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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May 04. 2023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스토랑

09.과달라하라,  까르네 엔 수후고(Carne en su jugo)

버스 기다리다가 멕시코 남자 번호 딴 사연

멕시코 과달라하라란 도시에 정착하고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과달라하라는 큰 도시였는데, 나는 살짝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잘 사는 동네에 속하는 자포판(Zapopan)이란 곳에 숙소를 구했다. 커다란 2층집 주택에 방이 7개 있어 이를 룸쉐어하는 형태였는데 에어비앤비에서 1개월 단위로 매우 저렴하게 할인을 받아 덥석 예약했다. 동네는 안전한 곳이었지만, 자동차가 없다면 과달라하라 도시를 돌아다니기에 불편했다. 무엇보다 시티 센터에 가려면 버스를 최소 2번은 타야 했다.


멕시코에선 버스 타는 게 꽤 불편한데, 구글맵에 나오는 버스정보가 거의 일치하지 않고, 언제 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버스가 올 때마다 버스기사에게 달려가 "XXX를 지나가요?"라고 물어봐야 했다. 교통도 꽤 막히는 편이라 센터에 가려면 최소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은 잡고 가야 한다. 


게다가 손을 흔들어 "나 버스 타요"라고 있는 힘껏 몸으로 말해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냥 지나가는 버스도 상당히 많다. 이후 멕시코 사람들은 어떻게 버스를 세우는가를 유심히 관찰했는데,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45도 방향으로 찌르듯이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택시 세우는 것처럼 손바닥을 흔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버스는 나를 지나쳤다.  

햇빛이 뜨거웠던 날 과달라하라 센터 

첫날 과달라하라 시티센터를 둘러보고 집에 가는 귀가 편을 알아보는데 갈아탈 필요 없이 버스 1대로 내가 사는 곳 근처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었다. 아직 오후 7시 정도. 해는 방금 졌지만 아직 그리 어둡진 않았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C54. 구글맵엔 5분 후 도착예정이라고 되어있으나 버스는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현지인들에게 "혹시 미안하지만, C54 버스가 여기 지나가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구글맵에 있는 버스 번호와 막상 오는 버스 번호가 다른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아주머니는 자기는 여기서 맨날 버스타지만 한 번도 C54번을 본 적 없다며 나보고 어딜 가냐고 되물었다. 대략적인 내 주소지를 알려주었는데 아주머니는 어디론가 갑자기 전화를 하더니 한 남자에게 "지금 내가 여기 정류장에 있는데 C54번 지나가는지 아냐"라고 물었다. 이후 "어디 가려면 그 버스 어디서 타야 하는지" 등등을 그 남자에게 묻더니, 나에게 여기서 두 블록 걸어가면 또 다른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거기서 내가 사는 곳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거기로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와중에 버스를 기다리는 또 다른 아저씨가 물었다.


-어디 가는데

-아베뉴 OOO 쪽이요

-C54 여기 지나가. 나도 지금 그거 기다리고 있어 


나와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현지인을 만나면 든든한 구세주와 같다. 그 버스가 지날지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지고, 동지애로 함께 버스를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오는 다른 버스들에 비해 내가 기다리는 C54는 30분이 지나도, 40분이 지나도 좀처럼 오지 않았다. 점점 어둑어둑해져서 더욱 불안해졌다. 옆에선 버스를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문득, 현지인들은 구글맵 말고 버스 정보를 어디서 보는지 궁금해졌다.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 혹시 당신들은 버스 정보를 찾을 때 무슨 앱을 사용하나요? 구글맵이 아닌가요?


이어폰을 빼며 나를 쳐다보던 그 대학생은 자기 휴대폰을 보여주면서 "Moovit"이란 앱을 쓴다고 말했다. 나 역시 이 앱을 가지고 있지만 과달라하라에서 이상하게 경로 찾기가 안된다고 하자, 나보고 갈 주소를 말해보라며 자신의 앱에 해당 정보를 넣었다. 그러자 내 앱 결과화면과 다르게 그 친구의 화면에선 "C54번을 타고 1시간 거리"라고 떴다. 이를 계기로 말문을 트게 된 A는 나에게 이 도시에 아는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과달라하라에 어제 도착해 아직 친구를 못 만들었다고 대답했는데, 그는 밤에 버스를 탈 땐 항상 조심하고 기사에게 도착지에 가는지 여부를 항상 확인하라고 했다. 


-고마워, 혹시 과달라하라에 살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너한테 물어봐도 될까?

-당연하지. 

-우리 번호 교환하자

한참 기다린 끝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 기쁨 

이후 그는 내가 버스를 타면 자기에게 메시지를 보내란 말과 함께 자신의 버스를 탔고 난 무려 1시간이나 기다린 이후에야 내가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나와 같이 버스 함께 기다려주던 다른 사람들은 "드디어 왔다!!" 하며 함께 기뻐해주었고, 버스 잡는 것까지 도와줬다. 버스 탄 후 그에게 왓츠앱으로 "드디어 탔다" 알린 후 몇 차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조만간 만나서 밥 한번 먹기로 약속했다. 



