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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May 14. 2023

밤이 되면 찾아오는 심야타코의 매력

11. 과달라하라 & 심야 타코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마


멕시코에 오기 전에 많은 지인들이나 중남미 여행을 이미 다녀오신 분들이 나에게 한 말이다. 비단 중남미뿐 아니라 안전해 보이는 유럽도 밤이 되면, 다른 그림이 되어 종종 무서운 상황을 만날 수 있는데, 치안이 불안하다는 이미지를 가진 중남미는 오죽할까. 나 역시 이 점이 신경 쓰여 멕시코 도착한 후 약 1~2주일간은 오후 7시면 꼬박꼬박 집에 들어갔다. 밤엔 바나 맥주집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슈퍼마켓에 들러 수제맥주 캔 몇 개 사는 걸로 마음을 달래곤 했다.


2주 정도 지나니, 가동 시간(?)이 약 8~9시까지 늘어났다. 물론 내가 머무르는 곳이 외국인 거주 지역으로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던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밤에 긴장을 바짝 해야 하는 상황은 없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고 난 이후에도 첫날엔 대략 저녁에 주변 동태 파악을 한 후, 슬며시 오후 8시까지 저녁 식사하고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과달라하라란 도시에 1개월 살면서, 슬슬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좋은 멕시코 친구들을 많이 만나, 다양한 현지인 맛집도 방문할 수 있었고,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 멕시코 문화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멕시코에 대한 이해도를 점점 넓혀 갔다. 친구들이랑 시간을 보낼 때면 밤 9시~10시까지도 안심하고 놀 수 있었는데 다들 자동차로 나를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곤 했기 때문이다. 어쩔 땐 친구집이랑 내가 사는 곳이 상당히 멀기 때문에 그냥 시티 센터에 내려다 주면 내가 우버라고 잡고 갈게라고 말을 해도 친구는 한사코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매번 차를 타고 어두운 도시의 밤을 가르고 집에 오다 보니, 점점 이 도시의 밤 풍경이 익숙해졌다.


밤 8시 30분에만 문을 여는 심야 타코

멕시코 타코 식당/노점상들은 운영시간별로 3종류로 나뉜다.


1)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오후 1~2시쯤 장사를 마감

2) 정오쯤부터 시작해 밤 8~9시에 마감

3) 저녁부터 시작해 새벽 2~6시까지


타코는 아침, 점심, 저녁 구분 없이 언제 먹어도 좋지만 다들 제일 맛있을 때의 타코를 술 먹고 난 후 심야 타코를 먹고 집에 갈 때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래서 유독 진짜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타코 맛집들은 대개 밤에 여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엔 아침과 점심에 타코를 무수히 먹었지만 심야 타코는 시간대가 항상 애매해서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 종일 집에서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빵이랑 과일 등으로 대충 때웠는데 저녁이 되니 미친 듯이 배고파졌다. 오후 9시 정도 되어 나가기도 애매했는데, 타코가 정말 미친 듯이 당기는 거였다. 오늘 타코를 안 먹으면 잠이 안 올 거 같아. 그 생각으로, 거실에 나갔는데 하우스 메이트들이 밥은 먹었냐고 물어봤다. 내가 타코가 당기는데 혹시 이 근처에 지금 이 시간에 하는 타코 노점상이 있냐고 물으니 입을 모아  추천하는 곳이 있었다. 집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곳인데, 오후 8시 반부터 여는 곳으로 멀리서부터 차 끌고 오면서까지 이곳에서 타코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사람들

하우스 메이트들이 대략 위치를 알려줬지만, 멀리서부터 이미 불빛과 사람들이 북적대는 모양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약 3명의 각각 1) 또르띠야 2) 고기 굽기 3) 타코 조합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되어 있었는데 어찌나 고기가 많은지 바비큐 노점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이 정도 규모로 하는 타코 노점은 본 적이 없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계속해서 구워지던 고기들

다른 곳과 달리 계산을 먼저 하고 번호표를 받아 주문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계산 줄에 서서 메뉴를 보는데 생각보다 타코 종류가 꽤 많았다.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혹시 여기 인기 있는 메뉴가 뭔지 아세요?"라고 물으니 메뉴 하나를 가리키며 "우리도 이거 먹으러 오늘 멀리서 처음 왔다"라고 알려줬다.


