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교사가 교육할 권리 vs. 학생이 교육받을 권리

by 신지은

한국에서는 교사의 교육 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교권 침해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교원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이른바 교원지위법이다. 법 조항만 보면 교권이 보장된 듯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 조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법은 존재하지만, 그 법을 실제로 집행할 행정적 권한과 절차, 실질적 보호 체계는 부재하다. 교권은 종이 위에서만 존재한다.


반면 미국에는 특별히 법적인 ‘교권’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교사의 권위(authority)나 자율성(autonomy)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법적, 문화적으로 한국처럼 교사의 권리나 지위를 별도로 정의하는 개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미국의 교권이 오히려 더 잘 보장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는 법적,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문화적으로 미국은 개인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훨씬 더 무게 있게 존중한다. 예를 들어, 같은 직책의 동료나 심지어 자신의 부하 직원의 일이라도 그 사람이 맡은 업무의 ‘바운더리(boundary)’를 함부로 간섭하거나 침범하지 않는다. 분야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대체로 업무 분장이 명확하고 분장에 없는 일은 함부로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업무에 개입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한국식 사고로 보면 다소 정이 없게 느껴질 수 있지만, 미국식 관점에서는 직장 동료가 내 일을 대신하는 것이 오히려 월권이며, 상대의 능력을 무시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반대로 자신의 일을 동료에게 전가하는 것은 '나는 이 일에 부적합할 정도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 된다. 이러한 문화 덕분에 미국에서는 교사를 ‘권위적인 존재’라기보다, 권리와 책임을 지닌 전문직 노동자로 인식한다. 따라서 주법(State law), 교원노조(Union), 헌법적 권리 등을 통해 교사의 권리와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호한다.


그런 면에서 교육 행정팀(Administrator team; 교장, 교감)이든, 학부모든, 교사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인간으로서, 더 나아가 전문가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법적인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교육계에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행정팀, 학부모, 학생들로부터 ‘존중’이나 ‘권위’ 같은 추상적인 단어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와 교육권에 대해 본질을 흐리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이미 법적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무시간 외 지속적인 학부모 상담요청이나, 합당한 서류와 근거 없이 특정 아이만 편의를 봐주는 것, 혹은 수업시간에 방해하는 학부모의 행위 등은 논의의 여지없이 즉각적인 법적 조치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일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교권을 논할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법과 제도의 작동 여부의 문제다. 교사의 권리와 교권 보호가 감정이 아니라 명확한 규정과 합의된 문화 속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교권의 보호와 보장은 더 명확하고, 동시에 더 당연하다.


물론, 미국에서 교사로 일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요즘 학부모를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그러나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미국에는 교사를 스토킹이나 악성 민원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거나, 그런 범죄로 부터 교사를 보호하지 않은 채 방관하는 행정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교권에 대해서 처음 들었던 것은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떠들던 학생들을 향해 어떤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에서다. "너희는 지금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 교육권은 '감히' 사법권도 침범할 수 없는 법이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 죄를 지어 경찰이나 군인이 찾아온다 해도, 교사가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감히'이 문을 열고 들어와 체포하지 못한다. 반드시 수업이 끝난 뒤 교사가 문을 열어야만 그제야 교실 문 밖에서 체포할 수 있다."


그만큼 교사의 교육권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켜내는 데 막중한 의미를 가지므로, 누구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결국 그러니 학생들인 너희도 서로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말씀이셨는데, 나는 그 설명이 너무나 멋있어서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 순간만큼은 이 사회가 ‘배움’이라는 가치를 이렇게 높이 두는구나 싶었고, 세상이 참 멋지고 아름다워 보였다.


물론, 그 말씀이 실제 한국 법에 근거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나 군부독재 시절 군인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십 대 소녀였던 내게 그 말씀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울림이었는지를 전하고 싶다. 나의 배움의 권리가 이토록 무겁고 존중받는 권리라는 사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모두가 하나같이 배움을 최우선의 가치로 둔다는 사실이, 어찌 아름답고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한국사회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학교를 졸업한 뒤, 그토록 무겁고 진중하게 여겨왔던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배움 권에 대한 나의 아름다운 서사는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한국에서 사법권도 아닌 학부모가 ‘감히’ 수업 중인 교실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을 기점으로 한국사회에서 교권은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특수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최근 들어 교사들의 교권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특히 특수교사의 교권은 제도와 문화 모두에서 처음부터 불평등하게 설정되어 있다. 교육부의 ‘2023년 교권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특수교사 응답자 중 ‘학부모 민원 및 부당한 간섭 경험’ 비율이 일반교사보다 약 1.7배 높게 나타난다. 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2022) 설문 응답자의 72%가 “학교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라고 응답하였고, 응답자 중 68%는 “특수학급은 학교의 주변부로 취급된다”라고 답변하였다. 학교조직 내 위계와 인식차이에 관한 연구들에서도, 일반교사와 관리자들이 특수교사를 '보조자 혹은 지원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특수교사는 자신을 '교육의 동등한 주체'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법적으로 특수교사는 일반교사와 동일한 정교사이고, 임용 절차도 동일하게 국가가 관리함에도 불구하고, 인력 배치와 행정 참여, 역할 배분, 정보 접근, 학교 내 의사결정 구조에서 동등한 권한을 보장받지 못한다. 현장에서는 특수교사를 교육의 동등한 주체가 아닌 ‘보조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거나 가르치는 일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보지 않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일은 마치 봉사활동이나, 적은 보수로 몸을 쓰는 일,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사명감과 따뜻한 마음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 정도로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관련 지식도 없는 사회복무요원을 시설에 투입한다든가, 보조교사나 보조인력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예쁜 마음’으로 버티라고 사회가 강요하는 것이다.


