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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ul 17. 2023

버스에서 내렸는데 폰이 없어졌다.

과테말라, 아띠뜰란 

*저는 멕시코 4개월 여정을 마치고 벨리즈, 과테말라 북부지방에서 거쳐 안띠구아에서 2주 스페인어를 조금 더 다듬을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안띠구아에서 약 2시간 반 떨어진 아띠뜰란 호수 근처에 잠시 놀러 온 상태입니다* 


과테말라 치킨버스  



과테말라 안띠구아의 흔한 치킨 버스 모습 - 휘황찬란한 외관으로 개조한 치킨 버스

과테말라 여행 오기 전에 많은 여행자들이 "치킨버스"에 대해 언급했다. 흥미로운 이 이름의 버스는 실제 치킨과는 큰 관련이 없다. 미국에서 스쿨버스로 쓰이던, 혹은 안전상 문제로 사용되지 못했던 버스 차량들을 과테말라에서 수입해 점검 후 로컬 버스처럼 만들었다. 


문제는 아이들을 위한 버스라서 그런지 좌석 간 간격이 좁다. 두 명이 앉을 법한 좌석은 원래 3인용인데 대개 만원 버스이지 않은 이상 2명씩 앉는다. 통로 간격도 상당히 좁다. 덩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정면으로 가기가 힘들 정도인데 나 같이 큰 배낭을 앞 뒤로 메고 있는 사람은 정말 무수한 사람들을 스치면서 지나가야 할 정도다. 

여행자 셔틀 차량

흔히 외국인 여행자들은 치킨버스로 여행하는 대신, '셔틀(Shuttle)' 차량을 이용한다. 편안한 봉고차에 에어컨 빵빵하게 튼 차량이다. 과테말라 북부에서 중부, 안티구아에 올 때 셔틀 차량을 이용했는데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뭔가 지루했다. 미국인과 이스라엘 여행객 비중이 높고(이스라엘 군 제대하고 과테말라 배낭여행하는 게 일종의 뭔가 의례인 마냥, 이스라엘 배낭여행객들이 정말 많다) 나머지는 유럽 어딘가. 아시아 사람은 항상 내가 유일했다. 너무 편안해서 다들 그냥 의자에 편히 앉아서 혹은 누워서 자거나 영상을 보면서 이동했다. 나 역시 이동하면서 밀리의 서재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몸은 편안한데, 뭔가 좀 쑤시는 그런 여행이었다. 

멕시코 - 벨리즈 국경 넘을 때 체험했던 8시간 치킨 버스. 꽤 편한 치킨 버스 축에 속했다. (2인용 좌석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3인용)

 난 이미 멕시코에서 벨리즈 국경을 넘을 때 벨리즈산 치킨버스를 탄 경험이 있다. 생각보다 이 정도는 편안하다고 생각했고 (의자에 쿠션이 있다)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테말라 치킨버스로 하는 여행을 해봐야겠다 생각을 했다. 


치킨버스 3번 갈아타고 가는 여행 

안띠구아에서 아띠뜰란까지 여행자 셔틀을 타고 가면 편하게 2시간 반. 로컬들이 타는 치킨버스를 타고 갈 경우 직행이 없기 때문에 3번 갈아타고 (즉 4개의 치킨버스를 탄다) 2시간 반~3시간이 걸린다. 직행도 아니고 갈아타는데 여행자 셔틀이랑 소요시간이 거의 비슷하다는 게 흥미롭다. 그만큼 치킨버스 간격이 좁고, 거의 바로 이어 여행할 수 있다고 했다. 외국인들은 이 치킨버스를 통해 아띠 들란 가는 경우가 그리 흔친 않고 다들 "위험하다"란 이유로 그냥 2배 돈 더 주고 여행자 셔틀을 타는 편이다. 


여행자 셔틀은 시간이 애매했다. 하루 4번 운영을 하는데 오전 5시 30분, 8시, 오후 2시, 오후 5시 30분. 난 오전 9시~10시쯤 출발하고 싶었는데 이때쯤 치킨버스를 타도 중간에 문제없이 아띠뜰란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전날 치킨버스 정류장 가서 거기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저씨와 한 기사아저씨에게 아띠들란으로 바로 가는 직행이 없는지 확인하고, 거기 가려면 3번 갈아타야 하는 것까지 재차 확인했다. 아띠뜰란 간다고 하니 다들 여기서 이렇게 가서 거기서 바꿔 타면 돼하고 공식처럼 알려주었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여유롭게 먹고 오전 8시 40분쯤 배낭을 메고 치킨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치킨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약 15분인데, 한 7분쯤 걷는데 휘황찬란한 치킨 버스가 저 멀리 오더니 버스 안내원(치킨버스에선 요금 징수하는 남자가 따로 있다. 버스 안내원 역할을 한다)이 버스 앞문에 매달려 "치말? 치말?" 하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치말테낭고(첫 번째 버스 타고 가야 하는 곳) 가는 걸 어떻게 알았지? 


