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교육(Transition)
특수교육에서 전환(Transition)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초등에서 중학교, 고등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순간을 의미한다. 나는 초등 교사로서 매년 중학교로의 '전환 IEP' 미팅을 열지만, 가장 큰 전환은 고등학교 졸업 뒤에 시작된다. 학교라는 안전한 홈 베이스를 떠나는 순간, 많은 중증 발달장애 학생들과 그 가족들은 사회에 홀로 남겨진다. 나는 공교육에 오기 전 비영리단체에서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장애를 가진 성인들의 독립생활기술과 지역사회 참여를 돕는 일을 했었다. 장애인을 돕는 사회적 제도나 정보가 있어도 정작 ‘실제 삶’의 문제는 부모와 개인의 몫이었다.
미국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는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고등학교 졸업 후 삶을 6년 동안 추적하는 대규모 연구를 주기적으로 실시해왔다. 미국 교육부 산하 Institute of Education Sciences(IES)의 6년 추적조사에 따르면, 학습장애 학생의 post-secondary 진학률은 약 61%, 언어/말장애 63%, 지체/정형장애 60%로 비교적 높은 반면, 자폐스펙트럼 장애 학생은 약 47%로 뚜렷이 낮으며,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은 그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보고된다. 이 연구는 'National logitudinal Transition Study- NLTS-2로 불린다. NLTS-2의 목적은 단순히 장애가 있는 학생의 대학 진학률이나 취업률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장애 유형에 따라, 학생들의 미래가 얼마나 다르게 열려있는가를 뚜렷하고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서, 앞으로 미국 사회와 교육계가 어느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한국의 특수교육대상 고등학교 졸업생은 매년 약 59–60%가 상급학교로 진학하는데, 이 수치는 전공과(2년 직업재활/생활훈련 코스) 를 포함한 폭넓은 진학률이다. 한국은 동일한 postsecondary school 진학률 조사결과를 장애유형별로 세분화하여 제시하지 않고, 전체 평균으로만 제공한다. 진학하는 기관의 형태도 한국과 미국은 구조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전공과 진학이 다수를 차지하고, 일부만 전문대 또는 대학교로 진학하는 반면, 미국은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 직업/기술학교, 자격증 프로그램, 4년제 대학 등 다양한 post-secondary 경로가 존재해 장애학생의 진학 선택지가 훨씬 넓다. 그리고 이 진학 형태의 차이는 졸업 후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s(NCES)에 따르면, 장애가 있는 성인의 경우 학력 수준이 높아질수록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이 크게 증가하며, 특히 학사 이상(BA+) 학력을 가진 장애인의 비경제활동 인구 비율은 고등학교 이하 학력의 장애인보다 현저히 낮다. 즉, 미국에서는 고등교육 이수가 장애인의 장기적 노동시장 진입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한다는 것이 데이터로 확인된다.
반면 한국은 장애유형별 전국 단위 취업률및 경제활동률 통계가 충분히 공개되어 있지 않아, 어떤 장애유형이 대학 또는 전공과 진학 후 실제 고용으로 연결되는가를 정밀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59–60% 진학률은 미국의 post-secondary 진학률과 겉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전공과 중심 진학 구조’와 ‘미국식 고등교육 다경로 구조’라는 질적 차이, 그리고 NCES가 밝히는 고등교육과 고용 간의 강한 연계성을 고려하면, 양국의 통계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는, 양국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장애인 취업률 비율을 비교할때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종종 "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국가 보고서는 '장애인의 경제활동 참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광고한다. 표와 그래프는 밝고 산뜻한 색으로 칠해져 있고, 얼핏보면 희망의 곡선처럼 보인다. 미국, 독일, 호주같은 다른 국가들의 장애인 고용률과 퍼센티지를 비교하며, 한국의 장애인 고용률이 다른 선진국가들에 뒤쳐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 하다.
그러나 통계를 해석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와 용어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취업률이나 고용률은 경제활동이 가능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계산된다. 노동능력이 없다고 분류되는 사람들은 공식 실업률/고용률 통계에서 아예 제외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고용률이 높아 보일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장애인의 고용통계를 발표할 때 장애유형별 분류나 장애 정도(중증/경증)를 구분하지 않은 ‘통합 수치’만 제공하는 경향이 있어, 다른 국가들의 통계와 직접 비교하기에는 정확성과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예를들어, 다른나라는 장애인의 취업률을 계산할 때, 전체 장애 인구 중 약 40%에 달하는 발달장애나 지적장애인을 포함하는데, 이 집단은 고용률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그럼 당연히 장애인 전체 고용률이 떨어져 보일 수 밖에 없다. 반면 한국의 장애인 통계에서 발달장애나 지적장애인을 10% 미만으로만 포함시키고, 대신 취업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지체장애나 시각/청각장애인 비중이 훨씬 크다면, 두 나라의 ‘장애인 고용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즉, 모집단의 구성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공식(고용률/취업률)을 사용하더라도 결과값이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통계는 숫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만들어낸 구조와 전제를 함께 읽어야 비로소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고용률이 올랐다”는 문장은 정확히 말하면, "경제할동을 할 수 있는 고.용.가.능.한. 또는 기업에서 고.용.하.기.쉬.운 장애인 중에서 고용률이 올랐다"라는 뜻에 불과하다. 취업시장으로 오기도 전에 탈락한 이들, 학교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부터 잊혀지는 이들은 이 통계 안에서 너무도 쉽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나는 그늘을 보지 못하게 하는 통계는 신뢰하지 않는다. 숫자는 진실을 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하고 싶은 사실만 의도적으로 선발하여 말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부분의 중증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활동지원 서비스는 부족하고, 대기는 길고, 지역 격차는 크다. 부모가 고령이 되면, 우리 아이는 내가 죽고 나면 어디로 가나? 누가 돌봐주나?라는 공포가 삶 전체를 잠식한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성인기 지원 체계가 너무 빈약해, 결과적으로 가족이 전부 떠안는 구조가 되어 있다. 