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미즈케이 Oct 18. 2021

서핑을 배우며 내가 깨달은 3가지

올해 첫 서핑 배우기 시작한 서린이, 서핑 영업해봅니다. 

취미활동 중에 그런게 있다. 잘하건 못하건 그것을 한다는 것 자체로 그 사람을 쿨하고 멋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에겐 서핑이 그러한 활동이었다. 


나는 노트북만 가지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디지털 노마드를 준비하고 있다. 

서핑의 서자도 모르면서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노마드의 이미지는 발리나 하와이 같은 곳에서 칵테일 옆에 두고 일하다가 문득 일이 풀리지 않고 답답할 때 저 멀리 파도를 잠시 바라보다가 서핑보드 옆에 끼고 달려가가는 것. 파도를 즐긴 이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생맥주에 감자튀김 하나 주문해 무심코 내 할일을 다시 하거나 해먹 위에 낮잠을 자는 거다. (인정한다. 어렸을 적부터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실현 가능성이 있건 없건, 올해는 서핑을 배워봐야 겠다고 다짐했다. 마침 우리나라에서도 양양을 비롯해 서핑 스팟이 많아지고 서핑 당일치기 트립, 1박 2일 트립 등이 흔히 보일 정도로 서핑은 인기 액티비티로 부상했다. 


바다에서 하는 액티비티라 여름 레저 활동이라고 흔히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서핑은 오히려 봄과 가을이 파도를 즐기기 최적의 시기라고 한다. 여름엔 파도가 거의 없는 탓에 프로 서퍼들은 서핑샵을 운영하면서 초보 강습에 집중하거나 혹은 파도가 그나마 높은 날만 골라서 서핑을 하거나 일테다. 

초보 서퍼들은 파도 하나 없는 물 위 둥둥 떠다니면서 보드 위에 서는 법과 보드에 몸을 눕혀 패들링(헤엄쳐서 나아가는 동작)을 배운다. 나는 올해 첫 서핑을 배우기 시작했고 1박2일, 당일치기 등을 포함해 약 5회 서핑하러 갔다. 


다른 초보들처럼 여름 잔잔한 파도에 이따금씩 오는 작은 물살과 강사님이 밀어주는 힘에 의지해 깨진 파도 위로 벌떡 일어서는 것 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난 운동도 꾸준히 한만큼 내가 서핑을 금방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잔잔한 파도 위에서 조차 앞으로 나아가는 보드 위에 가뿐하게 서는 건 만만치 않았다. 계속 물에 빠지고 물을 먹었고 머리는 물미역이 됐다. 단순해보이는 동작인데 이게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상당해서 대부분 같이 강습 들었던 사람들은 강습 끝나고 한 30분 둥둥 떠다니다가 나갔는데 나는 오뚜기 처럼 보드 위에서 일어섰다가 풍덩 빠지고 다시 올라와서 또 일어났다가 풍덩 빠지고를 수십차례 반복했다. 주변에선 "와 체력 진짜 좋다"라고 할 정도로. (체력은 좋지만 밸런스가 저질인걸로) 


그래도 그리 미친듯이 연습하니 잔잔한 물에서도 안정적으로 곧잘 서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파도가 타고 싶었다. 근데 내가 서핑을 배우기 시작한 그 시즌엔 거의 파도가 없는 시기여서 파도가 점점 커진다는 가을에 다시 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추석연휴 전후, 난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서핑을 하러 갔다. 약 1개월 만에 다시 바다로 왔는데 여름의 파도와 사뭇 달라보였다. 확실한 것은 쉴새없이 치는 거센 파도. 저 파도 위를 탈 생각하니 막 흥분되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럴 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그 날의 파도는 약 1m. 사실 초보가 하기엔 무리이고 중급 이상 수준의 서퍼가 타기 좋은 파도라고 한다. 그런데도 뭐라도 되겠지, 그래봤자 파도라고 생각했다. 내 몸보다 큰 서핑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바다에 들어가는데 아뿔싸. 난 멀리서 밀려오며 내 앞에서 점점 커지는 파도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우선 초보 강습 때는 그러한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방법도 못 배웠던 나는 그 파도를 직격타로 얻어 맞고 보드도 날리고 그냥 물에 빠졌다. 와, 이게 뭐지. 무서운 건 그러한 파도가 쉴새 없이 몰아쳤던 것이다. 파도에 얻어 터지고 다시 일어서서 수습 좀 하려고 하면 저 멀리서 또다른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마이갓, 난 오늘 내 체급에 맞지도 않는 파도 상대하려고 올라온 셈이구나" 


