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과달라하라 & 세르베세리아
"멕시코 핫플 맥주집"
멕시코엔 핫한 술집 프랜차이즈가 있다. 세르베세리아 차풀테펙(Cerveceria chapultepec)인데 세르베세리아는 '맥주를 (Cerveza)를 파는 곳' 즉, 우리나라 말로 굳이 옮기자면 '호프집'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멕시코 제2의 도시인 과달라하라에 어딜 가나 이 호프집은 흔히 볼 수 있다. 지금은 홈페이지를 확인하니, 과달라하라에서 시작했으나 멕시코 전역, 페루, 온두라스 등 남미 전역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처음 이 호프집을 인지한 것은 이 도시에 도착한 일주일째, 버스 타다가 우연히 친해진 22세 멕시코 현지 남자애 A와 밥 먹고 어딘가로 향할 때였다. 걸으면서 조금 독특하거나 달라 보이는 건물이 있으면 "저건 백화점이고" "저긴 우리 누나가 일하는 곳이고" 등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보인 2층짜리 건물이 있었는데 세르베세리아 차풀테펙(Cervezeria Chapultepec)이었다. 그곳을 가리키며 A는 "저기가 요새 정말 핫한 곳이야. 대부분 젊은 애들은 여기서 놀아"라고 알려줬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말이 안 되는 가격"
이 가게를 인지한 이후, 도시를 돌아다닐 때마다 세르베세리아 차풀테펙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항상 시끌벅적한 곳이라 혼술 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언젠가 맥주 간단하게 함께 할 친구 생기면 저기서 보아야겠다고 염두에 뒀다.
나에게 일본어로 말을 건 멕시코 남자 B가 있었다. 여행 나가면 흔히 "니하오" "곤니찌와"로 다가오는 현지인들 종종 볼 수 있는 것처럼, 처음엔 B 역시 그런 류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아시아인을 자주 보기 힘든 이 도시에서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본능적으로 일본어로 인사를 했다고. (참고로 내가 살고 있는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에서 가장 LGBTQ 오픈마인드인 도시이며, 오타쿠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어찌 됐건 그 계기로 "언제 한번 만나서 맥주나 하자"라고 했는데, 내가 맥주도 마시고 싶고 데낄라 칵테일도 맛보고 싶다고 하니, B가 제안한 곳이 바로 세르베세리아 차풀테펙이었다. 오후 6시쯤 도착했는데 평일인 데다가 아직 술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꽤 한가했다.
짧은 반팔티에 팔을 뒤덮은 문신, 민머리로 심상치 않은 외모를 가진 웨이터가 우릴 자리로 안내했다. 한 장 양면으로 코팅된 메뉴판을 보는데 순간 눈을 의심했다. 다양한 칵테일 메뉴와 맥주 등 모든 음료와 안주 타코까지. 가격이 21페소(1500원 선) 내외였다. 혹시 용량이 엄청 적은 건가? 맥주와 칵테일을 샷 단위로 주는 건가 싶어서 용량을 확인했는데 300ml 내외로 정상적인(?) 칵테일 용량이다. 심지어 데낄라, 럼 샷 마저 일부 비싼 브랜드를 제외하고 모두 21페소였다. 어떻게 이 가격이 가능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멕시코에서 보통 맥주를 파는 곳에 가면, 일반 병맥주는 50페소 (3500원 내외) 내외, 수제 맥주는 최소 70페소(5000원 내외)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긴 코로나 맥주를 포함한 각종 병맥주가 21페소. 이는 심지어 슈퍼마켓,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칵테일은 어떠한가. 멕시코 바에서 칵테일 가격은 우리나라처럼 1만 원 내외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선 칵테일도 1500원이라고?
