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ual Support

특수교사 엄마가 잔소리하는 방법

by 신지은

나는 비교적 잔소리를 잘하지 않는 아내이고 엄마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식사예절의 경우, 여러 번 잔소리를 하지 않고도 아이들이 스스로 지키게 만드는 편이다. 비결은 바로, 아주 무시무시한 시각적 지원(visual support)을 사용해서다.

모든 룰은 엄마가 정했지만,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의논하고, 오리고, 붙이면서 마치 자신들이 룰을 정하고 컨트롤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도 아빠가 티브이나 핸드폰을 보며 밥을 먹으려고 하면, 자신들이 직접 만들고 서명까지 한 '가족 식사시간 규칙 서약서(Family Mealtime Rules)'와 아빠를 번갈아 보며, "아빠, 밥 먹을 땐 티브이 보면 안되지! 셀폰 가져오면 안 되지! 봐봐! No TV! No cellphone!"이라고 면박을 준다. 그럼 나는 고소한 미소를 숨기며 흐뭇한 한술을 뜬다. 신혼 초 밥 먹을 때도 놓지 않던 그놈의 티브이와 셀폰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싸웠는데, 그게 이렇게 한방에 해결되다니! 도랑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줍고 아닌가!


(겉모습만) 다 큰 남편에게는 더더욱 잔소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성인의 생활습관은 바꾸기가 힘들고, 그 안에는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존중의 의미와 포기의 의미가 미묘하게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나도 남편에게 화가 나는 지점이 몇 가지 있는데,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배려도 하지 않을 때이다. 둘 중 하나만 부족할 땐 괜찮다. 신었던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 놓는 것은, 그게 보기 불편한 내가 치우면 그만이다. 나도 치울 손이 있고, 세탁실로 가는 길에 모아서 가져가면 되니 어떻게 보면 효율적 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집 샤워실에 있는 샤워헤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 샤워헤드는 다이얼 방식으로 손으로 돌려서 물이 나오는 위치를 조정하게 되어있다. 샤워헤드를 어떻게 돌리냐에 따라, 높은 곳에 고정된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거나, 좀 더 낮게 설치된 샤워 호스가 달려있는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게끔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다이얼이 내가 손이 닿지 않는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물이 나오는 위치를 바꿔 놓으려면 무려 의자를 좁은 샤워실로 들고 와 그 위에 올라서야 손이 닿는다.


나보다 키가 큰 남편은 쉽게 손이 닿으니 고정된 샤워기로 돌려놓고 사용하고는,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아, 내가 들어가 물을 틀면 천장에서 갑자기 차가운 물이 머리 위로 떨어져 깜짝 놀란 적이 많았다. 그럼 다 벗고 들어갔다가 다시 몸을 닦고 옷을 입고 의자를 가지고 와 다이얼을 돌려놓고 다시 의자를 갖다 놓고를 반복하는 아주 비효율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발만 씻으려고 옷을 다 입은채 들어가 물벼락을 맞으면 더 기분이 나쁘다. 키가 큰 남편은 손 한번 뻗으면 그만이지만,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며 일하는 이 바쁜 와중에 겨우 허락된 이 신성한 5분의 샤워시간에 이 헛수고를 해야 하니, 원래 없는 줄 알고 있었던 그 배려심에 새삼스레 너무도 화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음성 언어로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혹시 상대가 정말 몰라서 그럴 수도 있으니, 누구에게든지 한두 번 말해보고 안 되면 ‘아, 그것은 고칠 수 없는 것이구나’ 하고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건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기 때문에, 마지막 세 번째에는 그만 협박을 하고 말았다. 사실 남편이 같은 실수를 열 번도 넘게 반복해야 나는 겨우 한 번쯤 말하는 편이다. 그러니 내가 세 번째로 말한 것은 이미 그가 서른 번도 넘게 반복했다는 뜻이고, 그동안 나는 물벼락을 수도 없이 맞으면서도 조용히 넘어갔다는 얘기다.


“한 번만 더 원래대로 안 해 놓기만 해 봐!”

천하의 우리 남편이 그 말을 절대 들을 리가 없다. 그렇다. 음성 언어는 사실 교육학적으로 혼자서는 효과가 별로 없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잔소리를 못 알아듣는 남편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래서 아동발달과 특수교육을 전공한 특수교사 아내는 바로 시각 지원(visual support)으로 잔소리한다.

샤워헤드를 다시 바로 해놓으라는 메세지를 코팅하고 잘라서 남편이 화장실 쓰는 동선대로 붙여놨다.

