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이 눈치 없는 친구의 들이댐처럼 느껴진다.
바야흐로 영상의 시대이다.
불과 7~8년전만 해도 UCC(User Createad Contents)라 불렸던 사용자 창작 콘텐츠는 아예 '유튜브'란 고유명사로 대체되었다. 내가 대학생 때만 해도 UCC 마케팅 등이 꽤 많았는데 당시엔 유튜브 메인 플랫폼 업로드보단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대학생 대외활동 (각종 마케터, 기자단)을 할 때 각 대외활동단 성격마다 다르지만 UCC를 만드는 건 꼭 매달 1건씩 있었다. 그래서 어설프게 윈도우 무비메이커로 시작해서 베가스, 프리미어의 기본 기능을 더듬더듬하면서 밤새 3분짜리 영상을 만들곤 했다. 그렇다고 엄청 대단한 작품이 나온 건 아니다. 그냥 자막 싱크 맞추고 자르고 노래랑 길이 맞추고 자연스레 페이드인/아웃 시키는것만 하는데 그렇게 오래걸렸다. 요즘엔 모바일 앱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그런 영상말이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유튜브가 이렇게 까지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을 줄은 몰랐다. 3분짜리 영상 하나 만드는게 시간이 거의 하루가 걸리는데다가 유튜브로 방송을 하는 사람보단 창작 영상을 올리는 그런 플랫폼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진입 장벽에 나름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엔 휴대폰 카메라로도 쉽게 촬영해 유튜브를 올리고, 라이브까지 할 수 있는 시대니 그야말로 유튜브 시대이다. UCC 시대에는 UCC가 일종의 마케팅 일부 도로만 활용됐다면 이제는 유튜브가 1인 매체로서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시대랄까.
그래서 주변에"나도 유튜버나 해볼까" 란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예전이라면 "에이, 너가? " 이런 소리를 했겠지만 요새는 정말 누구나 자기만의 토픽이 있다면 (물론 토픽이 없어도 된다)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버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스스로의 재능, 경험을 유튜브 영상을 통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옛날에는 '크리에이터'라는 것은 끼가 있는 일부 사람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요즘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단순 연애경험담을 공유하기만 해도, 잘 먹기만 해도, 특정 외국어를 잘하기만 해도, 여행을 가기만 해도. 영상 내용이 자극적이거나 뭔가 특이한게 있으면 더욱 잘 통한다. 이제는 네이버 검색해도 없는 검색결과가 유튜브에선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그만큼 유튜브엔 이 세상에 없는 토픽을 더이상 찾아보기가 힘들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유튜브 중독이었다.
유튜브 레드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바로 신청해서 광고 없이 모든 영상을 즐기고 백그라운드 음악 재생을 즐겼다. 현지에서 방영되고 있는 미국 리얼리티쇼 (고든램지쇼, 코난쇼)를 실시간으로 가장 빨리 보는 방법은 유튜브였고 중국어 공부할 때 중국 드라마를 보기 위한 플랫폼도 유튜브였다. 그 외 외국어 공부 관련 유튜브는 죄다 구독, 좋아요 해놓았기 때문에 나에게 유튜브는 또다른 외국어로 접하는 가상세계였다.
그런데 언젠가 유튜브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유튜브를 하건 공부를 하건 관련 주제와 관련된 흩어진 콘텐츠를 이것저것 보는 것보단 순서대로 하나의 채널, 커리큘럼을 따라 보는 걸 좋아한다. 즉, 유튜브에선 하나의 주제로 묶인 재생목록을 모두 다 보는 스타일이랄까.
영어를 가르치는 유튜버가 있으면 그 영상의 주제가 담긴 재생목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본다. 그래야 뭔가 나에겐 일종의 커리큘럼과 같은 체계가 잡힌 느낌이 들고 비로소 안정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유독 유튜브가 내가 구독하고 있는 유튜버와 관련있는 내가 좋아할만한 다른 영상들을 이것저것 추천해주다보니 시선과 주의가 계속 흩어진다. 결국 영어 가르치는 하나의 유튜버만 본래 팔로우 했는데 최근에는 비슷한 유튜버 7~8명을 추가로 팔로우했다. 다른 주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어 관련 유튜버도 원래는 3~4개 채널만 구독했는데 요샌 또 신종 채널부터 비슷한 유튜버 영상을 수시로 추천하다보니 호기심으로라도 클릭하다보면 또 유용하다 싶어서 팔로우를 하는거다. 이렇게 언젠가 내 구독 채널이 점점 늘어났고 계속해서 새로운 유튜버들의 영상을 접하게 된다. 이러다보니 점점 유튜브에 빼앗기는 시간도 많아지고 있다.
공부하는 상황으로 쉽게 비유해본다면 아래와 같다.
