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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un 15. 2023

하루 7천 원 숙소, 1끼 2만 원 식사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멕시코 국물 요리 Caldo 


멕시코의 물가는 생각보다 저렴하진 않다 

멕시코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물가 수준이 저렴한 게 맞지만, 그렇다고 생각보다 그리 저렴하진 않다. 동남아 수준의 물가를 기대했다면, 더욱 실망할 가능성도 크다.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와 북쪽의 도시에서 2주, 1개월 머무를 땐 에어비앤비 개인실 하루 숙박비는 약 2만 원~3만 원 수준이었고, 식사는 지붕이 있는 식당에서 먹으면 팁까지 포함해 1만 원~1만 5천 원 정도. 길거리 타코로 때울 경우엔 4천 원 내외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첫 멕시코 여행 1~2개월은 배낭여행자 모드보단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에어비앤비 개인실에 머무르곤 했는데, 멕시코 현지 호스트와 교류도 틈틈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멕시코에 온 지 2개월이 지나고 여행자 모드가 되어 도시별로 3~5일 정도 머무르는 여정을 수행할 때가 됐을 때 난 다시 배낭여행객 모드가 되어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도미토리 호스텔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혼성 도미토리 예약하기 

20대 배낭여행 다닐 땐 최대한 돈을 아끼자는 주의였다.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평점 중간 이상에 최저가 순으로 목록을 나열하면 대부분 혼성 도미토리(Mixed-dorm)들이 상단에 위치해 있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유교걸(?)로 첫 혼성 도미토리 예약은 선뜻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 이용해보고 나서 "여자 전용 도미토리나 혼성 도미토리나 별 차이가 없음"을 깨닫고 적극 애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몇몇 호스텔 이용하면서 께름칙하거나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지만, 10번 이용하면 1번 미만 꼴로 발생했고 치가 떨리는 경험까진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 긍정적으로 혼성 도미토리에 숙박하면서 잘 여행해 왔다. 


30대 초반이 되어, 혼성 도미토리를 예약하는 게 다시 망설여졌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 프라이버시가 있는 방을 예약할까 속으로 갈등하다가, 그래도 여행을 최대한 연장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혼성 도미토리에 숙박하기로 했다. 혼성 도미토리 예약할 때 딱 하나 내가 신경 쓰는 조건이 있다. 바로 침대에 커튼이 있는지 유무. 예전 혼성 도미토리 이용할 때 자다 눈을 떠 고개를 돌렸을 때 침대 맞은편에 누운 남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혼성 도미토리를 묵을 땐 개별 커튼이 있는 침대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한다. 


7천 원짜리 도미토리

멕시코 시티 기준,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물가는 저렴해졌는데 지금 현재 머무르고 있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는 끝판왕이었다.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주인 데다가 과테말라와 인접해 있어, 물가가 그동안 경험해 온 멕시코 물가의 절반 수준에 가까웠다. 숙소 역시 저렴했는데, 평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으면서 최저가 상단에 올라온 도미토리가 하루 기준 7천 원 밖에 하지 않았다. 

7천 원짜리 도미토리 숙소 마당 

리뷰엔 욕실에 대한 낮은 평가가 있어서 살짝 긴장했는데 (화장실에 민감하진 않지만 그래도 남녀 공용으로 쓰는 욕실의 경우 간혹 위생이 최악인 경우가 있다) 첫날 사용할 땐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숙소는 ㅁ자 형태로 꽤 큰 편이었는데 개인실과 도미토리 등이 혼재되어 있고 모두가 공용 욕실과 주방을 나눠 쓰는 구조이다. 중심의 널찍한 마당이 매력적이었는데, 방 문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여행자들과 쉽게 어울릴 수도 있고 모닥불 피어놓고 소소하게 저녁을 보내기도 했다. 하루 기준 7천 원짜리 도미토리치곤 나쁘지 않았다. 


2만 원짜리 식사 

멕시코 요리를 사랑하지만 한국인이다 보니 국물 요리가 당길 때가 있다. 구글 지도를 검색하다가 한 식당 리뷰에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이 극찬을 남긴 곳이 있었다.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포솔레(Pozole : 멕시코 스타일의 국밥 요리, 종종 백숙 느낌으로 나오는 곳도 있다)가 유명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다른 멕시코 전통 국물 요리 위주로 하는 곳이라, 큰 기대를 안고 들어갔다. 

