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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Feb 26. 2022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일까?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계속 미룹니다. 브런치도 오랜만에 쓰네요. 

언젠가 부터 오은영 박사님의 명언이나 콘텐츠 등이 SNS 피드 등에 자주 나타나면서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단어가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계속 미루는 심리는 바로 완벽하게 하고 싶기 때문에 준비가 되지 않은 지금 이 상태에선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꽤 그럴싸한, 혹은 우아한 포장법이다. 


완벽주의자가 반드시 긍정적인 단어라곤 할 수 없지만, 완벽주의 성향을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는 경우가 잦은 걸로 봐서 우린 완벽주의가 장점이라는 것에 더욱 무게를 싣는 듯 하다. 만약 완벽주의 성향이 철저히 단점이라면 그걸 장점으로 꼽을 일은 없으니까. 비율로 보면 완벽주의 성향은 내 마음 속의 7:3, 8:2 정도로 긍정적인 나의 특성으로 간주하는 게 아닐까. 인스타그램 등에서 허술하고 못생긴 나의 모습이 아닌, 가장 잘나온 사진과 아름다운 일상, 완벽무결해보이는 삶을 반영하는 그러한 사진 등을 올리는 심리도 어찌됐건 사람들은 최대한 '완벽하게 보이고 싶다'는 것을 지향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한없이 미루는 나를 "게으르다" "게으름뱅이"라고 자책하는 것보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그래, 난 완벽해지고 싶어서 이렇게 게으른 거 였어 하면서. 어쩌면 오은영 박사님 화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와, 사람의 단점 조차 그것을 좋은 것과 함께 대치하면서 마치 장점처럼 보이게 만드네.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걸까? 그런데 정말 일을 미루는 사람의 심리가 모두 "게으른 완벽주의자"로 귀결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 "게으르다"라고 자주 말한다. 특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뒤로 미루는 습관이 있다. 그럼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인가. 그냥 "게으르다"라는 특성을 완벽주의자란 표현으로 나를 그리 정당화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왜 계속 일을 미룰까? 내 행동과 마인드셋을 타자화해서 나름 생각해봤을 때 아래의 세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1)나는 멀티태스킹이 어렵다. 

사실 나는 대학생때부터 회사생활 할 때까지 내가 프로 멀티태스커라고 자부해왔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있고 일의 전환도 휙휙 빨랐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느낀 것은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은 결코 장점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집중력의 분산으로 인해 생산성을 떨어뜨려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행위는 우리가 모바일폰으로 앱 전환을 수시로 하는 모양새와 흡사하다. 카카오톡하다가 또 유튜브 좀 틀었다가, 그러다가 다른 앱 알림이 뜨면 보던 유튜브가 끊기는 것과 상관없이 또 그 앱 알림 클릭해서 무슨 내용인지 보았다가. 결국 같은 1시간을 쓰더라도 나는 카카오톡, 유튜브, 그리고 새로운 앱 등 활동 등 일의 가짓수는 많지만 결국 제대로 성과를 거둔 건 그리 많이 없다. 결국 내가 그때 본 유튜브도 그리 집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서면 "내가 뭐봤더라" , 알림으로 열어본 앱 내용도 알고보면 별 내용 없었거나 등 멀티태스킹은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성취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시간대에 하나에 집중 못하고 이것저것 왔다갔다 처리하며 모두 애매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한 건 회사에선 그렇게 이것저것 일처리가 빠르고 지금 내가 하는 일과 관계없는 질문이 들어와도 바로 전환해서 알아봐주고 하는 게 유능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정작 내 일의 결과물에 몰입할 힘을 다른데로 분산시킴으로써 더 잘나올 수 있었던 결과물이 생각보다 잘 안나오게 만들었다. 


특히 글을 쓰는 일, 기획을 하는 일 등 아이디어와 창작과 관련된 것은 멀티 태스킹이 불가했다. 유명한 소설가들은 하루에 2시간씩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도 몰아서 하는 것보다 하루에 1시간씩 쪼개서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유독 브런치를 포함해 기획서나 글을 쓰는 작업은 좀처럼 끊어서 쓰는게 되지 않는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그 날 끝을 봐야 한다. 만약 그 글 쓰는 것이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돈을 받는 것이라면) 차라리 하루에 몰아서 다 쓰고 마감기한까지 매일 그 글을 다시 보며 검토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글이나 기획서처럼 한번에 완성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그 전에 나의 신경을 조금이라도 건드릴 사소할 일들을 다 처리해버린다. 그래서 그 가장 중요한 업무를 해야할 땐 비행기 모드 (요즘엔 아이폰 '집중력 모드'를 애용한다) 해놓고 아예 하루 10시간~심지어 20시간 넘게 그것만 하는 것이다. 


10시간 넘게 하나에만 집중하는 건 꽤 중노동이고 스트레스를 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내 신경을 더이상 건드릴만한 것을 사전에 차단시키는 작업을 하다보니 항상 중요한 일을 나중으로 몰아서 하게 되는 것이다. 

근데 막상 쓰고보니 게으른 완벽주의자 설명과 일치하는 거 같기도 하고.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100% 몰입을 위한 환경이 나올 때에야 시작한다라는 점에서? 


즉, 중요한 일은 100% 몰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전에 내 신경을 건드릴만한 것들을 다 처리하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흔히 '우선순위'를 정해 일을 해야하는 게 일의 정석이라 많이 알려져 있고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 맞지만 좀처럼 어렵다. 


2)생산성에 대한 강박과 집착 

만약 그리 급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건 지금 바로 해버리면 그 결과가 바로 나타난다. 그러면 나는 하는 편이다. 그 일을 처리하면 내가 노력한 성과를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계속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한 동력이 되니까. 


