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멕시코 시티 & 비리아 타코
2021년 가장 많이 검색된 음식 1위
미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 중 하나로 '타코'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타코는 멕시코 요리이지만 많은 미국 사람들이 타코를 거의 자국 음식만큼 많이 먹고, 미국식으로 변형한 타코 및 멕시칸 요리들이 많기 때문에 자국 음식으로 착각할 정도. 예를 들면 타코벨의 타코는 미국식 하드쉘 타코이지, 멕시코식 타코가 아니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타코벨 타코는 어때?"라고 묻는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한국식 까르보나라를 주며 "한국 까르보나라 어때?"라고 묻는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미국 구글 검색 트렌드 1위 한 음식은 '비리아 타코(Birria Taco, Taco de Birria)'였다. '음식' 부문에서 검색어 1위를 했다는 건데,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 비리아 타코는 틱톡에서 비리아 타코를 국물에 찍어먹는 쇼트 클립 영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미국 전역에 비리아 타코 노점상이 '우리나라 로제 떡볶이 열풍 급'으로 생겨나며 돌풍을 일으켰다.
비리아 타코의 '비리아(Birria)'는 염소 고기 스튜란 뜻인데, 멕시코 할리스코 (중북부) 지방의 주요 요리이다. 스튜 속에 있는 고기를 또르띠야에 싼 게 비리아 타코이고, 이걸 국물에 찍어 먹는 게 소위 '먹잘알들의 비리아 타코 먹는 방식'이다. 어찌 됐건 멕시코 중북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비리아 타코는 뜬금없이 2021년 미국 사람들이 가장 열광한 음식이 됐다.
처음 맛본 비리아타코는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멕시코에 오기 전에 이미 한국에서 비리아 타코에 대한 소식을 접했던 터라 기대가 상당히 컸다. 멕시코에 가면 비리아 타코를 얼른 먹어봐야지라고 다짐했었는데, 의외로 멕시코 시티에선 비리아 타코란 글자가 자주 보이진 않았다.
어느 날, 멕시코 도서관을 나와 메트로 버스를 타고 잘 모르는 낯선 곳에 내렸다. 원래는 좋아하던 카페까지 한 20분 걸어갈 작정으로 내린 거였는데, 내리자마자 길 건너편에 수많은 타코 노점상들이 보였고 그 앞에 자리 잡아 타코를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순간 허기를 느꼈던 나는, 그중 가장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노점상을 기웃거렸는데 반가운 이름이 보였다. 바로 'taco de birria 비리아 타코'.
빈자리가 없어 메뉴판을 보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마침내 앞에 있는 아저씨가 다 먹고 일어섰다. 메뉴판엔 '비리아 타코 3개 주문 시 콘소메 수프를 무료 제공'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원래는 타코를 1개씩 주문해 먹어본 후 맛있는 타코를 추가 주문하는 편인데, 무료로 제공한다는 저 달콤한 유혹(?)에 한 번에 비리아 타코 3개를 주문했다.
한가운데에는 부드럽게 재워둔 고기 수분을 유지하기 위해 비닐로 덮어두고 있었다. 총 3명이서 의기 투합하면서 움직였는데 한쪽에선 열심히 고기를 썰고 있었고, 한쪽에선 접시에 또르띠야를 세팅해 고기와 고수, 양파 등을 얹고 마지막엔 살사를 뿌렸다. 보통 살사는 기호에 맞게 넣을 수 있도록 손님에게 넘기는데 이곳에선 그냥 디폴트로 이미 살사를 뿌려주는 게 독특했다.
우선 콘소메 수프가 나왔는데, 일본에서 들어온 옥수수 베이스의 콘소메 맛과는 전혀 다른 맛이다. 고수와 양파 등이 둥둥 떠있는 맑은 고기 국물이었는데, 고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손길이 가는 마성의 맛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주문한 비리아 타코가 나왔다.
타코 전체가 국물 등에 촉촉하게 절여진 듯한 형태로 속엔 오랜 시간 푹 고아 부드러워진 스튜용 고기들과 파, 고수, 양파 등이 가득 올라왔다. 미국에선 비리아 타코를 국물에 찍어먹는 '찍먹'이라면, 여기에선 이미 타코에 국물이 잔뜩 절여진 상태이니 일종의 '부먹'이었다. 맨 손으로 먹기엔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촉촉하게 국물에 적셔진 상태였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타코를 수저를 써서 먹을 순 없으니 조심스레 손으로 집어 한 입 넣었다.
