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Jan 26. 2021

<천사소녀네티>부터 넷플릭스 <LUPIN>까지  

왜 '괴도' 얘기는 항상 재밌을까? 


도둑은 나쁜 것이지만 좋은 뜻을 가진 도둑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의로운 도둑은 영웅 캐릭터로 서사화 되어왔다. 우리나라에선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홍길동'이 아닐까.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른다는 오랫동안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남긴 홍길동은 각종 무술 및 도술을 익혀 탐관오리를 혼내줄 뿐 아니라, '활빈당'을 조직해 전국구로 활약하며 나쁜 놈에게서 재산을 훔쳐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준다. 국가가 해결하지 못한 부패 세력의 처단을, 다소 비현실적인 캐릭터의 힘으로나마 빌려서 행하는 대리만족이 주는 쾌감때문에, 홍길동은 당대 많은 민중들에게서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홍길동의 존재는 "목적이 옳다면 훔친다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논제에 부딪쳐 인기있는 토론주제로도 거론된다. 그가 현실에 실존한다면 소설 속 만큼 영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허구 세계'에 존재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영웅성이 비도덕적 행위를 덮어버릴 수 있다. 

현실에선 불가능할지라도 허구 세계에서만큼은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은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를 통해 폭력을 거리낌 없이 형상화하는 것처럼. 경직된 체제와 질서 속에서 꿈꾸는 일탈인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접한 '의로운 도둑' 캐릭터는 홍길동이 아니라 천사소녀 네티였다. 홍길동은 내가 초등학생 고학년 때 책을 읽었으니 굳이 연대기순으로 따진다면 저학년 때 본 천사소녀 네티가 앞선 셈이다. 


세일러문이 당시 가요계의 HOT 급 만큼 휩쓸었다면, 천사소녀 네티는 젝스키스 정도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세일러문이 인기가 훨씬 많았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난 천사소녀 네티의 적절히 만화같은 전개가 좋았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세일러문은 후반부로 이야기 전개가 될수록 뭐가 쓸데없이 진지해져서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고 할까. (물론 손발이 오그라드는 진지함이지만) 


반면, 천사소녀 네티는 "오늘 밤엔 무슨 일을 할까, 누구에게 기쁨을 줄까" 라며, 어떤 나쁜 놈에게 물건을 빼앗아 주인에게 돌려줄까 라는 일관된 포맷 하에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르센 괴도 뤼팡 소설 모티브를 삼아, 괴도와 탐정 대치 구도로, 네티가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긴장감과 더불어 "그래서 셜록과 네티는 이어질까"란 로맨스(?)까지 있어서 매 에피스도마다 이야기 밸런스가 잘 짜여졌던 거 같다. 약 20년 가까이 된 지금도, 몇몇 에피소드가 꽤 생생하게 생각나는 걸 보면. 

이후 <명탐정 코난> 덕질을 하면서 역시 아르센 괴도 뤼팡 모티브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캐릭터 <괴도 키드> 에도 푹 빠지게 된다. 괴도키드와 관련된 사건은 5 에피소드 중 1 에피소드 꼴로 명탐정 코난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이다. 괴도 키드의 모티프는 원조 아르센 괴도 루팡 소설을 그대로 따라간다. "부자들이 온갖 방법 가리지 않고 구한 보석, 보물을 원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것" 원작 속 아르센 뤼팡처럼 변신술의 귀재이며,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항상 예고장을 남기고 훔쳐간 후엔 꼭 내가 훔쳐갔다고 흔적을 남긴다. 명탐정 코난은 괴도 키드를 잡으려고 매번 노력하지만 번번이 무산된다. 그 와중에 괴도 키드의 팬덤은 점점 커져간다 .




홍길동부터 네티, 코난의 괴도키드까지. '의로운 도적' 캐릭터는 계속해서 변주하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오다가 올해 넷플릭스는 20세기 현대판 루팡시리즈를 만들었다. "LUPIN 루팡" 이 바로 그것이다. 


고백하자면 처음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LUPIN"을 보여주었을 때 난 그것이 그 루팡을 가리키는 것인지 미처 모르고 보기 시작했다. 루핀이라 읽고 주인공 남자 이름이겠거니 하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 이 이야기가 현대판 루팡이란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 희열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한 현대판 <셜록> 영드가 나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쁨에 맞먹었다. 


이 드라마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르쉔 루팡 소설광인 한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 억울함을 풀기 위해 루브르에서 한 보물을 훔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주인공 아산은 아버지가 감옥에 가기 전에 자기에게 유일하게 선물해준 책 <아르쉔 루팡>에 매료되어 결국 소매치기와 자잘한 사기를 치는 잡범(?)이 된다. 사기를 치는 방법도 다양한 변신술과 연기 등을 활용해 기상천외해서 "소설 속 멋있는 신사 루팡이 현실로 오면 저렇게 되겠군" 하는 그럴 듯한 납득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이 때 까지만 해도 그는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만 범죄를 저질러 왔다. 그래서 이 때까진 루팡에 대한 지지와 응원보다는 "아니 저렇게 좋은 머리를 가지고 왜 저러고 살아"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루팡 소설 덕력을 소소하게 생계 유지를 위해서만 쓰던 그는 어느날 자신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옥살이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단순히 물건을 훔친다"란 개념에서 "한 사람의 억울함을 벗기기 위함"이란 그럴 듯한 명분이 생기는 순간이다. 그렇게 그는 루팡이 되기로 결심한다. 

프랑스의 보물인만큼 더이상 물건을 훔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해줄 보석을 빼돌리는 것. 소설 속 아르센 루팡이 체제와 질서로 무장된 사회를 조롱한 것을 고려해보건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배경 설정은 정말 완벽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위선과 탐욕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고고하신 프랑스인들의 자부심(..혹은 자만심)의 상징을 아프리카 계 이민자 출신인 아산이 과연 통쾌하게 뚫을 수 있을 것인가.


참고로, 이 드라마에서도 루팡에 대적되는 형사 캐릭터가 나온다. 그에 대해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현장의 몇몇가지 단서를 보고 소설 루팡과 뭔가 관련이 있다고 유추하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루팡의 팬일 확률이 높다. 루팡 소설에 영감을 받은 한 도둑과 루팡 소설을 잘 아는 형사의 대결 역시 이 드라마를 더욱 재밌게 만드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LUPIN 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프랑스 드라마로 총 10부작으로 제작되었다. 현재 시즌 1으로 5부작이 먼저 오픈되었고 나머지 6-10부는 올해 4-7월 초 사이 릴리스될 예정이라고 한다. (출처 : https://www.denofgeek.com/tv/lupin-part-2-release-what-is-netflix-plan/)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 및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한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25년도 더 된 미드 <프렌즈>를 보며 충격받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