기네스북 등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스토랑 

그는 나에게 "가리발디 레스토랑 (Garibaldi Restuarant)"에서 보자고 했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과달라하라에서 꽤 많은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그가 만나자고 한 곳은 하필이면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정반대에 위치해 거의 2시간 걸리는 곳이었다. 


일요일 오후 12시. 버스를 2번 갈아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15살 여동생을 함께 데리고 왔는데 여동생이 K-pop 팬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상당히 똑 부러지고 아나운서 느낌이어서 성숙하게 들렸다. 

식당은 규모가 꽤 컸는데, 우리가 들어섰을 땐 아직 피크 타임은 아니어서 비교적 한산했다. 가게 초입엔 "기네스북 등재" 현판이 자랑스레 붙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스토랑이 멕시코에 있다니. 패스트푸드보다 더 빠르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자리에 잡아 스페인어로 이것저것 수다를 떨었는데 종업원이 오질 않았다. 


-근데, 여기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스토랑이라고 하지 않았어? 

-응 맞아, 근데 주문받은 직후 음식 나오는 속도가 10초 대야

-????? 


여긴 엄연히 '레스토랑 구색'을 갖춘 곳이다. 커다란 홀이 있고 여러 종업원이 있고, 주방에서 홀까지 왔다 갔다 하는데도 최소 30초는 걸릴 것이다. 메뉴판엔 대표 메뉴와 함께 꽤 여러 종류 메뉴가 있는데 이를 1분도 아닌 몇 초대에 가져다준다고? 


대표 메뉴는 '까르네 엔 수 후고 (Carne en su jugo)'인데 직역하자면 육즙에 빠진 고기이다. 과달라하라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나는 치카(스몰 사이즈) 사이즈를, 이 둘은 그란데 사이즈를 시켰다. 


-이거 영상으로 찍어봐야지. 정말 빠르게 서빙되는지 

-더 이상 시킬 메뉴는 없나요? 

-네 없어요. 

하나 둘 셋 넷 

-나왔습니다. 


??????

10초까진 아니었고 주문하자마자 거의 20초도 안돼서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마치 기내식처럼 그릇 위에 은박지로 덮은 상태로 나왔다.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대부분 까르네 데 수 후고 메뉴를 주문한다. 다른 것은 사이즈인데, 음식을 일괄 조리해 사이즈별로 담아 놓은 후 주문 들어오면 바로 나오는 시스템인 거 같았다. 그와 함께 싸서 먹을 수 있는 또르띠야와 음료도 이어 나왔다. 문득, 이 음식 말고 다른 메뉴를 주문해도 이렇게 빨리 나올까 궁금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스토랑 - 까르네 엔 수 후고

음식 맛은 불고기와 상당히 유사했다. 비주얼도 불고기 양념에 절인 고기 느낌이랄까? 약간 단 맛이 덜한 짭짤한 불고기를 먹는 느낌이었는데 차이라고 하면, 양념 국물이 마치 많아 이를 함께 떠먹는 방식으로 먹는다는 점. 수프처럼 즐겨도 되고, 또르띠야에 고기를 얹어 먹어도 좋다. 만약 또르띠야에 싸서 먹지 않으면 배부를 양은 아니었다. 또르띠야가 우리나라의 밥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갓 만든 또르띠야는 그냥 먹어도 참 맛있었다. 

과달라하라 대표 디저트 헤리까야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로 시킨 '헤리까야(jericalla)'도 바로 나왔다. 과달라하라의 대표 디저트로도 유명한데 크림 브륄레랑 비슷하다. 차이라면 크림 브륄레보다 사이즈가 훨씬 크다고 할까? 과달라하라는 역사상 프랑스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크림 브륄레 스타일의 디저트가 많이 발달한 편이다. 헤리까야는 종종 외지인들이 과달라하라 사람들을 말할 때 부르는 별칭이기도 하다. 보통 일반 크림 브륄레는 딱딱한 표면을 깨먹는 맛이 있다면, 헤리까야는 부드럽게 떠먹는다. 크림 브륄레나 에그 타르트 느낌 디저트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사랑할 맛. 커피를 부르는 맛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스토랑이었지만 분위기는 꽤 느긋하다. 빨리 먹고 나가야 할 것 같은 패스트푸드 식당의 북적임과 달리, 공간과 테이블 간격 모두 널찍하게 배치되어 있어 있다. 약 2시간 정도 느긋하게 앉아 수다를 떨고 나왔다. 버스 기다리다가도 친구를 만들어 밥 한 끼 같이 먹을 수 있는 곳이 멕시코다. 







브런치 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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