비리아 타코는 그동안 먹었던 타코와는 다른 맛과 식감으로 훌륭하게 맛있었다. 찝찝할 정도로 손에 국물이 많이 묻어 나왔지만, 이 국물 맛이 일품이었는데, 고기는 갈비찜 고기들을 잘게 썰어 집어넣은 느낌이었다. 갈비찜의 고기 맛과 불고기의 식감이 공존하는 그런 묘한 고기맛이라고 할까? 역시 비리아 타코가 이름을 날린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그 자리에서 비리아 타코 3개와 콘소메 수프를 순삭 했다. 심지어 가격마저 착하다. 타코 3개에 36페소. 한화로 3천 원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다.
다소 마음에 걸렸던 것은 타코를 요리하던 그 손으로 내가 낸 돈을 그대로 받고 거스름돈을 줬다는 것. 그리고 그 손으로 다시 타코를 만지던 그 손이었다.
문제는 자정 이후부터 시작됐다. 원래 자기 전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 아닌데, 유독 배가 정말 아팠다. 인도나 다른 국가에서도 거의 겪어본 적이 없는 배탈이 난 것이다. 길거리 음식 아무리 먹어도 물갈이 안 하는 타입이라고 자부했건만, 드디어 터진 건가 싶었다. 범인은 명확했다. 아까 내 돈을 맨 손으로 받아 그대로 타코를 만지던 그 손이 계속 떠올랐다. 맛은 정말 있었는데, 위생이 문제였던 맛집인 것이다. (타코 노점상들도 손 씻는 물이나 손 세정제를 비치하는 곳이 많다)
그 이후로 비리아 타코에 대한 두려움이 살짝 생기기 시작했다.
비리아가 유명한 지역에서 두 번째로 맛보았다
멕시코 시티에서 2주 머무르고 잠시 근교 지역 여행을 한 뒤, 멕시코 할리스코 (중북부 주)에 위치한 '과달라하라'란 도시에서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멕시코의 제2 도시이며, 할리스코 주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비리아다. 비리아 타코 여기서 다시 한번 맛봐야지 다짐은 했지만, 어째 마음이 썩 가진 않았다. 그러다가 과달라하라 한달살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쯤 돼서야 "아 그래도 여기서 비리아도 먹어봐야지" 란 생각으로 위생상으로 깔끔한 식당에서 먹기로 결심했다.
내가 찾은 식당은 1948년부터 비리아를 전문으로 한 역사가 꽤 깊은 곳이었는데 점심 무렵에 가니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이곳에선 비리아 타코보단 비리아 스튜 가 메인이었는데 비리아 스튜를 시키면 함께 나오는 또르띠야에 싸 먹는 형태다. 물론 비리아 타코로도 따로 판매하지만, 식당 내부에 있는 대부분 손님들은 저마다 커다란 스튜 그릇을 앞에 두고 먹고 있었다.
비리아 스튜를 주문하는데 1)립 2)고기만 3)기타(?) 등에서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내 옆에서 뼈를 통째로 뜯고 있는 손님의 것이 립으로 추정됐다. 염소 고기도 립부위를 먹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뼈를 뜯는 수고로움은 덜고 싶어 고기만 있는 걸로 주문했다.
곧, 빨간 농후한 국물에 고기가 가득한 비리아 스튜가 나왔다. 안엔 고기가 가득 들어있었고, 이를 함께 나온 또르띠야에 싸서 살사 등을 첨가한 후 국물에 찍어먹으면 이게 비리아 타코였다. 타코로 치면 최소 작은 타코 8개는 넘게 만들 분량으로 양이 꽤 많았다.
맛은 사실 기대를 많이 했던 것에 비해 생각보다 평범한 고기 스튜 맛이었는데 고기의 식감이 갈비찜의 그것과 닮았다는 것이 특별했다. 이는 이미 멕시코 시티에서 맛본 비리아 타코에서도 경험했는데, 이번엔 조금 더 큰 고기 덩어리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맛만 놓고 볼 때 개인적으로 멕시코 시티에서 불량식품처럼 먹은 비리아 타코가 훨씬 맛있었다. 위생상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당시엔 "와 비리아 타코 비리아 타코 하는 이유가 있구나"하면서 콘소메 수프 흡입부터 타코를 순삭 했는데 이번 비리아 스튜는 깔끔한 맛에 고기도 풍족한데 오히려 너무 평범한 게 다가왔다. 물론, 이번에도 스튜와 또르띠야를 모두 다 동냈지만, 개인적으론 재방문하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래서 내가 길거리 음식을 끊지 못하는 것 같다. 위생상으론 그리 좋지 못하더라도, 길거리 음식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음식은 길거리에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 호텔에서 만드는 떡볶이보다 포장마차 떡볶이를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