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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un 01. 2023

고대 마야인 사우나 체험은 어떨까

멕시코 치아파스 & 마야인들의 사우나 체험  


"나 여기 떠나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떼마스칼(Temazcal)"

"메스칼??(Mezcal??)"

*메스칼은 멕시코 데낄라와 비슷한 증류주 이름

"아니 아니, 떼마스칼이라고. 말하자면 긴데 이건 나중에 알려줄게. 매주 토요일마다 하는데 내일 거기 같이 가지 않을래?"


멕시코 치아파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라는 곳에서 거의 한 달째 살고 있다. 이곳에서 코워킹&코리빙 스페이스에서 자원봉사하며 미국과 멕시코에서 재택근무하는 노매드들이랑 어울려서 노는데 그중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온 친구 A, 그리고 퀘벡에서 온 영상 관련 일을 하는 친구 B 이렇게 우린 삼총사처럼 친했다.


금요일 업무가 끝나자마자 밖으로 나가 타코부터 먹고, 포쉬(Pox 치아파스에서만 나오는 전통 증류주. 마야인들이 고대 의식에서 사용한 술로도 알려져 있다) 바에 가서 술을 마셨다. 이후 저렴한 와인바에 가서 보틀로 술을 시켜 하하 호호하며 정말 스피커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새벽 1시 넘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조용한 거리를 걸으며 함께 숙소로 걸어오는데, A가 뜬금없이 꺼낸 "떼마스칼" 제안에 뭔지 모르고 나는 그냥 흔쾌히 승낙했다. 대강 친구가 말해주기론 마야인들의 전통 영적 의식(Spritual/Ritual Ceremony)이라길래 구경하면 재밌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내일 주말이고 할 일도 없는데 가지 뭐"



"수영복 챙겨, 물도 많이 마시고"

간밤에 술을 여러 종류 섞어서 마셔서 그런지, 아침부터 멍했다.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메스꺼운 숙취 현상은 없었지만,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드는 그런 상태. 해먹에 누워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왓츠앱 메시지 알림음이 띵하고 울렸다.


- 젠장, 떼마스칼이 오후 2시에서 갑자기 오전 11시로 앞당겼대.


평소였다면 떼마스칼이 뭔지 찾아봤을 텐데, 친구의 메시지를 받은 후에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냥 의식 구경하는 거면 오후 2시에 가나 오전 11시에 가나 상관없겠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11시에 가자라고 답을 보냈다.


"그래, 그럼 수영복 챙기고, 물 같은 거 많이 챙겨야 돼. 원래 전날에 술 먹지 않는 게 규칙이라는데.. 탈수 우려가 있어서. 우린 뭐... 그냥 가보자"


친구의 말에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왜, 마야 의식 구경하러 가는데 수영복을 챙기는 걸까? 가서 물에 몸을 담그는 의식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다. 스페인어로 대화하는데 머리가 멍해서 더 물어볼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내 마음대로 어디 수영이라도 할 수 있나 보다 하고 단정 지었다.



택시기사가 가기 두려웠던 곳



정말 암호처럼 팻말 안내가 되어있던 떼마스칼

오전 11시 시작 이래서 급하게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 기사는 우리 목적지를 듣더니 대체 거길 왜 가냐고 되물었다. 처음엔 그냥 오지랖이라 생각했는데, "여긴 위험한 곳이다. 저번에 여자 2명이 살해됐다" "예전에 한 택시기사가 여기 가자는 손님 말대로 갔다가 피살됐다"하면서 계속 겁을 주는 것이었다. 몬떼레이 친구는 나에게 영어로 "이거 택시비 많이 받으려는 수작이다"며 계속해서 택시 기사한테 "그래서 얼마냐고요"를 되물었다.


끝내 가격을 말 안 하고 계속 말을 빙빙 돌리던 택시 기사는 도착하고 나서 150페소(1만 원 내외)를 불렀고 우린 직감적으로 최소 2배 이상 바가지란 것을 알았다. A는 택시 기사에서 시세보다 높은 거 다 안다고 말하며 100페소 지폐를 내밀었다. (이후 이곳에 도착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시세는 약 50페소. 우리가 준 100페소도 2배에 가까운 요금이었다)


바가지를 쓴 것보다 택시 타는 내내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공포감을 조성한 것 자체가 불쾌했다.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된 떼마스칼의 실체

