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비 100원, 버스 안내원도 있어요.

하동 3부작 - 농어촌 버스 타고 하동 뚜벅이 여행

by 노마
하동을 뚜벅이로 여행한다는 것

뚜벅이 여행을 사랑한다. 운전을 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편리함은 있지만, 그 편리함으로 인해 구간이 삭제된 관광지 찍기식의 여행을 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뚜벅이가 불편할지언정,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해당 지역을 파악하기 좋다. 종종 차로 다니거나, 누군가가 운전해 주는 여행을 하다 보면, 위치감각은 상실한 채 "다음 장소"만 내비게이션으로 찍게 된다. 결국 자동차 여행을 하면, 의외로 기억에 남는 게 적다. 마치 시험기간에 벼락치기 공부하는 느낌이랄까. 반면 시간을 가지고 느릿느릿하게, 불편하더라도 뚜벅이 여행을 하면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 지역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생 때는 당시 유행이었던 기차 내일로 패스권을 매 여름/겨울마다 구매해 가난하지만, 알찬 뚜벅이 여행을 여러 회차했다. 나름 뚜벅이 힘들다는 제주도까지 뚜벅이로 꽤 여러 번 해왔지만, 하동을 뚜벅이로 여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어렸을 적 가족들과 방문했던 하동은 항상 아버지가 운전해 주는 차량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하동 뚜벅이 여행이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하동 뚜벅이 여행은 난도가 높다는 등 글이 많다. 그럼에도, 뚜벅이 여행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적지 않다. 이 정도면 됐다. 하동 뚜벅이 여행은 어려울지 언정,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 적절한 고립감을 원했던 나에게 하동은 뚜벅이 신분으로 2주 살이를 하는데 최적의 지역이었다.


화개 벚꽃 십리길을 걸어보자

숙소는 화개터미널에서 차량 5분 떨어진 곳이다. 화개터미널로 픽업 나오신 사장님 차량을 타고 숙소로 들어오는데 도로가 차량위주이다. 인도는 없거나, 있다가도 사라지는 모양에 사장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 화개 쪽으로 걸어가는 것은 무리인가요, 차량 도로 위주로만 되어 있는 거 같아서"


사장님은 화개로 걸어갈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가르쳐주었는데, 그중 마음에 들었던 것은 섬진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이었다. (첫 번째 길은 일반 도로 옆 마련된 인도를 따라 걷는다) 화개장터가 있는 곳까지 약 30분 정도 걸리는데, 이 정도면 혹시나 화개에서 여기로 오는 버스가 끊기더라도 걷기에 부담 없는 거리였다.


다음날, 사장님이 일러준 대로 섬진강변에 조성된 산책 데크를 따라 쭉 걸었다. 차밭도 나오고, 그늘을 제공하는 대나무들도 나온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다란 과녁과 함께 활 쏘는 체험장이 나오면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신호다. 멀리 보였던 남도대교를 지척에 다가오면 화개장터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IMG_0591.HEIC 하동 섬진강변길
IMG_0592.HEIC 하동 섬진강변길

화개장터를 간단히 둘러보고, 쌍계사 가는 벚꽃십리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벚꽃 필 땐 전국에서 오는 차량으로 막히는 벚꽃십리길인데, 지금은 벚꽃이 다 진 상태라 괜찮지 않을까? 그곳엔 인도가 있을까란 호기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 추천받은 뷰 좋은 카페를 목적지로 찍고, 부지런히 걸었다.

IMG_0646 3.HEIC 벚꽃 진 벚꽃십리길 걸어가기

다행히도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방면 벚꽃길엔 자그맣게 인도가 있었다. 이 인도를 거니는 사람들은 평일에 거의 없는 듯 했지만, 이 길을 걸어가시는 한 할아버지를 앞장 세워 걷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물론, 목적지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들어가 돌아가는 버스 편 시간표를 사진 찍어 놓고, 대충 카페에 몇 분 정도 쉴지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난 후였다.


지방 뚜벅이 여행을 할 땐 버스 승하차 전 버스 시간표 사진 촬영은 필수이다. 실시간 버스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데다가, 하루 3~5회 차만 운영하는 버스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이 언제인지 계산을 한 후, 목적지를 둘러봐야 한다.
버스비 100원, 눈을 의심했다.