서핑을 배우기 전까진 파도가 그리 힘이 센 지 몰랐는데 그 파도를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정말 고된 여정이었다. 열심히 물 먹어가며 겨우 안으로 들어왔나 싶었는데 저 멀리 큰 파도가 밀려오면 또다시 말려 들어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또다시 들어가면 파도는 나를 계속 밀어냈다. 초보 강습 때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파도 였다. 그 땐 서핑은 그냥 일어 서기만 하면 되는 거아냐? 라고 생각을 했는데 일어서고 뭐고 간에 일단 파도를 타는 포인트로 접근 조차 힘들었다. 겨우겨우 뚫고 이제 파도를 탈 포인트에 도착했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난 파도를 어떻게 잡는지 몰랐다. 

초보 강습 때는 깨진 파도 위로 강사가 밀어주고 구령에 맞춰서 일어났는데 지금은 진짜 파도 위에 내가 스스로 타이밍 잡아서 일어서야 했던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에 동동 서서 다른 사람들 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파도가 온다 싶으면 열심히 손으로 저어 일어서려다가 번번 실패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해변으로 밀려가서 다시 뚫고 들어가는 일만 수십번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다 갔다. 


이날 서핑 이후 난 2회 정도 더 왔는데 한두번 파도를 잡아 서서 오는 것에 성공, 하지만 여전히 파도 잡는 타이밍을 운에 의존해야하는 서린이다. 수많은 좌절을 겪어도 서핑이란 활동이 너무 매력적이라 다음주에 또 당일 치기 서핑을 계획하던 차에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참에 내가 서핑을 하면서 깨달은 인생의 진리 3가지를 말해보려고 한다. 


1. 대자연은 결코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서핑은 보드 하나에만 의존한 채 인간이 홀로 자연을 마주하는 운동이다. 우린 간혹 지구를 인간이 정복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 어느 동식물보다 상위 개체이며 우리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자연을 마구 파괴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그 과정에서 자연은 우리가 정복해야할 대상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이따금 일어나는 수많은 재해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처럼, 우리 개개인은 대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선 무력해진다.


서핑을 하면서 그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더더욱 커진다. 처음엔 내가 이 파도를 정복해야지, 내가 이기나 너가 이기나 라는 그러한 승부욕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타이슨의 펀치만큼 강력하고 빠른 파도는 오히려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때 쯤 깨달았다. 파도와 싸우려고 하지말고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파도를 탈 수 있다는 것을. 파도가 나를 들어올릴 때 최적의 타이밍에 일어나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1,2초가 늦어지면 결국 파도 위에서 고꾸라진다. 마치 하나둘셋 하면 동시에 들어올리는 팀워크를 하는 것처럼. 파도와 조화를 이루며 협업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 꼼수가 통하지 않는 기본기가 제일 중요하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때 "이만하면 기본기는 됐다"하고 넘어가서 차곡차곡 쌓는데 결국 기본기가 부족해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대부분은 약간의 꼼수 등으로 부족한 기본기를 만회할 수 있다. 웨이트를 할 때도 잘못된 자세일지라도 힘만 좋으면 어느정도 무게를 칠 수 있다던가, 외국어를 말할 때 문법은 엉망진창이더라도 단어를 내뱉는 식으로라도 의사소통을 한다던가. 게임을 할 때도 능력이 부족하면 템빨을 부려라도 만회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한 의미에서 서핑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게임이다.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의 출신지, 학업, 기존 운동 능력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다 처음부터 짠 물을 마셔가며 시작한다. 아무리 장비빨을 부려봤자 기본기가 없다면 결국 나 자신이 하기에 달린 것이지 누군가가 벌떡하고 세워줄 순 없다. 