재차 거기 가는 거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약 2/3 정도 차 있는 상태라 여유가 있다. 통로가 상당히 좁고 내가 지나가면서 배낭이 사람들을 다 스치고 지나간다. "미안하다"를 연신 외치고 빈자리에 앉았다. 배낭을 짐칸에 실을 순 없어서 일단 내 자리 옆에 두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타면 내 무릎에 올려야 할 판이다. 다행히 버스는 만원 사태까진 가지 않았다. 내 옆에 한 남자가 앉았지만, 내 기준 좌석이 그래도 넉넉했다. 버스는 30분 달려 내가 내려야 하는 곳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그다음 치킨 버스를 한 5분 기다려 바로 탔다. 



폰을 도난당하기까지 3초. 

치킨버스가 악명 높은 이유는 불편하고 뺵빽한 좌석도 있지만 버스 기사들의 미친 듯이 질주하는 라이딩, 소매치기범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 난 여행 도중 소매치기를 거의 당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소매치기범이 많다는 건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2번째 치킨버스는 오늘 탈 4대의 치킨 버스 중 가장 긴 구간이다. 약 1시간이었는데 앞에서 탄 버스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탔다. 


난 로컬 버스 같은 이동수단 이용할 땐 폰을 거의 꺼내지 않는 편인데, 이날은 아띠뜰란 숙소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내 옆의 남자는 아내와 같이 탔고 그리 나쁜 사람 같진 않다. 폰을 꺼내 아띠뜰란 숙소 정보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그 남자는 갑자기 "도착했어. 얼른 내려"라며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꺼냈다. 실제로 1시간 정도 된 시점이었고, 난 폰을 보다가 "어? 여기야?"하고 허겁지겁 폰을 내 보조가방에 넣고 큰 배낭을 메기 시작했다. 보조가방을 손에 쥔 채 큰 배낭을 메려고 잠시 시선을 3~5초 큰 배낭으로 향했다. 


배낭을 메고 보조가방을 다시 메고 급히 서두르고 통로를 뚫고 나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왜 보조가방 지퍼가 살짝 열려있지. 싸한 느낌이 들어서, 버스에 내리기도 전에 보조가방을 다시 열었다. 폰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급하게 나오느라 혹시 폰을 떨어뜨렸나 싶어 내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통로 간격이 좁아 몸을 돌리는 것조차 불가해서 뒷걸음질해서 내 자리로 갔지만 아무것도 없다. 젠장. 그 남자였다. 굳이 급하게 내릴 필요도 없었는데 마치 나를 허둥지둥하게 만들고 내가 폰을 어디에 넣는지 확인한 후 내가 시선을 뗀 3~5초 사이에 가방을 열고 폰을 들고 간 것이다. 버스에 내려 내 보조가방을 한참 뒤적거렸지만 없고 그 남자는 이미 튄 상태였다. 낯선 곳에서 심지어 이동하는 과정에 폰을 도난당한 것이다. 


울어봤자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불과 3분 전만 해도 내 손에 있었던 폰을 도둑 맞고 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오히려 이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울거나 화를 낸들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나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차라리 지갑을 들고 갔으면 나았을 텐데 폰엔 아직 아이클라우드 업데이트되지 않은 사진과 영상도 많고, 이용해야 하는 뱅킹앱, 카드앱들도 있다. 도착지 호텔명이나 주소를 외우지도 못한 상태다. 그냥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일단 목적지에 가고 그 이후 조치를 취해야겠다였다. 계획한 대로 다음 치킨버스 2대도 무사히 이어 탔다. 파나하첼이란 곳에 도착하면 내 숙소가 있는 지역까지 또 호수 위 배를 타야 한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물어 배를 타는 선착장까지 갔다. 


가는 길에 작은 호스텔이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 "내가 폰을 도난당했는데 예약한 숙소 정보를 알 수가 없다. 미안한데 와이파이를 좀 써도 되느냐"라고 물었고 스태프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그러라고 했다. 그나마 아이패드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아이패드로 급히 와이파이를 잡아 숙소 플랫폼 홈페이지로 들어가 수첩에 주소를 그대로 받아썼다. 일단 저 마을에 도착하면, 이 주소를 보여주고 현지인들에 물어물어 찾아가 갈 계획이었다. 

