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과달라하라, 바게트 샌드위치 토르타스
요샌 부먹찍먹 논쟁이 한국에선 "처먹"으로 귀결되고 있는 듯하다. 고백하건대, 난 부먹파다. 탕수육 소스에 탕수육을 한참 담가 그 튀김에 촉촉하게 스며든 그 맛을 좋아한다. 누군가에겐 '눅눅한' 식감이 나에겐 '부드러운' 식감으로 극호이다. 흥미롭게도 멕시코에서도 찍먹과 부먹파를 가를 음식이 있는데 바로 토르타스이다.
토르타스(Tortas)는 멕시코의 바게트 샌드위치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조금 넓적한 바게트빵 같은 담백한 빵에 다양한 재료를 넣는다. 햄, 치즈는 기본으로 아보카도나 초리조, 닭가슴살 등 원하는 재료로 다양한 토르타를 즐길 수 있는데, 여기에 케첩이나 머스터드 대신 멕시코 살사소스를 취향껏 뿌려먹거나 찍어 먹는다.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로서 토르타스는 타코 다음으로 좋아하는 길거리 음식이었다. 한국에선 바게트 같은 식사빵이 꽤 비싸지만, 이곳에선 슈퍼마켓이나 빵집에서 1개 100원~200 원하면 손바닥 만한 식사빵을 살 수 있다. 뗄레라(Telela) 혹은 볼리요(bolillo)라고 부르는데, 또르띠야만큼 식사에 자주 곁들여 먹는 멕시코사람들의 주식이다. 저녁에 마트에 장 보러 가면 빵 코너에서 이 빵만 한 4~10개 쟁반 가득 담는 멕시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 역시 항상 밤마다 이 빵을 2~3개 사서 다음날 아침에 치즈나 햄 등을 끼어 넣곤 했다. 분명 아침에 빵에 햄 치즈를 넣은 나름의 샌드위치를 먹어도, 점심쯤에 살사 소스와 할라피뇨 등이 들어간 멕시코 토르타스가 땡겨서 주변의 토르타스 집을 찾아다니곤 한다.
멕시코 시티 - 토르타스 델 칠라낄레(Tortas del chilaquile)
타코만큼 토르타 역시 멕시코 사람들의 국민 간식이기 때문에 지역별로 특색 있는 토르타가 있다. 멕시코시티는 "토르타스 델 칠라낄레 (Tortas del chilaquile)"가 대표적이다.
칠라낄레는 멕시코의 흔한 아침 식사인데 나초칩같은 튀긴 또르띠야를 잔뜩 깔고 그 위에 치즈와 살사소스를 잔뜩 끼얹어 취향에 따라 고기 등을 먹는 식사이다. 살사소스에 거의 나초칩이 절여져 나온다고 보면 되는데 탕수육 찍먹파가 본다면 식겁할 식감이긴 하다. 보통 접시 가득 나오는 식사인데, 이 요리를 바게트 사이에 넣은 것이 바로 "토르타스 델 칠라낄레"이다.
멕시코 시티의 한 노점상이 이를 발명해 넷플릭스 푸드 다큐 "천상의 맛" 시리즈에도 소개됐기 때문에 꼭 먹고 싶었다. 집 근처 토르타스 델 칠라낄레 노점을 검색하고 정오쯤 방문했는데, 아침 장사 위주로 하는 곳이었는지 거의 정리하고 있었다. (구글맵엔 종종 인기 많은 노점 같은 경우 장소 위치 정보가 제공된다)
급한 마음에 "혹시 토르타스 살 수 있을까?" 물어보니, 지금 구매가능한 것은 닭고기 칠라낄레 토르타스밖에 없다고 한다. 무슨 고기가 됐건, 일단 칠라낄레 토르타스를 먹으러 왔으니 그거라도 달라고 했다.
정리하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즉석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 방치되고 있던 토르타스를 집더니 "치즈크림? (crema de queso)"라고 물었다. 뭐든지 소스가 있으면 추가해서 먹기 때문에 넣어달라고 했고, 아주머니는 다시 빵을 열어 치즈크림을 한 줄 뿌려 다시 덮었다.
얼마나 방치된 토르타스인지 몰라, 위생상 살짝 찝찝했지만, 나름 여기가 토르타스로 정말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토르타스를 받아, 주변 앉을 만한 곳을 찾아 봉지를 주섬주섬 열었다. 빵이 꽤 컸고, 약간 우리나라 피카츄 돈가스를 연상하게 하는 닭고기 튀김과 소스에 녹진하게 절여진 튀긴 나초칩, 야채, 과카몰리, 그리고 치즈 크림과 사워크림 같은 소스가 뿌려져 있다.
