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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Oct 05. 2022

오늘도 노트북 들고 바다로 출근합니다.

부산에서 한달살기 워케이션 시작했어요. 


100% 재택근무를 허용해준 회사 덕분에 워케이션을 몸소 실현하는 디지털 노마드 삶을 실현하고 있다. 서울에 본거지를 두고 이따금 1주, 2주 단위로 지방에서 머무르면서 카페 혹은 바다가 보이는 게스트하우스, 숙소 등에서 일을 하면 괜히 기분이 좋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른데, 나같은 경우 빠르게 일 처리하고 밖에서 열심히 놀고 싶단 마음이 간절해서 오히려 딴 짓 안하고 일의 집중도는 높은 편이다. 


이번 10월은 어디에서 노마드 살기하지 고민하다가 내가 오랫동안 염원(?)했던 서핑할 수 있는 곳에서 한달살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서핑을 몇 번 배워보고 느낀 것은 매번 하러갈 때 마다 실력이 제자리 걸음 혹은 리셋된다는 점이다. 진짜 파도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바다 근처에 살면서 거의 첫 한달은 매일 바다에 나가면서 배워야 한다고 누군가가 그랬다. 그래야 첫 한달 정도되면 이제 파도 좀 여유롭게 잡는 구나 레벨이 된다고. 특히 가을은 서핑 배우기 좋은 계절이다. 의외로 여름은 한국 서핑 성지인 강원도나 부산 일대 파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초보자들이 기본기 배우는데 좋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냥 무한 패들링(손으로 휘적휘적 헤엄치는 동작)이나 물 위에서 일어서는 연습만 할 수 있다. 

원래 강원도 양양 한달살기를 고려했으나, 문득 부산 송정이 너무 구미가 당겼다. 여름의 양양은 낮에 파도를 빡세게 타고 밤에 파티를 즐기는 유흥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 그 이미지가 강해서, 진짜 서핑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없을까 생각했는데 부산 송정이 괜히 그런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10월엔 부산 국제 영화제도 열리고, 여러모로 날씨 즐기기 좋은 계절 아닌가. 부산 여행을 많이 가봐서 내적친밀감도 강하고, 먹을 것도 할 것도 많은 곳이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별다른 계획없이 부산 송정 근처 한달살기를 결심했다. 사실 워케이션이라, 여기 사람들도 꽤 나를 많이 신기해한다. 한달살기한다고 하면, "그럼 퇴사하셨나요?"라는 질문이 자동반사적으로 나온다. 그래도 양양에선 서울 재택근무 하던 사람들(물론 그리 많지 않았지만) 꽤 만났는데 아무래도 부산에 까진 잘 안오나보다. 


파도가 치는 바닷가 근처에서 한달 살기를 하지만 여전히 일은 한다. 물론 이틀에 한번꼴로 반차 혹은 업무시간 조정을 통해 서핑 강습을 받거나 보드 렌탈을 해서 수시로 바다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미 오늘로 두번째 입수..?를 했는데 가을의 파도는 확실히 매섭다. 나같은 쪼렙은 엄두도 안날 정도로. 양양에서 이정도 파도를 경험해보지 않아서, 괜히 "와 부산은 파도도 매섭구나" 하면서 물에 얻어터지는 느낌. 


그럼에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하면서 오후 서핑하는 것만을 기다리며 열일 모드를 아직까진 잘 진행중이다. 일단 오늘은 부산 송정에서 한달살기 3일차 경험하며 느낀 2가지 좋은 점을 공유하려고 한다. 



 


1. 하나에 진심으로 몰입하는 프로 열정러들, 그리고 여유를 아는 사람들. 


"서핑에 제대로 맛들리면 인생이 바뀐다"

서핑을 배우기 시작할 때 이와 비슷한 말을 종종 들었다. 서핑에 한 번 재미보기 시작하면 진심으로 노빠꾸. 그냥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서핑이 하루 일과의 기준이 되는 인생을 살게 된다. 실제로 서핑 때문에 다른 도시에서 일 때려치고 서핑샵 차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마디로 서핑에 미치면, 그냥 서핑이 내 인생이 되버리는 것. 새벽에 파도가 좋다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바다로 들어가 파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오늘 오전 8시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노트북 들고 출근했다. 최소 10명 이상의 서퍼가 동동 뜬 채 파도를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에겐 일출 시간 이전에 일어나는 것 조차 힘든데, 그 시간에 나가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던지며 파도를 기다린다니. 열정도 이런 열정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 곳에서 그런 열정러들이 수십명, 혹은 수백명 모여 있다는 것이다. 