결국 보기엔 쉬워보이지만 막상 파도 위에선 하기 어려운 동작이나 기술 등은 기본기와 연습을 바탕으로 한다. 난 여름 강습 때 강사들이 왜 그렇게 "패들링이 결국 서핑의 전부, 80%"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그냥 보드 위에 누워 손으로 젓는 건데 그게 그리 어려운 건가 싶었다. 오히려 보드 위에 올라 타서 이것저것 하는 것이 더 어려운 거 아닌가? 근데 제대로 큰 파도를 경험하면서 그 중요성을 몸소 깨달았다. 


결국 파도와 조화를 이루려면 파도의 속도와 내가 손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일치해야 하는데 내가 패들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발버둥 쳐서 헤엄 해봤자 도저히 그 속도가 안맞아 파도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패들링도 잘 못하면서 큰 파도를 타려고 과욕을 부리지말고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져나가 큰 파도를 마주할 준비를 만들어야 하는 게 서핑이었다. 


3.완벽한 순간을 위한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서핑은 기다림의 스포츠이기도 하다. 바다 한복판에서 보드 위에 앉아 저 멀리 해안선을 바라본다. 아무 파도나 막 잡아 타는 게 아닌, 좋은 파도를 잡기 위해 프로 서퍼들은 수십분을 경쟁하듯 기다린다고 한다. 또한 서로간의 매너를 위해 아무리 좋은 파도가 왔다 하더라도 1파도 1인 법칙(one wave, one person)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내가 그 파도를 탈 지점에 있는게 아니라면 파도를 타지 말고 보내야 한다. 


물론 난 아직 초보이기 때문에 여전히 뭐가 내 파도인지 타야할 파도인지 모른다. 이런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고 수차례 타보면서 감을 잡아야 하는 과정이다. 처음엔 바다에 들어가 파도가 온다고 하면 무조건 탄다 생각하고 준비 태새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나쁜 파도(?)를 타고 몇번이고 물 먹다 보니 체력이 소진되었다. 결국 진짜 좋은 파도가 나에게 올 땐 그걸 탈 힘 조차 없어 놓쳐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인생을 파도에 비유한다. 사회 어딘가에 잔잔한 물결에 그냥 동동 떠다니면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싶은 인간들에게 파도는 계속해서 밀어내고 덮치면서 변화를 요구한다. 그 파도를 겪으며 우린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 좀 나 좀 내버려두라고. 하지만 파도는 잠시도 우릴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파도를 아예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유일한 방법은 그 파도 위를 올라타거나 아니면 파도에 그대로 휩쓸려가 원점으로 돌아가던가. 그 파도는 올라 타기만 하면 이제 기회가 된다. 파도 위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방향 전환을 하며 즐거움을 맛보고 그 다음 나는 더 큰 파도를 탈 준비가 된다. 



결국 서핑은 우리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담은 스포츠이다. 

바다를 우리의 인생이라고 보고 파도를 우리의 인생 속에 흔히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이라 보자. 그 고난과 역경을 뚫고 넘어가는 과정은 내가 보드를 밀어 바다에 들어가는 모습과 닮았다. 그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은 나를 수차례 저 쪽으로 보내버리고 물 멕이고 보드마저 삼켜버리지만 그걸 뚫고 들어가느냐 혹은 포기하고 나오느냐는 순전히 내 의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간들 바로 인생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망망대해에서 좋은 기회를 끊임없이 기다리야 한다. 그 좋은 기회를 적절하게 잘 잡아 타기 위해선 무엇보다 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 파도를 잡을 능력도 없다면 결국 좋은 기회는 나를 비켜갈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니 문득 파도를 인생에 비유를 최초로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궁금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새벽 3시에 자던 내가 미라클 모닝을 해보았더니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