한 입 베어 먹자마자 아까 살짝 마음에 걸렸던 찝찝함이 사라졌다. 물론, 고기와 채소 + 소스 + 빵의 조합이 실패하기가 어려운데, 직접 구운 빵의 식감에 고기와 토마토, 과카몰리 등이 부드러운 사워 소스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그리고 튀긴 나초칩은 이미 소스에 절여질 대로 절여진 터라, 사실 모르고 먹으면 이게 나초칩인가 할 정도. 칠라낄레란 음식 특성이 원래 나초칩 같은 것들이 살사소스에 잔뜩 절여 나오기 때문에, 샌드위치를 드레싱빨(?)로 먹는 사람들이라면 맛있게 먹을 샌드위치이다. 하지만, 샌드위치 재료별 고유의 맛을 살린 담백한 샌드위치를 좋아한다면 이 토르타스 델 칠라낄레는 꽤 헤비한 편에 속한다.
과달라하라 - 토르타스 델 아호가다스 (Tortadas del ahogadas)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한 달 살이를 한다고 하니, 멕시코 친구들은 "토르타스 아호가도스(Tortas ahogadas)"먹고 후기를 알려달라고 했다. 언젠가 멕시코 넷상으로 떠돌아다니던 "지역별 토르타스" 정리한 이미지 도표를 본 적이 있는데 과달라하라 하면 토르타스 아호가도스였다.
아호가다스란 단어 선택이 참 재밌는데 굳이 번역하자면 "익사한"에 해당된다. 즉, 빨간 살사소스에 익사한 토르타스란 뜻이다. 비슷한 변형으로 론체 바냐도(lonche bañado)도 있다. 론체는 런치(lunch)에서 기원한 말로 토르타를 부르는 다른 말인데 bañado 는 "목욕하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목욕하는 토르타스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토르타스들은 부먹이다. 대체 샌드위치 부먹은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서, 과달라하라에 도착하고 다음날, 바로 이 토르타스 델 아호가다스를 파는 곳을 찾았다.
가게는 흔한 로컬식당이었다. 토르타스 아호가도스는 1/2 크기 혹은 풀 사이즈로 주문할 수 있는지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간 멕시코에서 보던 사이즈와는 달리 꽤 작은 편이었다. 저거 1/2 사이즈면 간에 기별도 안 가겠는데 싶어서 풀 사이즈로 주문을 하자마자, 토르타스에 고기를 잔뜩 넣더니 그 위에 빨간 소스를 붓는다. 바삭바삭해야 할 바게트는 자연스레 빨간 소스를 머금고 눅눅해진다.
왜 숟가락을 주나 했는데, 손으로 집기가 난감한 비주얼이었다. 소스에 절여진 이 부먹 샌드위치는 손으로 들고 먹는 게 아니라, 숟가락으로 잘라서 먹는다. 빨간 살사소스는 물에 희석시켜 농도는 묽은 편이었는데, 국물처럼 떠먹거나 빵에 다시 끼얹어 먹는다.
빵이 작은 이유가 있었다. 들어가는 고기양이 상당했다. 두툼하게 자른 고기 조각으로만 빵 속을 채운다. 대신 양배추와 양파는 따로 먹을 수 있도록 접시에 올려준다. 이 야채를 빵에 넣어서 먹어도 되고, 아니면 토르타스 따로, 국물에 절여진 야채 따로 먹어도 된다.
탕수육 부먹파이지만, 토르타스 아호가다스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바게트 샌드위치에 빨간 국물이 스며들어 눅눅해지는 것도, 샌드위치를 숟가락으로 잘라먹어야 하는 것도, 바게트 샌드위치의 본질을 모두 파괴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멕시코 사람들에게도 이 음식이 맛있냐고 물으면 반반이다. 물론 과달라하라에선 부먹 극호가 많지만, 다른 도시 사람들에게도 역시 호불호가 갈린다. 과달라하라에서 1개월 살았다고 하면 항상 멕시코 사람들은 "토르타스 아호가다스 맛있었어?"라고 물어본다.
그 때 마다 나의 대답은 "난 그냥 내가 살사를 찍어 먹는 건조하고 바삭한 토르타스가 좋아"
탕수육은 부먹일지라도, 바게트 샌드위치만큼은 찍먹이다.
브런치 픽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