사람들이 외국어 공부할 때 꾸준히 하기 위해 '관련 어학 시험'을 목표로 두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 것 같다. 어학 시험 자체가 내가 외국어 공부를 한 노력에 대한 성과이니까. 만약 시험이란 것이 없다면 꽤 많은 사람들이 어학 공부를 하다가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당장 내가 한 것에 대한 결과물을 볼 수가 없으니. 

어쩌면 우리가 지극히 시험과 결과 지표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스페인어를 공부하는데 매일매일 전세계 스페인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생과 스페인 튜터와 함께 화상 그룹수업을 진행한다. 거기엔 나는 유일한 한국 학생이고 한 절반이상은 미국 학생, 나머지는 중국, 일본, 인도, 싱가포르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 학생이다. 저번에 어쩌다가 DELE 이야기가 나왔다. DELE는 영어의 토익점수처럼 스페인어 대표 어학시험이라고 보면 된다. 그 이야기를 언급한 게 아마 일본 친구였는데 "너네 DELE 시험 쳐봤니?"가 질문이었다. 거기서 절반의 미국 학생들 중 대부분이 "그게 뭐야?"라는 반응이었고 나를 포함한 중국, 다른 아시아 국가권 학생은 대충 알고있다는 눈치였다. 거기에서도 어학 시험에 대한 집착이 아시아권에서도 유독 강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유럽 교환학생 생활할 때 거기에서 만난 친구와 "너 토익,토플 성적 몇 나왔어?" 등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물론 교환학생 신청하려면 토플 등의 영어 성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시험을 치르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외국어 관련 검색만 하면 'OOO 시험 대비'가 꼭 눈에 들어온다. 마치 외국어 공부에 대한 노력은 그 시험으로 반드시 직접 확인을 해야 성미가 풀리는 것처럼. 


이처럼 뭔가 성과가 어찌됐건 내가 한 만큼 바로바로 나오는 것이라면 결국은 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지금 이것을 한다하더라도 언제 성과가 있을지, 혹은 성과라는 게 있을지라는 것에 대한 의심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또다시 미루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브런치도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나에게 브런치는 종종 나의 의식에 대한 흐름을 정제 없이 쓸 수 있는 부담없는 공간이다. 업무에서 콘텐츠나 원고 기고 작업 등을 할 경우엔 끊임없는 자기 콘텐츠 검열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브런치는 그런 부담이 좀 덜한 공간으로 어쩌면 가장 프라이빗한 글을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남길 수 있다. 문제는 나는 브런치를 통한 뚜렷한 목표가 없다. 브런치로 작가되고 수익내기, ~로 사이드잡하기 등 그냥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돈이건 결과물이건 바로 보여줘야 하는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감에선 자유로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지금 이 브런치를 쓴다고 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라는 게 (가령 이 브런치로 인해 수익이 생긴다던가 등) 없으니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결국 생산성의 노예인건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런치를 하는데 그 생산성이 나타나지 않아서 또 꾸준히 못한다니. 이건 무슨 또 개똥 같은 변명인건가. 지극히 모순적인 사람이다. 


3)나의 능력을 과대 평가 한다

"내가 노력을 안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은 편이야" 라는 말처럼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대략 이정도 일이라면 10시간이면 끝내겠지 생각하고, 혹은 일부러 그렇게 도전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하다보면 거의 항상 그 시간은 초과한다. 

매번 이것을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저번엔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이제 경험을 해봤으니 이젠 노하우가 쌓여서 일찍 끝날 수 있을거야 라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마지막에 몰아서 그 10시간만에 다 끝낼 수 있는 작업이라고 과신한다. 만약 그 일이 30시간 걸린다! 라고 생각했다면 결코 나중에 몰아서 할 생각을 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루에 몰아서 하는 일에 대한 최장 몰입 시간은 나에게서 12시간이다. 공부나 일이나 무엇이건 간에 12시간 (식사시간 제외, 50분 작업하고 10분 쉰다는 가정하에 12시간동안 그것만 했을 때) 이 지나면 이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뭔가 빡세고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일이 생기면 12시간 단위로 하루, 이틀 정도의 마감을 준다. 가령 이건 10시간 정도면 할 거 같은데 싶으면 주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그냥 그것만 주구장창하는 것이다. 물론 정말 정직하게 그렇게 끝낸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마치 지금은 놀아도 나중에 몰아서 하면 다 잘할거야, 이 정도면 끝내겠지라는 자기 과신에서도 일을 미루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여전히 이 글을 읽고 있을 자칭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있을 것 같다. 옛날엔 그저 "게으름뱅이"라고 생각했는데 "게으른 완벽주의자"란 수식어에 안도를 하고, 현재 내가 미루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아..난 게으른 완벽주의자라서"란 그러한 생각으로 또다시 미루고 있지 않는지 살펴볼 필요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 게으른 완벽주의자라서 나는 지금 일을 미루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게으른 건가. 게으른 완벽주의자란 수식어는 나의 게으름을 정당화해줄 수 없다. 그저 나의 게으름에 대한 원인을 그나마 나아보이는 "완벽주의"의 탓으로 돌리는 방어기제에 불과하다. 게으름에 대한 원인을 찾기 귀찮은 것도 있다. 은근히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아보고 성찰하는 것에 대해 시간을 내지 않는다. 


사람마다 미루는 습관이 있는 것은 각각 다른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미루는 습관이 있거나 게으름을 피운다면 내가 왜 그러는지 자기 객관화가 필요할 것이고 그에 맞춰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무조건 "난 게으른 완벽주의자니까"라고 그냥 단정짓고 넘어가는 것은 거기에 안도할 뿐, 결국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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