이 배를 타고 호숫가 여러 마을을 이동한다 

파나하첼이란 곳에서 내가 갈 마을은 호수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데, 가는 길에 여러 마을을 경유해서 간다. 배를 타고 가면서 호수와 화산, 마을이 만들어낸 뷰는 정말 아름다웠고 내 앞의 여행자들은 즐겁게 하하 호호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찹찹해서 그 아름다운 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 속을 모른 채 웃고 떠들고 있는 즐거운 여행자들이 오히려 야속할 뿐이었다. 


산 페드로라는 곳이 마을 이름이었다. 작은 마을이라 쉽게 갈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입구부터 엄청난 계단과 오르막 자갈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등산급인데?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맨 상태라 무게 중심이 다소 불안한 상태여서 올라가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오르막 지형이라 이곳에선 툭툭이 주요 교통수단이었는데 툭툭 기사들이 내가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걸 보고 "택시? 툭툭?"하고 물어왔지만 지금 폰을 잃어버리고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지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최대한 현금을 아껴야 했다. 


심지어 난 여기 오기 전까지 최소한의 현금만 들고 왔기 때문에 숙소 자금 지불하면 식사 한 끼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돈만 남는다. 문제는 구글지도도 없이, 내 손에 적힌 주소만 보고 숙소를 찾는 건데, 이곳은 유럽처럼 스트리트, 애버뉴 이름만 가지고 찾아갈 수 있는 주소 체계가 아니었다. 현지인이 아니라면 외국인이 이 주소를 보고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했다. 다행히 이곳은 매우 작은 섬 같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는 곳이었고, 현지인들에게 "여기 에어비앤비 어떻게 가는지 아냐"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길 찾는 과정에서 오르막길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한 두 번 구르고 손가락과 무릎이 까졌다. '운수 좋은 날' 김첨지가 된 기분이었다. 피 철철 흘리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내가 종이쪽지를 보여주며 집을 찾자 현지인들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며 걱정하는 시선을 보냈다. 

숙소 찾아가는 길 

힘겹게 숙소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물어물어 오다 보니 거의 50분이 걸렸다. 심지어 호스트가 항상 이곳에 있는 게 아니어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전화나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데 난감했다. 그 맞은편에 일반 가정집이 있는데 한 남자가 안에 있는 게 보였다. 


"혹시 도와줄 수 있냐"하고 소리를 쳤고 남자는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여기 숙소 예약했는데 내가 폰을 도난당하고 호스트에게 연락할 수가 없다. 혹시 저 호스트에게 연락해 줄 수 있냐라고 요청했다. 그는 그 호스트 번호가 없다고 했고, 난 그의 와이파이를 급히 요청해 아이패드로 예약 내역 내 호스트 전화번호를 보여줬다. 그는 호스트에게 전화해 여기 게스트가 왔다고 전달했고 다행히 호스트는 10분 후 도착해 나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숙소로 들어온 나는 가장 먼저 아이폰 나의 찾기로 분실모드 설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폰은 이미 꺼져 있는 상태라서 이 분실모드가 작동할지도 부지기수다. 설령 작동한다 하더라도, 마지막 위치가 확인된다 하더라도 내가 여기서 이 폰을 돌려받을 것인가. 


분실모드를 켜놓으면 폰 습득자에게 메시지를 짧게 보낼 수 있는데 난 스페인어로 "폰 돌려주면 5000께 짤(중고가격보다 높은 가격) 줄게. 너에겐 가치 없지만 나에겐 소중한 파일들이 있다. 메일을 달라"하고 남겼다. 사실 이걸 보고 범인이 돌려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혹시나 중고 부품으로 팔아치는 것보다 5000께 짤이 비싸면 혹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한 내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허기가 느껴졌다. 밥을 먹어야겠다 생각했고 난 밖으로 나갔다. 놀랍게도 오늘의 운수 나쁜 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글이 길어져 폰을 잃어버린 이후 이야기를 다음 브런치에 이어 쓸 예정입니다. 치킨버스에서 찍은 사진들은 아이클라우드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없으며 전날 찍은 치킨 버스 외관 사진만 올렸습니다 (다행히 숙소 와이파이로 당시 아이클라우드 업데이트 됨) 이후 아띠뜰란에서 찍은 사진은 아이패드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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