중증발달장애 가족의 삶은 단순히 '힘들다' 또는 '고되다'가 아니다. 하루 24시간 돌봄 노동, 화장실 사용, 접근성, 이동성, 차별 시선으로 인한 외출의 어려움, 그로인한 부모의 경력 단절, 형제자매에게 돌아가는 정서적 또는 경제적 부담, 시설은 부족하고, 지역 중증장애 돌봄기관은 경쟁률이 높거나 수년 대기, 부모 중 누군가 병원을 가야 할 때조차 아이를 맡길 곳 없음, 등등 이 한페이지에 다 나열하기 조차 어려운 에로사항들을 당연하게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전환교육은 특수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주에따라 법적으로 14세 또는 16세부터 transition IEP를 의무화한다. 이 transition IEP는 각종 community based instruction이 들어 있으며, 학교, 지역사회, 가정 간 협력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18세가 지나면, 18-22세까지 4년동안 고등학교에서 ATP(Adult Transition Program)을 제공한다. 또한 졸업후 직업 재활(Vocaitonal Rehabilitation), 리저널 센터(Regional Center), 발달서비스국(Department of Developmental Services)등 성인기 서비스 체계와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준다. 그러나, 미국도 완벽하진 않으며, 언어, 문화적 장벽이 있으면 사각지대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민 가정, 저소득 가정의 학생일수록 성인기가 되면 더 깊은 사각지대로 빠진다. 언어의 장벽, 정보의 장벽, 문화의 장벽까지 겹치면 그 가족이 마주하는 현실은 통계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냉혹하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은 2007년 특수교육법 이후 전환교육을 도입했다. 성인 전환 프로그램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이 졸업 후 안정적인 일자리, 의미 있는 자아실현이나 사회참여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환교육의 본질은, 기본적인 '삶'을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단순히, 직업 훈련, 진로 수립, 자립 기술이 아니라,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은, 직업재활은 단순반복작업이고, 자립프로그램은 형식적 활동만 하며, 지역사회 연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IEP의 전환목표는 '적응훈련' 또는 '사회활동 참여'같은 추상적 표현으로 그친다. 즉, 학교 이후의 '삶'이 텅 비어 있다.
우리는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교육자이기도 하지만, 그 재능이 살아갈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동행자이기도 하다. 전환교육은 학생의 진로 지도나 직업 재활 활동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내는 삶'을 만드는 일이다. 사회가 존엄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해 놓치않아, 장애인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존엄까지도 해치고 있다면, 교육자인 우리라도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닐까. 부모가 사라진 뒤에도, 아이가 혼자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구조를 사회가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제공해야 할까. 다음은 미국과 한국 사회 모두에게 권하는 바이다. 우선 공교육은 이제 더 이상 ‘수업하는 곳’에 머무르는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지역사회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지자체, 도서관, 복지관, 직업훈련기관, 지역 기업과 지속적이면서도 제도적인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 학생들이 학교 밖의 세계를 일찍부터 경험하고, 성인기로 이행했을 때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의 관계망과 서비스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교육청과 지자체, 복지기관, 고용센터가 서로 데이터를 공유하고 학생의 전환 플랜을 공동으로 설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 역시 장애인을 더 많이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의무를 채우는 수준의 고용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업은 장애인이 조직 안에서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전문 인력을 갖추어야 한다. 직무코치, 산업사회복지사, 직장 내 지원전문가 등은 단지 업무 수행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 직원의 특성과 강점을 파악하고, 직무 환경을 조정하며, 동료들과의 관계를 매개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것은 “지원 없이 혼자 버텨라”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원 구조 속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사회복지 시스템 또한 성인기 이후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지금의 장애인 복지 체계는 미취학기와 학령기에 집중되어 있고, 정작 성인기 이후의 서비스는 부족하거나 흩어져 있어 장애인의 삶이 갑자기 공백을 맞는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혼자 살 수 있느냐, 일할 수 있느냐”라는 좁은 목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의미 있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 주거, 고용, 건강, 자아실현, 사회참여 통합 지원체계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원주택을 확대하고, 성인기 전환센터를 전국적으로 의무화하며, 발달장애, 자폐스펙트럼, 또는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직업훈련과 고용 연계 패스웨이를 마련하고, 지역사회 기반의 여가, 관계망 형성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세부 구조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런 제안들이 어떤 지역이나 단체에서는 다소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이 방향으로 나아갈 현실적 가능성과 변화의 여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믿는다. 결국 전환교육은 아이를 사회로 내보내기 위한 사전 준비가 아니라, 사회가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교육자와 지역사회, 기업, 그리고 국가가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나눌 때, 장애인의 삶은 더 이상 가족의 희생과 헌신에만 기대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반 위에서 스스로 설 수 있는 '모두가 존엄한 삶'으로 확장될 수 있다.
종이 울리면
종이 울리면,
가방을 닫고,
의자를 넣고,
아이들은 떠들지.
교탁을 치고,
모두들 조용,
차렷,
선생님께 경례.
설렘과 아쉬움에,
다시 시끌벅적
우리 또 만나자
교실문이 드르륵 쾅.
닫힌 문을
바라보다,
홀로
의자를 드르륵
종이 울리면,
다시,
앉는다.
종이 울려도,
갈 곳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