나뭇가지로 만든 돔 앞에 불을 때고 있는 모습

11시 20분쯤 도착했는데 임의로 만든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멀리 나뭇가지 대로 돔 형태로 만든 구조물이 보였고 그 앞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웃동을 벗은 한 남자는 떼마스칼에 온 걸 환영한다며 돔 형태로 만든 구조물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우리 앞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히피스러운 외모를 물씬 풍기는 스페인 여자와 홍콩 남자였다. 검은색 곱실거리는 긴 머리를 가진 그녀가 팔을 들어 올리니 겨드랑이 털이 수북해 순간 나도 모르게 색계 탕웨이를 떠올렸다. 그녀는 수풀 위에 누워 태양을 쬐고 있었는데 떼마스칼 경험만 한 20번 넘는다고 한다. 그 옆의 홍콩 남자는 산 크리스토발에 산지 1년 정도 됐는데 항상 가야지 가야지 마음만 먹다가 오늘 눈을 떴는데 갑자기 오고 싶단 생각이 들어 처음 왔다고 소개했다.

나는 이제야 떼마스칼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 시작했다. 돔 형태로 만든 구조물 위로는 매우 두꺼운 담요 등을 여러 층 겹겹하게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 앞에는 계속 불을 피워 돌들을 뜨겁게 데우고 있었다. 떼마스칼 의식은 전통 마야인들이 전쟁 전후 등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기 위한 의식으로 치렀다고 전해진다. 


돔 형태 구조물은 '자궁'을 의미한다. 이곳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수영복 혹은 나체로 들어간다. 그리고 돔 한가운데 불에 수시간 달군 뜨거운 돌들을 잔뜩 넣고 물을 뿌려 증기를 만든다. 그리고 입구를 단단히 봉쇄한 후 약 2시간~4시간 정도 노래 등을 부르며 땀을 쫙 빼는 의식이다. 정말 탈진할 정도로 땀을 엄청나게 빼는 의식이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 물을 엄청 많이 마셔야 한다.


처음엔 우리나라 한증막 수준일 거라 생각하고 꽤 자신만만했다. 뭐 한증막 정도면 2시간 힘들 수 있지만 그래도 못 버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불을 때는 것을 구경하다가 돔 위에 매우 두터운 담요를 올리는 것을 도왔다. 전통적으론 화산암이나 각종 진흙으로 빚은 벽돌 등으로 만든 이글루 형태로 존재했지만 스페인군 침입으로 당시 대부분 떼마스칼 흔적은 모두 파괴되었다고 한다.


자궁이라 불리는 이 돔을 완성하고 불로 돌을 충분히 달구는데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오전 11시 시작한다고 해서 헐레벌떡 도착했는데, 오후 1시 좀 넘으니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맨발에 웃통을 벗은 상태 거나 여자들은 노브라 위에 얇은 나시를 입은 상태였다.



아 이거 생각보다 정말 히피스러운 걸

종종 서양인들이 영적인(Spiritual) 의식 등에 심취해 어느 나라를 가나 이런 토속 신앙 등에 심취하는 경우를 만날 수 있다. 이들도 그런 부류인 것으로 보였다. 나름 오픈마인드지만 그래도 모태 "유교걸" 입장에선 나체 혹은 거의 반나체로 20명이 이 돔에 들어가 땀을 쫙 빼면서 노래를 부르고 바닥을 뒹굴뒹굴 거린다는 것이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다.

나 빼고 대부분 히피 비주얼의 사람들

오후 1시 40분이 되자, 모두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한 줌씩 건네받은 무언가(향이 있는 잿가루)를 한 명씩 차례로 불에 뿌린 후 돔 입구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땅에 키스를 한 후 기어서 들어갔다. (돔 입구는 엎드려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았다) 돔 안에선 가운데 돌을 놓을 자리를 따라 총 2줄로 둥글게 앉았다. 유경험자들은 앞줄, 초심자들은 뒤쪽 벽 쪽으로 앉았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 다닥다닥 붙어 앉았는데 허리를 온전히 펴기는 어려웠고 구부정한 상태에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돌이 들어오고 물을 뿌리면 뜨거운 증기가 밀폐된 공간을 감쌀 예정입니다. 고개를 올리면 뜨거운 증기가 다 위로 가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 있으니 초심자들은 가급적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더 힘들면 바닥에 납작 엎드리세요"


바닥에 엎드리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엎드릴 수가 없는 상태인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아직 가운데 돌이 들어오기 전이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3시간은 넘게 달군 돌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돌을 하나둘씩 넣는데 그 열기가 상상을 초월한 이상으로 강했다. 여기에 물을 뿌려 뜨거운 증기를 만들면서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입구를 밀폐하니 칠흑 같은 어둠이 도래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가운데 물을 뿌릴 때 돌의 빨간 불똥만이 보일 뿐이었다. 폐소 공포증이 있다면 기겁할 수준으로 공포에 가까웠는데 난 정말 예상한 것 이상으로 당황했다.


