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마라짜장면 & 쏸라펀
이전에 중국에서 잠시 살았습니다. 올해 6월, 코로나 이후 중국 첫방문하며 2주간 지내면서 먹은 음식들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내 입맛은 중국에 가기전과 후로 바꼈다.
2018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베이징으로 훌쩍 떠났다. 중국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익숙하게 먹던 중국 음식은 양꼬치 정도였다. 마라탕이 아직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이었고 하이디라오에 가서 훠궈를 처음 먹어보고 그 맛에 빠졌던 때다. 베이징은 음식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님에도, 나름 수도이기 때문에 중국 전역 다양한 음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매일 매일 다양한 음식을 맛보면서 중국 음식의 다양성과 그 맛에 눈을 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가까우면서도 은근히 중국 음식에 대해서 아는 바가 그리 없다. 그나마 지금은 마라탕과 탕후루가 유행하지만, 대부분 중국음식하면 한결같이 기름지다, 향신료 맛이 강하다 등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각으로만 중국 음식을 대하기엔 중국 음식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다양하다. 중국 대륙의 땅덩어리만큼, 중국은 지역마다 음식 특성이 매우 뚜렷하다. 중국 사람들마저 중국 전역의 대표 음식을 다 먹어본 사람들은 거의 찾기 힘들 정도.
중국에 살 때 난 학교 식당 가는 것 이외에도 친구들을 만나면 매일 중국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중국 음식을 좀 먹어봤다고 해도, 매번 처음 보는 음식들이 나왔고,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의 음식들을 접했다. 물론 내가 중국음식을 남들보다 더 잘 즐길 수 있던 것엔 고수와 향신료를 좋아하는 것이 큰 몫을 했다. 그리고 나는 쫑코어웨이(重口味)를 가졌다.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들을 잘 먹거나 아재입맛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즉, 고수와 향신료를 좋아하고, 중국인 기준 중국인보다 더 중국음식 잘 먹는다는 쫑코웨이(重口味)를 가진 사람의 주관적인 푸드 에세이란 걸 인지해주셨으면 한다.
중남미 1년 여행하면서 한식보다 더 그리웠던 쓰촨 요리
코로나가 끝난 이후 첫 중국방문이었다. 1년 넘게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내가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은 한식이 아니라 중국 쓰촨,충칭 지역의 음식들이었다. 쓰촨은 우리나라말로 사천. 사천짜장할 때 그 사천이 맞다. 중국의 대표적인 맵부심 강한 지역이다.
우리나라의 매운맛과 쓰촨,충칭 지역의 매운 맛은 그 결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불닭볶음면을 아무리 잘먹는다고 해도, 쓰촨 지역의 훠궈나 매운 음식 특라(가장 매운맛)를 주문하면 바로 위가 부들부들 떨리는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 쓰촨,충칭 지역은 한 음식에 쓰는 고추양이 어마어마한데 여기에 기름까지 들어가니 그 맵기가 상당히 오래가고 아프다. 마라탕의 근원이 쓰촨이냐 아니냐에 대한 여러 기원이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요새 좋아하는 그 마라맛의 원조격인 지역이 쓰촨,충칭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고 호텔 체크인하니 오후 5시였다. 상하이는 6~7월이 우기 시즌이라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는데, "쏸라펀(酸辣粉)"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쏸라펀은 중국 쓰촨의 대표 요리 중 하나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쏸라펀 이름을 분석하자면, 신 맛을 뜻한 쏸(酸)과 매운 맛을 뜻하는 라(辣)가 결합했다. 그리고 펀(粉)은 우리가 마라탕에서도 흔히 보이는 고구마 당면처럼 투명한 면을 가리킨다. 즉, 맵고 시큼한 면요리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선 다소 생소한 맛의 조합이다. 중국 요리의 시큼한 맛은 흑식초를 통해 내는데 이게 중국 고추, 기름맛과 함께 섞이면 색다른 매력에 중독성이 강하다. 마라탕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고, 나에겐 약간 소울푸드같은 음식이기도 하다.
쏸라펀을 메인메뉴로 판매하는 식당은 그리 많이 없다. 대부분 쏸라펀은 쓰촨,충칭 면요리 집에서 약간 사이드처럼 판매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충칭면요리 체인점으로 유명한 "위지엔샤오미엔(遇见小面)"이란 곳으로 향했다.