"타끼께소(taquiqueso)"였는데 이름에서 "치즈가 들어간 타코"정도란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결제까지 마친 후 번호표를 받고 잠시 기다리니 타코 요리하는 아저씨 1명이 내 번호를 불렀다. 타끼께소에서도 고기 스타일 1) 초리조(짭짤한 소시지 스타일) 2) 아사도(바비큐 느낌) 3) 아도바다(Adobada, 멕시코식 제육 느낌?) 중에서도 선택할 수 있었다.

마음껏 가져가서 먹을 수 있는 구운 고추와 양파

어떤 게 맛있을지 몰라, 가장 익숙한 초리조로 요청하고 기다리니 잠시 후 또르띠야 2개 위에 치즈 속에 고기를 넣어 만든 덩어리를 걸쳐 올려주었다. 많은 타코를 먹었지만 꽤 생소한 비주얼이다. 한 쪽에 마련된 살사바로 가서 좋아하는 고수와 양파 등을 잔뜩 올리고 살사도 종류별로 올렸다. 여기에선 불에 살짝 구운 통통한 고추도 제공했는데, 이게 은근 별미다.

타끼께소 처음 받을 때 비주얼
살사바가서 원하는 재료 듬뿍 올린 후 비주얼

앉을 곳이 없는 곳이라, 서서 접시를 들고 먹어야 했는데, 사실 첫날 먹었던 맛은 기대 이하였다. 보통 멕시코 초리조는 한국 사람들 입맛에 지나치게 짠 경우가 많고 감칠맛도 없는 편이다. 초리조 말고 아사도나 다른 고기를 시킬 걸 그랬나 생각하며 접시는 어찌 됐건 깨끗하게 비웠다.


보통 한 번 타코를 먹어보고 생각보다 쏘쏘 하면 다시 방문하진 않는데, 어느 날 밤 또 이 집이 문득 생각났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타코 노점이기도 했고, 다른 고기를 시도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땐 사람들이 더 많아서 내가 주문한 음식을 받기까지 약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중간에 "아 그냥 갈까?" 생각도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때 떠났다면 정말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두 번째 먹었을 때 소름 돋게 맛있었던 타끼께소 + 아사도

타끼께소 + 아사도 조합은 내가 그동안 먹었던 타코 중에 가장 맛있었다. 특유의 불맛이 가득한 고기를 치즈가 감쌌는데, 여기에 살사소스에 양파 등이 어우러져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보통 음식은 천천히 먹는 편인데, 이 타코는 한 입 가득 베어 먹은 상태에서도 그다음 한 입을 얼른 기다리게 만들 정도였다. 아, 여기 왜 멀리서도 오는지 알겠다. 이건 진짜 역대급 타코구나. 문득 집 앞에 이런 타코 노점상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졌다.



이후로도 난 이곳에 4~5번 더 방문했다. 과달라하라를 떠나는 전전날의 밤에 이곳에서 마지막 타끼께소를 먹으며 "이 맛은 정말 그리울 거야" 하며 혼자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할 만큼. 여태까지 멕시코를 돌아다니면서 약 4번까지 방문한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진짜 맛있는 타코를 맛보고 싶다면, 주변에 심야 타코집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평균적으로 낮의 타코보단 밤의 타코들이 고기 불향을 잘 살려 구운 경우가 많아, 맥주랑도 잘 어울려서 안주로도 그만이다. 오늘도 이 글 쓰고 타코를 먹으러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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