내 협박은 그것이었다. '한 번만 더 원래대로 안 해 놓기만 해 봐, 시각 자료를 제공해 줄 테니까!' 이뒤로 남편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사용한 샤워헤드를 그대로 두고 나온 적이 없고, 그 뒤로 나는 기분 좋게 샤워하러 가서 찬물을 갑작스럽게 맞지 않아도 됐다. 그렇다면, 내 남편만 음성 정보 보다 시각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놀랍겠지만 인간은 visual learner(시각적 학습자)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곳에서 우리는 시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고, 배운다. 학습자가 새로운 개념을 이해할 때는 추상적 언어보다는 시간적 공간적 표상을 통해 더 쉽게 이해한다. 이는 시각 피질(visual cortex)이 뇌에서 매우 큰 영역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시각적 학습에 강하게 의존하는 존재다. 이러한 뇌과학적 근거 외에, 교육심리학의 다양한 이론들에서도 시각정보가 학습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뒷받침한다.


Paivio의 이중 부호화 이론(Dual Coding Theory, 1971)은 시각적 언어적 정보를 동시에 처리한다는 점을 강조한 대표적이고 영향력 있는 초기 이론 중 하나이다. 이후 Sweller의 인지 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 Mayer의 멀티미디어 학습 이론(Multimedia Learning Theory)등으로 발전되었다. 그만큼 시각 자료는 복잡한 언어 설명을 보완하여 학습자의 인지적 부담을 줄여주고 더 나아가 이해와 기억을 크게 향상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운전 중에 모든 표지판이 글로만 쓰여있다고 생각해 보자. 도로를 100km로 달리는데, 운전 환경의 변화를 알려주는 표지판이나, 금지를 나타내는 규제 표지판들이 전부 문장으로 설명되어 있다면 도로는 사고와 비명으로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멋진 요리로 손님을 초대하려고, 음식 레시피를 찾아보려는데, 아무런 글도 그림도 없이 누군가 옆에서 장황하게 모든 과정을 설명으로 대신하고는, 자, 이제 만들어 보라고 한다면, 머리가 아득해지고 재료부터 다시 기억해 내느라 스트레스부터 밀려올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시각 자료가 없으면 이해와 수행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하물며 아직 개념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학생들에게 시각적 지원(visual supports)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시각 자료는 학생들이 더 잘 이해하고,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며, 언어 발달에도 도움을 주어 결국 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는 자폐 스펙트럼 학생뿐만 아니라 비장애 학생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이들은 눈으로 보고, 만지고, 연결할 때 가장 깊이 배운다. 그래서 우리는 교실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시각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시각 자료는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학습자와 소통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자 누구에게나 필요한 언어이다. 아이들이 배움을 즐기고, 서로 더 잘 이해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이런 시각적 활동은 책에 대한 기초 이해(Concept of print)와 이야기의 전개 순서(Story sequence and order)를 배우는데 효과가 있다.

특히 배움이 활발히 일어나는 교실에서, 시각적 지원은 모. 든. 학생들을 위한 도구이다. 통합교실에서 모. 든. 학생이 동일한 시각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면, 장애가 있는 학생의 학습 활동만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없는 학생들의 학습활동도 돕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훗날 사회에 나가 어떻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일하고, 생활하고, "서로"를 상호 간에 도울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연습할 수 있다. 이는 사회 정서 교육의 일부이기도 하다. 도덕책을 통해 글로 읽고 외우는 이해와 배려가 아닌, 직접적인 경험과 몸소 체험으로 습득한 이해와 배려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직접 '같이 배움'을 경험해 보면, 그것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을 위한 도구나 시설을 ‘배려’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마치 도로교통 표지판이 특정인을 향한 '호의'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 안전장치인 것과 같다.


나는 다음 세대 아이들은 이러한 도구와 시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자라길 바란다.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면 안경을 쓰고, 다리가 불편하면 휠체어를 사용하며, 의사소통이 어려우면 보완대체 의사소통 기구(AAC: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를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놀이터, 영화관, 식당, 공공기관에서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판(communication board)이 제공되고, 신체적 발달적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하고 무엇이든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 말이다.

놀이터에 있는 의사소통판은 장애유무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다 같이 어울려 소통하고 놀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사회에서는, 장애인 가족이나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들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기막힌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장애인이 거리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사회는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의 사회’가 아니라, 결국 모두를 위한 사회다. 그 거리에는 아기들, 노인들, 임산부들 또한 편히 다닐 수 있다. 그런 사회는 나이, 장애, 약함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소통에 불편함이 없는 사회다.


시각적 지원은 자폐 스펙트럼이나 발달장애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도구가 아니다. 아직 음성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영유아, 청각과 시각이 나이로 인해 약해진 노인들에게도 훌륭한 도구가 된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바쁜 일상 속 누구에게나 편리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자원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도 시각적 지원을 언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눈치채셨겠지만, 이것이 특수교사 엄마가 사회를 향해 잔소리하는 방법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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