이 맥주집에 호기심이 생겨 조사를 해 본 결과 "모든 안주와 음료를 동일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이곳의 모토이자 특징이었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파격적인 가격에. 우리나라로 치면, 술집에서 소주와 맥주를 병당 2천 원에 판매하고 안주도 1 접시당 3천 원 내외로 판매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안주로 남기는 장사도 아닌데, 대체 이곳의 수익 모델은 무엇일까? 홈페이지에는 그저 "기존 바&레스토랑 전통적인 컨셉을 파괴한 혁신적 비즈니스"라며 "저렴한 가격이라고 술과 안주 퀄리티를 낮추지 않았다"고 강조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HOW)"에 대한 답은 없었다.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그렇다고 술을 많이 시키느냐고? 다른 테이블을 보면 한 사람당 2~4잔 정도 시키고 2~3시간 체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와 친구 역시 각자 3잔씩 시키고 3시간 앉아 있었으니 회전율이 엄청나게 빠른 것도 아니다. 물론 이곳에서 마신 칵테일 맛은 그냥 음료수 맛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1천5백 원짜리 칵테일로 테이블을 차지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사실 거긴 카르텔이 배후에 있는 곳으로 유명해"
내가 과달라하라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를 여기저기 구경시켜 준 친구 C와 D가 있다. 이 친구들은 매번 나를 차에 태워, 현지인 맛집과 장소 등을 데리고 가곤 했다. 어느 날, 우린 수제 맥주집을 찾았다. 마침 그 수제 맥줏집 맞은편엔 세르베세리아 차풀테펙 체인점이 있었는데,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와 여기도 이게 있네. 진짜 핫한가 봐"하고 읊조렸다.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세르베세리아 차풀테펙"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세르베세리아 차풀테펙은 카르텔이 배후에 있는 곳으로 유명해"
"뭐? 정말?"
"과달라하라 여기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저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
"그럼 사람들은 다 그 사실을 알면서 가는거야?"
"뭐, 그렇지. 사실 20대 학생들에겐 술 싸지. 분위기 좋지. 너무나 유혹적인 공간이잖아"
친구는 목소리 톤을 낮췄다. 멕시코에선 카르텔 관련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다. 자칫 카르텔에 대한 실언, 농담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될 수 있는 나라가 멕시코다. 멕시코를 걷다 보면 실종된 사람들 포스터가 전봇대를 포함해 메모리얼 타워까지.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명 멕시코 유튜버가 카르텔 관련 농담을 했다가 카르텔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뉴스까지 있다. 이게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있는 일이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카르텔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의 금기에 가깝다.
이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다소 주변 테이블 눈치를 보며 이 정도로 짧게 이야기했지만, 이후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궁금했던 점을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볼 수 있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는 멕시코에서도 꽤 세력이 큰 카르텔이 있다. 내가 "과달라하라에 가"라고 멕시코 시티에 있는 친구들에게 알렸을 때도 "거기 (악명 높은) 카르텔 있는데" 누가 말했을 정도로 멕시코 전역에서도 꽤 유명한 카르텔이다.
카르텔은 비단 마약뿐 아니라 술과 마약, 섹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딜 가나 그 손을 뻗친다며, 세르베세리아 차풀테펙 역시 그들의 메인 비즈니스 중 하나일 것이라고. 술을 그렇게 싸게 팔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카르텔이 술 유통까지 장악하고 있으니,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 수가 있는 거였다. 또한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MOTEL'이라고 적힌 곳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 카르텔 네트워크일 가능성이 많다고.
"혹시 그럼 세르베세리아 차풀테펙이 알고 보니 마약 거래 본거지 그런 거 아닐까? 심지어 지금 체인 사업을 남미로 확대하고 있잖아"
"그럴지도. 하지만 나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
C와 D는 이후로 말을 아꼈다. 나도 괜히 더 자세히 물어봤다가 이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 질문을 그만뒀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약 카르텔은 마약 이외에 생각보다 많은 곳에 손을 뻗치고 있는데 아보카도도 그중 하나이다. 미국을 포함해 중국, 전 세계에서 '아보카도 붐'이 일어나자 카르텔은 마약만큼 돈이 되는 이 과일에도 손을 뻗쳐 '피의 아보카도'란 말까지 나오지 않았나. 어쩌면 이들이 운영하는 맥주집도 '저렴하게 술을 판매하는 핫플레이스'를 가장한 채 은밀한 유통이 이뤄지는 게 아닐까.
저렴한 펜타밀 마약이 멕시코와 미국을 덮치고 있는 와중에 이 저렴한 맥줏집 프랜차이즈가 멕시코 전역과 남미 다른 국가로 폭발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진실은 그 어느 검색엔진에도 나오지 않는 어둠의 세계 영역이라 더 이상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아무리 봐도 수익이 나오기 힘든 구조로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이라면 그 배후엔 확실히 수상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 <극한직업>이 문득 떠오르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