다행히 하동 화개면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부착된 버스 시간표들은 해당 버스 정류장을 지나가는 시간 기준으로 안내되었다. 이게 얼마나 고마운 거냐면, 대부분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지역은 그저 버스가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각만 명시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특정 번호나 노선도가 있는 게 아니라, 그 버스가 들르는 지역 이름 3~5개 명시한 게 끝이다. 해당 마을 사람들이 아닌 외지인이 버스 뚜벅이 여행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반면, 하동 농어촌 버스가 다니는 곳 버스 정류장엔 해당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 기준으로 버스 시간표가 붙어져 있어서 시간 파악하기 꽤 편했다. 물론, 농어촌 버스가 딱딱 맞춰 온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항상 10분 내외 여유 두고 도착하는 게 좋다. 대부분 5분~10분 정도 늦는 게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정시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더 빨리 도착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다. 고로, 뚜벅이 여행자들은 항상 여유 시간까지 계산해 버스 정류장에 나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보다, 가급적 바깥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 휴대폰 보느라 버스 놓치는 일은 없도록 최대한 버스 오는 것에 집중을 한다. 종종 사람이 없다고 판단되면 버스가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상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이었다. 버스가 올 기색이 없어 혹시나 내가 이 버스 시간표를 잘못 해석한 걸까 스스로 의심하던 차였다. 버스를 타고, 카드를 찍었는데 '100원'이라고 찍혔다. 순간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었다. 아니면, 하동에선 내릴 때 거리비례해서 총요금이 찍히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버스 내릴 때 기사님에게 "혹시 내릴 때도 카드 찍어야 해요?"라고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하신다.

IMG_1635.HEIC

나중에 터미널에서 안내판을 보고 안건대, 경남 하동군내 모든 농어촌 버스는 버스비 100원 정책을 작년부터 시행했다. 농어촌 지역 학생들의 교통비 부담을 줄이고 대중교통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함이라고. 하동군민, 외지인 모두 일괄적으로 100원이다. 하동에서 버스탈 때 100원짜리 동전을 손에 꼭 쥐고 타는 할머니, 할아버지분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버스안내원이 있는 하동 농어촌 버스

하동 농어촌 버스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버스안내원'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버스를 탈 때 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그냥 친절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두 번째 버스를 탈 때도 유니폼 조끼를 입은 다른 아주머니가 인사하며 맞이해 주자 그제야 버스안내원이라는 걸 깨달았다.

IMG_1817.HEIC 하동 농어촌버스 내 버스안내원

이 버스 안내원들은 농어촌 버스를 타는 승객들이 "어느 곳으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뿐 아니라,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탈 땐 부축해 자리까지 안내해주기도 했으며, 종종 자주 타는 할머니가 타면 그 옆에 앉아 말동무를 해주곤 했다. 일자리 창출 목적도 있겠지만, 농어촌 버스를 타는 현지 승객들 대부분이 노인들 혹은 어린 학생이란 것을 감안하면 일종의 보호자 역할로 있는 듯했다.


버스 안내원이란 존재 하나만으로 하동 농어촌 버스의 온도가 다르다. 다소 무뚝뚝할 수 있는 기사님들을 대신해, 항상 상냥하게 인사하며 승객들을 맞이하니 나 같은 외지인 입장에선 버스 내리기 전에 확인차 "여기 내리면 OOO갈 수 있는 거 맞는지" 등 질문을 부담 없이 하기 좋았다.


가끔은 1회 차 버스를 타고 내렸는데, 2회 차 돌아가는 버스를 탔는데 동일한 버스 안내원 아주머니가 "OOO 잘 다녀오셨나요?"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는데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골의 정겨움이 묻어나는 농어촌 버스에, 나 역시 매번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인사에 밝은 감정을 싫어하곤 했다. 버스가 늦을 때는 짜증이 날 법하다가도, 그들이 건네는 상냥한 인사는 감정을 누그러뜨린다.


자동차 여행자들은 할 수 없는, 하동 뚜벅이 여행자들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브레이크를 걸고, 느리게 쉬고 싶은 분들이라면 차량이 있어도, 하동 뚜벅이 여행을 하루 정도 체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의외로, 하동 버스만으로 하루에 주요 관광지 여러 군데를 들르며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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