앉자마자 세팅된 또르띠야 칩과 소스들 

아직 주문을 하기도 전에 내가 앉자마자 다양한 소스와 또르띠야 칩(나초칩과 비슷) 바구니를 내 앞에 두었다. 또르띠야 칩 양이 어찌나 많던지, 이걸 정말 나 혼자 다 먹으라고 가져다준 건가 의심이 들 정도. 그런데 함께 따라 나온 소스들이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잠시 음식 주문하는 걸 잊을 뻔했다. 소스가 맛있는 집은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곳 음식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펼쳤는데,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놀랐다. 이곳 평균 레스토랑 음식 가격의 2배는 훌쩍 뛰어넘는 수준. 혹시 2인분 수준으로 엄청 크게 나오는 건가 싶어서 직원들에게 물으니, 크긴 큰데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구글맵 리뷰엔 포솔레에 대한 극찬이 컸지만, 이미 다른 곳에서도 포솔레를 맛본 나로선 먹어보지 못한 국물 요리를 맛보고 싶었다. 깔도 치플린(Caldo Chiplin)란 이름이 낯설어 이걸로 주문했다. 달달한 음료인 오르차타 (Orchata)도 함께. 


깔도(Caldo)는 국물이란 뜻으로 깔도 치플린(Caldo Chiplin)은 차플린 국을 뜻한다. 


깔도 차플린 

잠시 후 커다란 도기 그릇에 국물 요리가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마치 미역국 같은 비주얼이었는데 동그란 경단 같은 게 동동 떠 있었다. 이 경단 같은 걸 먼저 맛봤는데 독특하게 치즈볼이었다. 모차렐라 치즈 같은 식감보단, 멕시코 특유의 약간 가루로 부서지는 스타일의 치즈가 있는데 이를 동그랗게 뭉쳐서 구웠다. 국물 요리에 치즈 조합이 어울릴 거 같지 않지만, 깨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치즈와 국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만들어낸다. 

깔도 차플린 내 치즈볼 
깔도 차플린 내 아보카도 

미역처럼 가득 들어있는 초록색 이파리가 치플린(Chiplin)이란 채소였는데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원산지라고 한다. 이 치플린이 잔뜩 들어간 국물은 미역국과 매생이국 사이를 떠올리는 맛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어설픈 "멕시코 삼계탕" "멕시코 육개장"이라 불리는 요리보다 이 깔도 치플린이 훨씬 만족스러웠다. 치즈에 아보카도, 닭고기, 치플린이란 미역 같은 채소에 국물요리라니.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국물 재료인데 한국 미역국을 떠올리게 하는 게 묘했다. 아직 멕시코에서 한식을 먹어본 경험이 없지만, 나라면 한식이 그리울 때 한식당 보단 여길 찾을 거 같았다. 


양이 정말 많았음에도, 남기기 싫어서 정말 깨끗하게 먹고 계산서를 요청했는데 200페소(2만 1천 원)가 훌쩍 넘었다. 7천 원짜리 숙소에 머무르면서 1끼 2만 원짜리 식사라니. 누군가는 차라리 식사를 싸게 먹고 숙소를 편한 데서 자겠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편한 숙소에서 식사도 마음껏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나처럼 1년 이상 여행을 하는 경우엔 종종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20대 때엔 음식과 숙소 둘 다 포기하고 싸구려 빵만 뜯어먹고 다녔다면 지금은 최소 식사와 마실 것엔 돈을 아끼지 말자는 마인드로 다니고 있다. 20대 때 몇 푼 아끼자고 세상의 많은 미식들을 놓쳤던 후회감은, 30대 최대한 후회 없이 새로운 것을 최대한 많이 먹어보자는 모티브가 되었다. 잠자리야, 굳이 그 호텔에 자지 않아도 후회될 건 없지만 음식만큼은 그때 먹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오래 남기 마련이니. 무엇보다 호스텔 도미토리 숙박 경험은 이후 나이 들면 점점 어려워지는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 환경에서 잘 자는 체력일지라도 나이가 들면 결국 잠자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으니. 고로, 지금 나이와 체력대에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큰 배낭을 메고 여행하길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메인 및 브런치 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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