만약 내가 국사를 공부한다 치자. 그럼 국사 선생님 A 한 명의 커리큘럼대로 따라가는게 일관성있고 흐름이 끊기지 않게 진도를 나갈 수 있다. 근데 내가 지금 '조선시대 초기 과전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치자. 근데 갑자기 옆에서 학습 큐레이터 (혹은 학습 매니저 같은 존재)가 'B 선생님의 조선시대 초기 과전법 영상', 'C 선생님의 과전법 한방에 끝내기 영상' 등을 계속 추천해주는 거다. 그 중에서 궁금해서 이 선생님, 저 선생님 영상 찾아보다가 결국 나는 본연 커리큘럼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원래 따라가던 커리큘럼 마저 다 끝내질 못한다. 지금 이 심정이 내가 현재 유튜브에 느끼는 감정이다.
물론 이제 갓 시작한 유튜버들도 내용만 좋으면 뜰 수 있는 이런 알고리즘은 유튜브의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콘텐츠 소재가 비슷비슷하다보니 이젠 자극적으로 나가는 유튜버들이 그만큼 비례해서 많이 생긴다. 가령, 경쟁 유튜버 혹은 선두주자를 저격/반박 등 하며 조회수를 높이려는 유튜버들이나 거창한 제목과 달리 내용이 부실한 낚시꾼 유튜버와 같은 그런 존재말이다.
그래서 요즘 유튜브에 접속하면 내 피드가 너무 어지러워서 다시 구독했던 채널을 정리하고 있다.
때론 정보의 범람에서 비슷한 카테고리에서 너무나 많은 유튜버들을 팔로우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나를 피로하게 만든 이유이다.
더불어 어쩌다 한번 관심 줬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그 관련된 정보를 노출하는 것도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끔은 업무적으로 혹은 궁금한 게 있으면 유튜브를 통해 검색을 하게 되는데
이후 그 문제가 해결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관련 영상을 나한테 추천해서 보여주는 거다. 심지어는 광고로도 나타난다. 그게 보기 싫어서 매번 굳이 클릭해서 '이같은 영상 거의 보지 않음'을 누른다.
이처럼 사용자의 쿠키, 흔적에 따른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어쩔 땐 참 편리하지만,
가끔은 눈치없는 지나친 간섭으로 불편함을 준다.
어떤 느낌이냐면, 나에 대해서 얕은 이해가 있는 친구가 눈치없이 계속 끼어드는 거 같다.
나는 더이상 이거에 대해 관심도 없는데 이 친구는 내가 예전에 이 사실에 대해 관심을 살짝 가졌다는 정보를 가지고 "야, 너 이것도 궁금할걸? 안그래? 좋아할거야" 하면서 계속 그 추측이 맞을 때까지 비슷한 걸 보여주는 거 같다고 할까. 내가 "나 이제 그거 관심없거든"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들이댄다. 심지어 관심없다고 할 때도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야한다. "나와 상관없어" "부적절한 내용이야" 등등
문득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에 관련된 최근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중국어 학원에서 다같이 중국어 영화를 관람하는 날이었다.
선생님의 노트북을 빔 프로젝터와 연결해서 한창 영화를 보고 있는데 우측 하단에서 "당신이 좋아할만한 영상"이라며 눈치 없이 알림창이 떴다. 문제는 그 알림창 내용이 "Sex" "19금" 관련이었다. 즉, 평소 그 선생님이 유튜브를 통해 자주 보는 영상 혹은 키워드 기반으로 추천했다는 건데 그게 10여명이 넘게 보고 있는 스크린 상으로 공개되었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옛날 유튜브 알고리즘 이런 것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땐 그냥 "어이구, 무슨 스팸이 떴네"하고 넘길법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유튜브가 우리 취향, 흔적을 기반으로 추천한다는 사실을 안다. 결국 그 '당신이 좋아할만한 영상' 알림으로 인해 그 선생님이 평소에 유튜브로 어떤 영상을 보는지 까발려진거다.
그래서 만약 유튜브로 남들한테 떳떳(?)하지 못할 영상을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남들 앞에서 함부로 유튜브에 접속하지 않길 바란다. 첫 화면은 곧, 당신이 혼자 있을 때 유튜브로 무엇을 하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하므로. 아니, 이젠 유튜브에 접속하지 않아도 윈도우 10 이상을 쓰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을 사용하는 실시간으로 우측 상하단에 알림이 뜬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함께 내 컴퓨터 화면을 함께 바라볼 때 유튜브 추천 영상 알림 뜨는 것을 조심하길 .
여튼 유튜브는 계속해서 우리의 취향을 저격시키기 위해서 계속해서 따라다닐 거다.
내가 관심을 1이라도 보이면 바로 달려들어 "이거 좋아해? 그럼 저것도 좋아할거야" 하면서 수시로 들이대는 이 눈치없는 친구에게, "필요없으니까 지금은 조용히 좀 해줄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