얼떨결에 면 2개 시켜서 다 먹는 대식가 된 사연
코로나 전후 중국은 정말 많이 바꼈는데 '모바일 오더'도 그 중 하나였다. 물론 중국은 이전부터 QR코드 강국이어서 코로나 전에도 모바일 오더가 종종 있었는데 이게 100%는 아니었다. 코로나 전에는 모바일 오더로 하는 경우가 30% 정도였다면 요새 중국은 모바일 오더가 거의 100%. 테이블마다 QR코드가 있어 이를 스캔해 주문, 결제까지 완료하는 시스템이다. 모바일 오더가 워낙 보편화되어 있어서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도 종업원들이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메뉴를 여는데 고민이 생겼다. 쏸라펀이 먹고 싶은데, 이 곳 시그니처 음식이 홍완완짜미엔(红碗豌杂面)이었다. 완짜미엔은 충칭의 대표요리로 돼지고기와 볶은 완두콩, 고춧기름을 면과 함께 볶아낸 음식으로 나 역시 이번에 처음 접한 음식이었다. 국물이 없는 비빔면 스타일이고 콩과 돼지고기 맛, 알싸한 맛이라고 되어 있어서 마라짜장면 수준으로 대략 상상했다. 일단, 어느 식당을 가나 대표메뉴는 무조건 시켜보는 게 국룰. 근데 그 와중에 난 또 국물이 너무 먹고 싶었기 때문에 사이드메뉴에 있는 쏸라펀도 함께 주문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짜장면 주문하고 짬뽕 맛보기 용으로 주문한 셈. 음식이 나오기 전까진 그렇게 믿었다.
홍완완짜미엔과 쏸라펀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크기. 일단 쏸라펀의 크기가 사이드 메뉴라고 보기엔 너무 컸다. 이 정도면 그냥 보통 일반 면요리 양인데? 물론 홍완완짜미엔은 더 컸다. 우리나라 짜장면 곱배기의 1.5배 수준은 된다고 할까?
주변을 슥슥 돌아보는데 그 누구도 나처럼 커다란 면요리를 2개 놓고 먹는 사람은 없었다. 에이 뭐 어때. 오랜만에 중국 음식 먹는데 마음껏 먹어야지하고 쏸라펀 국물부터 떠먹었다. 내가 그리워하던 국물 맛 그대로다. 매콤하고 새콤한 국물맛, 연기에 우동면발처럼 굵지만 투명한 당면이 호로록 들어간다.
쏸라펀 한 번 먹어주고, 완짜미엔도 야무지게 비볐다. 우리나라의 짜장면과 비슷한 베이징의 작장면과는 다른 느낌이다. 베이징의 작장면은 그 누가봐도 갈색빛 짭조롬할 거 같은 면 요리인데 완짜미엔은 노란색 콩과 야무지게 고춧기름에 볶은 돼지고기, 기름이 면발과 어우러진 비주얼이다. 여기에 땅콩이 올라가있는데 중국에선 은근 매운 요리에 땅콩을 넣는 경우가 꽤 많다.
완짜미엔은 맛과 식감이 우리나라 짜장면과 가까운데, 여기에 고춧기름 킥이 들어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 짜장면 카라멜 소스의 단 맛 대신, 콩의 고소한 맛과 식감이 두드러진다. 흰 짜장면에 마라향과 맛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양이 워낙 많아 완짜미엔만 먹었다면 질릴 수도 있는데 쏸라펀 국물과 번갈아 먹으니 오히려 서로 보완해주는게 면 요리 2개 잘 시켰다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완짜미엔을 먹는 모습을 보고 옆 테이블 중국 아저씨는 "먹고 있는 것이 뭐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대표메뉴라고 말하니 "오" 하고 나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이거?"냐고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거의 코박고 먹을 기세로 음식에 집중하는데 이번엔 오른쪽 테이블에 막 앉은 커플 중 여자가 내 쏸라펀을 유심히 봤다. 그러더니 나에게 조심스레 "저기 혹시 쏸라펀은 여기에서 주문한거에요?"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이게 또 뭔소리지? 해서 당연히 "맞아요, 여기서 주문했죠"라고 답하니 자기가 아무리 메뉴 찾아봐도 쏸라펀이 안보인다고 어디있냐고 묻길래 사이드메뉴 쪽 보면 나온다라고 친절히 알려주고 다시 음식에 몰입했다.
완짜미엔과 쏸라펀은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잘맞을까? 개인적으로 완짜미엔은 크게 호불호없이 누구나 부담없이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이고 쏸라펀은 고수가 들어가고 맵고 시큼하단 특성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거라 생각이 든다. 특히 쏸라펀은 중국에서도 여자들이 유독 좋아하는데, 어쩌면 우리나라 여자들의 입맛에도 잘맞지 않을까 싶다.
개인사정으로 브런치를 6개월 넘게 쉬었습니다. 연재 잠시 중단했던 중남미 다른 글도 곧 올릴 예정입니다. 연재 약속을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