거의 다 나았던 감기 중 유일하게 코가 막힌 상태였는데, 코로 깊이 호흡을 하라는 사람들의 말이 무용지물이었다. 코로는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입으로 크게 들이 마시니 뜨거운 열기가 목을 컥하고 막았다. 머리에 얼굴을 파묻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걸 흥얼흥얼 따라 불러야 하는데 호흡을 제대로 못하니 죽을 맛이었다. 이대로 2시간을 해야 한다고? 머리가 하얘지고 패닉이 오기 시작했다. 노래를 한 5곡을 부른 후 입구를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오는데,  순간 정말 죽을 거 같았던 게 사르르 풀렸다고 할까.


분명 탈진하거나 기절하기 직전에서 살아남은 기분이었다. 포기하고 나가야 하나 하고 친구에게 "나 코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을 거 같아"라고 말하니 주변에서 나보고 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납작 엎드리라고 조언했다. 흙바닥은 신기하게도 약간 촉촉하게 차가움이 남아 있었다. 보통 노래 5~6곡을 1라운드라 부르고 이걸 4~5번 하면서 총 2시간을 진행한다고 한다. 다행히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한 10분 정도 가졌다. 만약 쉬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난 진작 백기를 들며 나갔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서 2시간 이상 버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첫 번째 라운드에서 미친 듯이 죽을 거 같았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라운드에선 흙바닥에 바짝 엎드리니 생각보다 버틸만했다. 물론, 노래가 진행되는 내내 얼굴을 들지 않았고 흙에 거의 키스하다시피 얼굴을 붙였다. 그제야 왜 사람들이 나체 혹은 수영복 차림으로 하라고 권장하는지 깨달았다. 자연스레 진흙에 뒹굴거리는 꼴이 되는데 정작 돔 안에선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매 라운드 사이 쉬는 시간엔 원하는 사람에 한해 "참회하고 싶은 것. 후회되는 것. 혹은 반성하거나 감사한 사람들" 등 속에 있는 말을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말하면서 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누군가는 정말 5분 내내 쉬지 않고 말을 했다. 한국어로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 하다가 말할 기력조차 없는 상태라 지긋이 남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4라운드가 끝나자 입구가 열렸다. 끝이었다. 사람들은 한 명씩 바닥에 키스를 한 후 돔 밖으로 나갔다. 이 의식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가는 의식으로 "정화를 마친 후 재탄생"을 뜻한다고 한다. A와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돔에 잠시 엎드리고 있다가 거의 마지막에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나체 상태로 옆의 흙탕물에 가까운 강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야하다는 생각도 안 들고 그냥 다들 하나의 몸뚱이처럼 보였다.

돌의 열기로 끓인 핫초코

차가운 물에 들어가 몸에 묻은 진흙을 씻고 나오니 아까 사용한 돌의 열기로 끓인 핫초코를 한 컵 건네받았다. 맛은 싱거운 코코아 맛이었는데,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마시는 이 음료는 그야말로 훌륭한 에너지 보충제였다.


한편에 마련된 미니 바나나로 배를 채우고 A와 나는 숨을 골랐다. 온몸에 힘이 쫙 빠진 상태였는데, 정말 '정화 의식'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머리가 맑아졌다. 극한의 체험을 2시간 동안하고 알 수 없는 주술 같은 노래를 부르며 버티는 시간은 오히려 잡생각 없이 오롯이 이 의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살면서 그 어느 사우나, 한증막보다 강렬하고 공포감까지 느꼈던 떼마스칼은 멕시코에 오면 한 번쯤 해볼 만한 경험이지만, 다음에 또 할 의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고민이 된다. 여전히 첫 번째 라운드에서의 충격과 공포는 잊히지 않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전쟁을 통해 온갖 살육을 마친 전사들에겐 이 정도 강도 높은 의식을 치러야 '치유'가 될 거 같기도 하다.


정말 기이하고 신묘했던 경험이었다.  



*떼마스칼 내부 의식은 사진 및 비디오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실 뜨거워서 폰이나 촬영 장비를 들고 갈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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