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선

어떻게 쳐다보고 있나요?

by 신지은

언젠가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아이와 엄마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이가 무언가에 놀라고 당황하여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는 아이의 모습에 더 당황하여 버스 안의 시민들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다. 그 장면을 놓고 패널들은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쳤으니 부모가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그 장면뿐만 아니라, 그 장면을 놓고 평가하는 그 프로그램 자체가 나에겐 굉장히 불쾌하고 기괴하다고 까지 느껴졌다. 아이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사람들은 힐끗힐끗 쳐다보고,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장애로 인해 생긴 잠시의 소란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한다. 그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부정하는 엄마로 인해 어떤 자아상을 형성하게 될까? 자신을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며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게 될까?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 이렇게 태어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한다. 당신은 아주 어릴 때부터 매 순간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사과하며 자라났다. 당신이라면 이런 삶이 정상적인 인간의 삶이고, 이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놀이터나 버스 안 같은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자신의 머리를 치며 울부짖고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혹은 자신의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그런 행동을 보여 당황한 적이 있는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까? 자폐스펙트럼은 대체적으로 감각자극에 예민한 특성을 가진 장애이다. 스테레오타입적인 사고방식이 있어서 본인이 예상했던 루틴과 계획에 어긋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과도한 상동행동을 보인다면, 아이가 순간적으로 감각과 감정에 고통을 겪고 있는 거지, 절대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버릇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회가 좀 더 너그럽고 긍휼 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 거지 아이가 시끄럽게 해서 부모가 죄송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지만, 나도 어느 정도 한국적 사고방식이 있는 엄마인지라,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거나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똑같다. "미안해 하지마. 아이가 아이다운 거니, 미안할 일이 아니야." 그래도 나는 여전히 미안하다고 한다. 사실 교사인 내 기준은 규칙에 조금 더 엄격한 편이고, 우리 아이들은 그 규칙을 가정과 학교에서 끊임없이 훈련받는 중이다. 대부분의 규칙들은 이미 아주 잘 알고, 잘 지키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집에서 원래 하던 대로 밖에서 바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미안해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럴 수 없는 발달단계였을 땐, 나도 단 한 번도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가령, 갖난쟁이가 배고파서 운다거나, 아직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어른에게 인사하지 않는 것 등이다. 그건 그 발달시기에 원래 그런 것이지, 아이나 어른 그 누구의 잘 못도 아니다. 그 발달단계의 인간은 모두가 그런 것인데, 그런 자연의 법칙을 사과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존재를 사회로 데리고 나온 것을 사과해야 하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자폐스펙트럼, 발달장애, ADHD를 가진 우리 반 아이들과 밖으로 나가서도 난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발달)장애로 인해 빚어진 소란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고, 아직 그럴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의 잘못도, 가르치지 않은 내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과하는 순간 아이의 장애를 사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사람을 치고 다니고 소리를 지르게 두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장애가 있어도 그 정도 규칙은 다 배울 수 있다. 어떤 어른들이 장애를 핑계로 가르치지 않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의 특성상 정말 예상치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저 위의 버스사건과 같은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 공황장애로 내 발밑에 쓰러졌다고, 왜 내 발밑에 쓰러지는 민폐를 끼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내가 당신 발밑에 쓰러지는 민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기괴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아이가 감각과부하로 발작을 일으킨다고 그것을 민폐로 볼일인지, 오히려 나서서 도움을 주어야 할 일인지 사회가 생각해 봐야 할 일인 것 같다.


다만, 부모님은 아이가 덜 불안해하고 감각자극에 덜 노출되도록, 시각적 지원(visual support)과 함께 길에서 일어날 모든 상황을 최대한 미리 알려주도록 하고(예: 이제 1분 뒤에 터널을 지나갈 거야), 헤드폰을 쓰고 감각을 다른데 분산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도록 평소부터 버릇을 들이게 해야 한다.


간혹 일반학급 아이들이나, 심지어 우리 반 아이들조차도 감각과부하로 인해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을 때리는 친구를 보며, “쟤는 왜 저래요?”라고 묻는다. 아이들이 질문하는 의도는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정말 왜 그러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럼 나는 질문한 아이에게, "He's just having a hard time. He needs help just like everyone else(지금 많이 힘들어서 그래. 우리 모두 힘들 땐 도움이 필요하잖아. 이 친구도 마찬가지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날, 카밍코너에서 홀로 자신의 귀와 머리를 치며 울부짖는 아이에게, 전에 그 질문을 했던 아이가 조용히 다가가 “It’s okay.”라고 말하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공룡 인형을 건네주는 장면을 보았다. 어른이 장애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다. 자페스펙트럼, ADHD, 발달장애가 있어, 다른 이의 상황과 마음을 전형적 발달 또래들처럼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우리 특수반 학생들도,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챙겨줄 줄 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은 모두 어른들의 몫이다.


하물며, 일반학급의 아이들이 그걸 못하겠는가.

하물며, 어른인 당신이 못하겠는가.

초등학교 특수반, 우리 반 아이들도 하는 걸.


학창 시절 어른들은 말했다. 사회는 전쟁터라고. 실제로 정말 사회는 Active shooter(총기난사범)가 판치는 전쟁터인 것 같다. 학교는 그런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준비하고 연습하는 Lockdown Drill(비상대피훈련)이 있는 교실이다 (프롤로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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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교사, 부모, 행정가, 시민으로서 이 세대 아이들에게 하얀 거짓말을 한다. '별을 다 모으고 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아이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떨리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의 종이에 별자리를 그려가며 예쁜 꿈을 꾸고 멋진 상상을 펼친다. 나에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인데, 아이들에겐 그저 재밌는 게임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은 죽을 때까지 재밌는 추억으로만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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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선이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난사를 하고 테러를 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나는 이제, 예상치 못한 암흑 속을 뛰어다니며 구해달라 소리치는 아이들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낙관주의 교사이기보다, '별 모으기 게임'으로 아이들의 주의를 돌리며, 상황을 넘어가게끔 하는 현실적인 교사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삶과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 이렇게 말하지만, 세상에 나가서 사회와 시민들의 액티브 슈팅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가르쳐 주지 못했다. 참으라고 해야 할까? 도망가라고 해야 할까? 맞서 싸우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당신의 시선을 바꾸게 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어떤 에피소드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되었을지 모르겠으나, 누군가는 그런 이상적인 얘기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별을 다 모으지 않아도 나갈 수 있는 세상이 올 테니까. 그런 바보 같은 게임을 하며 구석에 숨지 않아도, 안전한 학교와 사회에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그런 세상. 그런 세상은 당신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더 이상 서로를 향해 상처를 쏘아대는 사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마음의 방아쇠를 내려놓고, 누군가를 향한 조준 대신, 이해의 시선으로 서로를 들여다 보는 것은 어떨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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