗한 학생이기도 했다. 데리언은 자폐뿐만 아니라 ADHD도 있었기 때문에 움직임이 많고 빠르며 단 1초라도 지루한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수업의 진행이 쳐지기 시작하면, 바로 교실문을 박차고 나가, 모든 어른들의 달리기 경주를 시키는 아주 재밌는 아이였다. 똑똑한 만큼 경쟁심이 남달라서 카페테리아, 놀이터, 체육관 등으로 이동을 할때는 늘 자신이 1번으로 줄을 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루종일 분해서 못견디기도 했다. 자신의 자리에 누군가 앉으면 그 큰 덩치로 밀어서 친구를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버렸고, 자신이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감을 다른 친구가 먼져 가지고 놀면 때려서 빼앗기도 했다.


우리 교육구(district)는 응용행동분석(ABA:Applied Behavior Analysis)에 크게 의존한다. 그래서 데리언의 행동의 4대 기능(functions of behavior; attention, avoidance, tangibles, sensory)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행동의 4대 기능이란 관심 얻기, 과제 회피, 원하는 것 얻기, 감각 만족을 말하며, 모든 행동의 목적은 이 네 가지 중 하나에 꼭 해당한다는 이론이다. 자폐의 정도가 심하고 언어능력이 거의 없다면 충분히 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의사표현이 확실하고, 행동 지원 외에는 실행 기능 지원이 필요 없이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정도의 스펙트럼이라면, 굳이 행동 기능을 파악하고 그 기능에 맞는 프로토콜대로 움직이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무엇보다 자폐 스펙트럼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은 본래 복잡하고 다양한 존재이다. 행동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지만, 그것을 꼭 저 네 가지 기능만으로 구분하고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데리언의 경우, 당연히 데이터로는 가지고 싶은 장난감 또는 자신의 자리(tangibles: 원하는것 얻기)가 문제행동의 원인 이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선 미리 장난감과 자리를 준비해 주면 된다. 자, 그럼 ABA가 주장하는대로 행동이 고쳐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데리언은 하루 종일 자신이 먼저여야 하고, 원하는 장난감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또 때로는 과제를 회피하기 위해 옆 친구를 때리고, 어른들이 그 혼란을 수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버는 교묘한 전략도 사용했다. 결국 또 다른 문제행동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행동 기능을 찾아야 하고, 거기에 따른 BIP(Behavior Intervention Plan; 행동중재계획)를 세워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었다.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ABA만으로는 대응 중심의 교실 관리에 그치게 된다. 나는 사후 대처적인 방식보다는 사전 예방적이고 능동적인 교육 방식을 선호한다.


데리언의 IEP미팅때 나는 부모님께 당당히 말했다. "그래서 제가 사용한 방법은 '퀄리티 타임'입니다." 데리언과 나는 매일 오전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10분에서 15분 정도 퀄리티 타임을 가졌다. 시덥잖은 농담 따먹기를 하거나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기도 하고, 말없이 옆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때로는 손을 잡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친밀감을 쌓는 시간이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진 날일수록 데리언은 아무리 수업이 지루해도 밖으로 뛰쳐나가는 일이 없었고, 친구를 때리는 일도 줄어들었다. 심지어 친구가 자리를 빼앗거나 장난감을 뺏어도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부모님의 연신 감사 인사로 끝난 그 IEP 미팅 이후로, 내게 ABA식 구조와 시스템을 강요하던 학교 심리사와 행정팀은 더 이상 내 교실에 들어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후에 더 큰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지만, 그 당시만큼은 무척이나 통쾌했다.


내 학생들을 마치 강아지 훈련하는 것 처럼 잘하면 보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시스템, 자폐가 있으니 배움에 내적동기는 전혀 없을 거란 편견에 기초해 단순히 행동기능만을 파악하고 대응 중심으로만 접근하려는 방식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지 않은가!


나는 학창시절 선생님이 좋아서 공부한 적이 많았다. 물론 좋아하는 과목은 선생님과 상관없이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너무 좋고 존경스러워서 더 잘 보이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어 공부하기도 했다. 사람이 좋으면 그렇게 되기도 한다. 서로 신뢰가 쌓이고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우리는 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진다. 나는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고 믿는다. 지원이 많이 필요하건 적게 필요하건,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 있든, 사람은 사람이다. 장애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학생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믿어주는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한다.


물론 ABA(응용행동분석)가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때로는 매우 효율적이고 반드시 필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본래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사실, 그리고 자폐 스펙트럼 안의 아이들 또한 그러하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방식과 카테고리를 정해놓고 아이를 끼워 맞추면 결국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된다. 처음에는 효율적인 것 처럼 보일지라도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만 급급해지고, 결국 지쳐서 암울해지게 된다.


ABA는 눈에 보이고 기록 가능한 행동을 데이터로 남기고 즉각적인 결과를 얻기위한 효율적인 방식이나, 사람의 각기다른 발달과정과 인지능력을 세밀하게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때로는 행동 이면에 더 근본적인 원인이 숨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장난감에 집착하며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겉으론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것(tangible)'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장난감에 대한 집착이 애착관계 형성의 어려움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아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에게서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을 경험하면, 장난감에 대한 집착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또 다른 경우에는 아직 의사소통 기능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제는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오늘은 과제를 피하려는 행동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아이에게 의사소통 기구를 제공하거나 적절한 의사소통 방법을 가르쳐주면 문제행동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부모라면, 선생이라면, 특수 서비스 제공자라면, 학교 심리사라면, 교육 행정가라면, 이런 눈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국 한 사람을 교육시키고 키워내는 데에는 행동의 기능적인 해석과 배경적인 해석이 모두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의 일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전체를 바라보는 whole child approach가 필요하다.


나는 교실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교실 밖에서 학부모와 보조교사들을 함께 트레이닝해야 하는 책임도 가진다. 보조교사들에겐 학생들의 도전적인 행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이의 행동을 주관적이거나 평가적인 말로 표현하지 마세요. 그리고 최대한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측면을 자세한 언어로 기록합니다. 그래야 알맞은 행동지원을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단어로 아이의 행동을 레이블 하냐에 따라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아직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이나 요구를 행동으로 대신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 행동을 적절한 행동으로 ‘대체’하기 전에, 먼저 그 행동의 원인을 '통역' 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행동을 단순히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통역해 주는 것이다. 행동을 언어로 바꾸어 주고, 더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함께 연습할 때, 아이들은 점점 더 스스로의 감정과 필요를 건강하게 소통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쌓여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행동지원이 아닌 ‘사람 지원(whole child support)’이 완성될 것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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