파도에 대해서 되게 부지런한데 또 느긋하다. 파도가 잔잔한 날엔 서핑샵 앞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타임을 가지거나 혹은 볕을 쬔다. 서울에서 온 촌사람 입장에선 마치 해외 어딘가 가야 볼 법한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여긴 일상이다. 좋아하는 것 하나에 미치고, 그것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 것. 그래서 이 곳에 있는 것 자체로 좋은 에너지 영향을 나까지 받게 된다. 만약 삶에 의욕이 없거나, 어떤 것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서핑으로 유명한 곳에 방문하는 것을 권해본다. 열정 뿜뿜 넘치는 사람들이자 삶의 여유를 아는 한량들의 모습에 새로운 동기부여를 받을 수도 있다. 



2. 쌩얼이 자연스러운 곳 


어차피 바다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곳에선 남녀노소 쌩얼이 자연스럽다. 꾸미고 온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이다. 까맣게 태운 피부가 오히려 훈장이 되는 곳. 여기서 흰 피부로 돌아다니면 그저 쪼렙에 관광객...(?) 혹은 도시 촌사람이다. 


옷에 대한 고민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편한 박스티에 반바지, 쪼리 혹은 샌들을 신고 어슬렁어슬렁거리면 된다. 분위기가 이러니 덩달아 나 역시 화장이 매일 뭐입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만 좀 하고 그냥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노트북 들고 출근했다. 오후에 서핑하면 서핑 마친 후 샤워까지 서핑샵에서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스킨 로션 바르는 것 이외엔 할 것도 없다. 


쇼핑 욕구도 덩달아 줄어들었다. 매일 들어가던 쇼핑앱은 여기 오고나서 한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나중에 썬크림 떨어지면 썬크림이나 사야지 생각만 할 뿐. 


3. 비법, 꼼수가 통하지 않는 스포츠, 서핑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들이 그렇듯, 이론만 빠삭한 것은 소용이 없다. 아무리 유튜브 등 영상에서 디테일하게 설명을 해준다하더라도, 이미 그 영상을 수십번 봐서 안보고 외울정도라 하더라도 실전에선 몸이 그 머리를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도 실내에서 하는 운동이나 어느 정도 공식이 정해져 있는 스포츠라면 그것이 통할텐데 서핑은 그런 것도 거의 없다. 


서핑 관련해서 "파도 잡는 법" "패들링 잘하는 법" "테이크 오프 하는 법" 무수한 영상과 콘텐츠가 있지만 그건 그 비법을 안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방법에 대해 숙지를 하되 수일, 수십일을 거쳐 계속 파도에 부딪쳐가면서 배워야만 체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보자 입장에서 "대체 패들링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강사들에게 물어봤자 자세는 가르쳐줄 수 있지만 결국 그 패들링 잘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본인 몫이다. 


뭔가 동작같은 것도 천천히 하면 하겠는데 파도 위에서 그 천천히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파도는 일정하게 오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방향과 크기로 오는 파도는 초보자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도 만든다. 


한마디로 이 세계는 별도의 비법, 꼼수 등이 통하지 않는다. 뭐, 더 높은 레벨 고수 단계로 간다면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핑에 처음 입문하고 "어 파도를 잡았다"하는 단계까지 가기 위해선 결국 노력없이는 불가하다. 


"서핑 어떻게 하면 잘해요?"란 질문에 대부분 강사들의 답변은 비슷하다. "그냥 많이 들어가서 많이 해보는 게 답" 


요즘처럼 "OO 빠르게 하는 O가지 방법" "~ 잘하는 비법 " 등 각종 비법, 지름길 알려주는 영상들이 가득한 가운데, 이렇게 정직한 활동은 되려 반갑다. 물론 사람의 운동신경, 파워 등에 따라 잘하기 까지 시간차는 존재하지만, 어찌됐건 서핑은 꽤 정직한 스포츠이다. 





"내일 파도 좋아요?"

"네, 좋을 거에요"

"오전, 오후 언제가 좋을까요?"

"세시 이후부터 하는 걸 추천해요" 


오후 반차 신청 완료, 

어찌됐건 전 내일도 바다로 출근합니다. 오전엔 노트북 들고, 오후엔 보드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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