소아과 의사에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진료하라고 하지 않는다. 심리치료사에게 얼굴만 보고 그 사람의 살아온 세월을 맞추고 위로하라고 하지 않는다. 전문지식이 없는 이에게 마음만 보고 나와 나의 아이를 맡기는 건, 상상만으로도 너무 위험한 일이다. 특수교육에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마음만 가지고 학생을 맡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봤는가. 기억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내일이 아니라 잊은 분들도 있을 것이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그런 문제로 사람이 죽고 다치는 끔찍한 일들을 여러번 겪었다. 우리는 다른 직종들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고 그에 합당한 보수와 대우를 지불하면서, 왜 특수교육계나 관련 시설에는 그만큼 투자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한국 사회는 계급적 구조가 깊게 뿌리내린 물질만능주의 사회임을 모두가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직업이나, 이제는 사명감보다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며, 얼마나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를 더 따지게 되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다른 어떤 직종보다, 사회의 약자를 대하는 직업에 있어서는, 전문지식과 그에 따른 정당한 대우보다는 ‘사명감’을 우선시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런 보이지 않는 구조적 편견은 교육계 안에서도 발생한다. 한국 교육은 여전히 학업성취 중심 구조에 있다. 학생의 성공이 시험 성적과 대학 진학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학문적 지식'을 다루는 일반교사가 더 '교사다움'을 인정받는 경향이 있다. 반면, 특수교사는 의사소통, 자립, 사회성, 일상 기술 등, 비학문적 영역을 중심으로 지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공부와는 다른 일로 간주되는 문화적 편견이 남아 있다. 즉, 머리를 가르치는 교사인 일반교사는 더 나은 대우나 높은 평가를 받고, 마음을 가르치는 교사인 특수교사는 그저 돌보는 사람으로 평가절하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사회가 아직까지 여러 분야의 전문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특수교사는 단일 과목 전문성이 아니라, 일반학급 교사와 같이 교과 학업은 물론이고, 그에 더해, 교육, 심리, 행동, 언어, 발달, 법과 행정까지 아우르는 통합 전문성을 갖춘 직군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오히려 특수교사가 다른 교사들에게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도 법적으로는 이런 구조를 지향하지만, 문화적으로는 '교사=교과 전문가'라는 관념이 여전히 강해서, 특수교사의 다학제적 역량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전문성의 부재가 아니라,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태도에 있다. 교사의 권위는 감정적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전문지식과 판단이 제도적으로 보장될 때 비로소 성립한다. 특수교사의 교권이 무너진 이유는, 그들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전문성을 ‘감동’이나 ‘헌신’의 프레임으로 대체해 온 사회와 교육계의 책임이다. 전문직으로서의 교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제 마음이 아니라 법과 제도 속에서 권리를 재정의해야 한다.


교권이라는 단어는 흔히 오해를 많이 하지만, 본래 의미는 교사의 직무 수행을 보장하는 법적, 제도적 권한이다. 교권은 단순히 학생에게 꾸중할 권리나 교사에 대한 존중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가 전문직으로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권리이다.


즉, 교사가 전문가로서 교육적 판단을 내리고, 교육활동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러한 교권이 무너지게 되면, 교사는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있으면서도, 제도적으로는 아무 권한이 없는 ‘무력한 전문가’로 존재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무력한 전문가 밑에서 배우는 학생들은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교권을 '교사 중심의 권리 주장'으로 오해하지만, 사실 교권은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교사가 보호받지 못하는 교실에서는, 학생도 결코 안전하고 존중받는 학습 경험을 할 수 없다. 교사의 번아웃과 과로, 제도적 방치는 결국 학생의 학습권, 안전권, 정서권 침해로 이어진다.


그러니 교사를 다그치고 괴롭히면, 자기 자식이 학교에서 배울 권리를 더 잘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명백한 어불성설이다. 교권이 무너진 교실은, 학생의 권리마저 침식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인식이나 마음만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교사의 전문성과 권한은 존중의 문제가 아니라 보호의 문제이며, 보호는 감정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 교사의 자율성과 안전, 그리고 아이들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학부모들의 ‘좋은 마음’이나 학생들의 '존경심'이 아니라 강제력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교사의 권한을 보장하고, 보조인력의 전문성을 제도화하며, 행정적 과중 업무를 구조적으로 분리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제도는 인간의 의식을 바꾸기 전에, 인간의 행동을 바꾼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인식 개선의 시작이다.


인권과 사회적 규칙이 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보호되듯, 교권과 교육행정 또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강제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폭력을 쓰지 말자',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말자'는 공익 캠페인을 아무리 벌여도 모든 사람이 양심만으로 이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특성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성상 불완전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이루는 사회는 그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해 제도와 법이라는 약속을 만들어 왔다. 결국 사회적 규범과 법은 인간의 특성과 사회의 특성이 맞물려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상에 법과 사회적 규범이 없다면 우리는 금세 질서 없는 원시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교권도 학생, 학부모, 교사의 개인적 인격 수준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명확히 규정하고 지키지 않으면 사회적 처벌을 통해서라도 보호하는 것이 옳다.


교육청과 학교 행정 관리자팀은 실질적인 보호 체계를 구체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학부모나 학생이 교사의 교육 활동을 침해할 경우, 그 행위가 남긴 고통을 본인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만큼 무겁고 엄정한 법적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교사의 교권도, 학생의 배움권도 함께 지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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