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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ul 24. 2023

멕시코 사람들의 DNA에 한국인 유전자가 나온다고요?

멕시코 메리다, <검은 꽃> 

멕시코 메리다 시 사람들의 DNA엔 한국인의 유전자가 있다


멕시코 유카탄 주 주도 - 메리다시 

멕시코 메리다 시는  5월 4일을 한국의 날로 제정했다. 당시 멕시코 대사는 "메리다 주 사람들의 DNA는 한국인 유전자와 유사성이 높다"라고 덧붙인 바가 있다. 아니, 대체 이곳은 어디길래? 한국인과는 어떤 관련성이 있어서? 


멕시코 여행을 북에서 남으로, 그리고 동에서 서쪽으로 하며 흥미로운 점은 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인종 구성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 대표 휴양지로 유명한 칸쿤이 위치한 곳이 바로 멕시코 동쪽 유카탄 반도이며, 이곳의 대표 주인 유카탄 주의 주도가 '메리다'이다. 


유카탄주는 멕시코 원주민, 그중에서도 마야 원주민 비중이 가장 높은 주이고 열대기후에 속해 있어 일 년 내내 더운 지역이다. 뜨거운 멕시코에서도 메리다는 특히 "가장 더운 멕시코 지역"으로 악명 높다. 뜨거운 태양과 가만히 있어도 불쾌해지는 높은 습도의 기후의 콜라보에 대한 경고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숱하게 들었다.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까싸스를 떠나고 어디 갈 거냐는 질문에 "메리다"라고 답을 하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엄청 더울 텐데" "와, 진짜 덥겠다" 란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1년 중 가장 더운 달인 7월에 가게 되었는데, 아무리 더위에 강한 나이지만, 이 정도로 더위에 대한 경고를 많이 받으니 긴장이 됐다. 정말 얼마나 더울까. 


그런데, 이 엄청나게 더운 이 지역에 "오직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1개월 넘게 배를 타고 건너온 사람들이 있었다. 1905년, 망해가는 나라에서 희망 하나 보고 건너온 1,033명이 그 주인공들이며, 멕시코 땅을 최초로 밟은 한국인들이다. 이들이 배를 타고 도착한 이 날이 1905년 5월 4일이었으며, 이 날을 기리기 위해 2019년 메리다 시는 '한국의 날'을 제정했다.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 

<살인자의 기억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등의 굵직한 베스트셀러 대표작품들과 알쓸신잡으로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김영하는 자신의 소설 중 단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검은 꽃> 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검은 꽃>은 1905년 5월 4일 멕시코 땅을 밟은 이민 1세대의 기록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그가 쓴 대하소설이다. 김영하 작가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 일대를 답사하고, 지금 내가 잠시 2주째 살고 있는 과테말라 안티구아에 머무르며 소설의 상당 부분을 완성했다고 한다. 

숙소에서 읽은  <검은 꽃> 


1,033명의 조선인은 유카탄 땅을 밟고 에네켄(애니깽, 용설란의 일종으로 선박용 밧줄 원료로 사용됨) 농장에 배정된 뒤에야 자신들이 사실상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에네켄 농장주들이 부족한 노동을 해결하기 위해 이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모든 여행 경비를 지원했으며, 농장주들은 이제 최대한 이들을 뽑아 먹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노동강도에 최소한의 임금만 제공, 여기에 숙박비나 식비 등을 높게 받아가며 사실상 조선인들이 돈을 모으기 힘든 구조로 채무 노예로 만들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조선인들은 분통을 터뜨리지만 이미 방법이 없다. 그 와중에 조선은 일본 치하로 넘어가며, 얼떨결에 나라 잃은 실향민처럼 멕시코의 이 더운 땅에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된 것이다. 


소설은 이 에네켄 노예로 전락한 조선인들이 어떻게 자유를 쟁취하고, 멕시코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는지 다양한 캐릭터 서사 중심으로 풀어내며 후반부에선 중남미 문학 특성인 마술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프로그레소 항구 / 제물포 거리 / 한인 이민사 박물관 


1.프로그레소 항구(Progresso) - 1,033명의 조선인들이 처음 밟은 멕시코 땅 

멕시코 메리다 프로그레소 해변 

"메리다 가면 프로그레소 해변을 꼭 가봐"

메리다에 가봤던 영국인 자원봉사자가 추천한 명소였다. 메리다의 대표 관광명소로도 꼽히는 프로그레소 해변이 소설 속 프로그레소 항구 도시란 사실을 뒤늦게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1,033명의 조선인들이 한 달 넘게 배 위에 있다가 드디어 땅을 밟은 곳이 메리다의 프로그레소 항구이다. 몸이 찌뿌둥했던 조선인들은 고대했던 육지를 밟으며 새 출발하는 설렘이 가득했을 것이다. 인천의 제물포 바다와 달리,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 파도가 평화롭게 몰아치는 이곳의 첫인상은 기대감을 증폭시키지 않았을까. 


메리다 시내 중심지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 도착하는 이곳 프레 그레소 해수욕장에선 교각과 항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숙소에서 만나 친해진 스페인 친구와 오스트리아 친구와 도착해 백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따뜻한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햇빛이 워낙 강렬한 정오 시간대라 바닷물에서도 선글라스를 껴야 했다. 

순식간에 먹구름이 드리운 해변 

바닷물은 시원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데워져 따뜻했다. 약한 파도가 부드럽게 깨지는 이 바다에서 15분 정도 시간을 보냈을까. 하늘의 구름이 심상치 않다 생각했는데 금세 검은 구름이 머리 위에 가득하더니 빗방울이 사납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후의 변화무쌍함이란. 1시간 넘게 이곳에 달려온 우리는 결국 도착한 지 15분 만에 철수해야 했다. 


2. 제물포 거리 -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가 만들어낸 거리 

멕시코 메리다 제물포 거리 


메리다시엔 주로 시장 먹거리 맛집을 위해 들르는 명소가 있다. 그 근처에 '제물포 거리'가 있다는 사실도 지나가다가 우연히 현판을 보고 알게 됐다. 농장에서 일하던 한국인들이 이곳 술집에서 틈만 나면 술에 취해 "제물포"를 외치는 통에 바에 있는 현지인들도 함께 그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그 술집 사장은 이들의 기구한 사연을 듣고, 아예 술집 이름을 '제물포'로 바꿨다. 지금은 이 술집이 없어졌지만, 술집이 있던 거리는 계속 제물포로 불리게 된다. 


3. 한인 이민사 박물관 - <검은 꽃>을 보고 가면 더욱 먹먹해지는 작은 박물관 

한인 이민사 박물관 외관 


메리다 한인 이민사 박물관은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약 20분 정도 걸어갔더니 작은 건물이 나왔다. 문이 잠긴 거 같아, 기웃기웃거렸는데 박물관 관리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박물관 내에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들고 탔던 최초의 여권부터 조선 인력을 모집하기 위해 낸 신문 광고, 당시 배에 올라탄 사람들의 모습, 각종 전보&전신 기록 등 멕시코 이민 1세대의 삶의 흔적이 담긴 사료들이 있다. 



이들은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조선 땅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멕시코에서 돈을 많이 벌어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가득했던 사람들은 3년~5년 후 농장에서 해방되어 자유민 신분이 되었음에도 멕시코를 떠나지 않았다. 한국으로 가는 여비와 방법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심지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상태이지 않는가. 고국행만 생각하며 악착같이 일을 하던 사람들은 결국 멕시코 메리다에서 멕시코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정착했다. 멕시코에 한국인의 DNA가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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