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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ul 04. 2021

탄산수 제조기를 구매하며 생긴 일상의 변화

플라스틱을 매일 처분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탄산수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약 12년전, 수능을 마치자마자 떠난 첫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였다. 나름 오랜 기간동안 모은 용돈으로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첫 여행이었는데 헝그리 백패커처럼 여행했다. 먹고 싶은 것 꾹 참고 무언가를 살 때마다 제일 저렴한 걸로 샀다. 지불하는 가격과 상관없이 큰 차이를 가장 못 느끼는 재화가 있다. 바로 '물'. 한국에서 당시 내가 생수를 자주 살 일이 있었던 가 싶을 정도로 유럽에선 정수기가 딱히 없으니 숙소에 커다란 생수통을 두고 일상 속에서도 수시로 작은 생수통을 들고 다녀야 했다. 특히 건조한 여름이었기 때문에 수시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슈퍼마켓 갈 일이 있으면 물은 꼭 하나씩 집어온 거 같다. 

어느 슈퍼마켓에 들어갔는데 500ml 물이 0.3유로 (500~600원) 정도 밖에 안하길래 한 3~4통 집어들어왔다. 그리고 뚜껑을 까고 마시는데 뭔가 '피시~~~"하는 탄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물이 넘쳐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사이다를 잘못 산것인가 라고 당황스러워 물을 마저 마시는데 사이다의 단 물도 없는 이 탄산물은 뭐지? 하고 돈 아끼려다가 돈 날렸네 하며 심통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한국에서 탄산수의 개념이 그리 익숙한 개념이 아니라서 "유럽엔 탄산이 들어간 그냥 맹물이 있어" 하고 이후 친구들에게 알려준 기억이 난다. 물론 점점 탄산수가 유명해지면서 유럽 카페에선 물 살 때 반드시 병을 눌러볼 것이란 팁이 나돌았다. 탄산수는 빵빵해서 손으로 눌러보면 들어가지 않지만 생수는 쑥 들어간다. 여튼 이후로 물 살 때마다 꾹꾹 눌러보고 정상적인(?) 생수를 샀다. 

그러다가 내가 탄산수를 사랑하게 된 것은 맥주 맛에 눈을 뜨면서였던 거 같다. 그 전까지만 해도 탄산 음료를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탄산 자체를 자주 안먹었는데 유럽 생활을 하면서 맥주와 탄산에 중독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달달한 탄산음료는 좋아하지 않아서 좀 플레인한 느낌의 탄산 음료 대용품은 없을까 하다가 (매일매일 술을 먹을 순 없는 노릇이므로) 탄산수를 떠올렸다. 마침 한국에서도 페리에를 비롯해 탄산수 브랜드를 카페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자리잡고 있었다. 


소주 마실 때 탄산수 라임, 레몬향 타먹으면 더 맛있다며 "쏘리에(소주+페리에)'를 가르쳐 준 한 지인 언니 덕분에 소주 먹을 일 있을 때마다 괜히 올리브영에 들러 페리에 두병씩 사가곤 했다. 물론 그 때는 지금만큼 탄산수를 자주 마시진 않았지만 밖에서 목이 말라 음료수를 사먹을 때 탄산수를 으레 고르곤 했다. 


Covid-19 이 발발하고 나는 회사란 타이틀을 때고 스스로 자립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 생각하며 퇴사를 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는데 문제는 집에 있으면 군것질이 마구 하고 싶다는 거다. 당도 땡기고 괜히 배가 고프지도 않는데 뭔가 계속 먹고 싶었다. 심심한 입을 달레주면서 건강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고 포만감 느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탄산수가 떠올랐다. 일단 탄산수는 탄산 때문에 배가 불렀고 기호에 따라 콤부차 같은 걸 해먹을 수도 있고 카페에 온 느낌으로 음료 마시기도 좋았다. 시럽을 조금 타먹으면 카페에서 파는 스파클링 음료 부럽지 않다. 

인터넷에선 탄산수를 엄청 싸게 팔았다. 시중에 브랜드 330ml-500ml 탄산수 페트병 20개들이가 배송비 포함 1만원도 되지 않았다. 1병에 약 500원이 안되는 셈이니 하루에 1~2병 마셔도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한 2-3개월째 탄산수를 정기주문하는데 초여름이 다가오면서 탄산수 마시는 횟수도 늘어갔다. 심지어 어느날은 탄산수를 하루에 2L를 먹는 날도 있을 만큼. 회사 다닐 땐 집에 있을 일이 없어서 에어콘 설치를 안해놨었는데 그것 때문에 폭염을 탄산수로 이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플라스틱 페트병을 매 주 분리수거일에 맞춰 내놓는데 20~30개씩 한가득 쌓인 플라스틱 페트병을 보면서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Covid-19 때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배송에 의존하면서 매번 택배, 아이스박스 등 쓰레기량이 정말 많아졌다는 뉴스와 재작년 플라스틱 빨대와 거북이 이야기 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생각난 것이다. 특히 플라스틱은 실제로 재활용하는 비용이나 새로 만드는 비용이나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서 실제로 우리가 분리배출하는 플라스틱의 재활용되는 비율이 상당히 적다고 했다. 플라스틱 페트병, 컵, 박스 등에 스티커, 이물찔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냥 일반쓰레기로 다시 직행해 지구 어느 한 바다에서 떠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탄산수를 포기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다가 문득 탄산수 제조기가 떠올랐다. 검색을 해보니 약 10만원대면 살 수 있고 탄산 실린더 역시 매회 업체 수거배송으로 '충전'을 할 수 있다. 기존 실린더 역시 계속해서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하니 나 처럼 탄산 덕후가 그나마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사실 1개의 탄산 실린더로 만들어 마실 수 있는 탄산수의 총량과 탄산수 제조기의 초기 비용 등을 고려하면 내가 매번 플라스틱 페트병 탄산수를 배달 시켜먹는 비용이랑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얻는 결과물은 거의 동일한데 발생하는 쓰레기는 훨씬 줄어든다는 것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도 바로 탄산수 제조기를 구매했다. 


결론적으로 정말 만족하며 잘 활용하고 있다. 더이상 나의 탄산수 소비로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을 뿐 더라 내 취향대로 탄산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면 정수기 물을 받아 탄산수 만드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한다. 버튼을 몇 번 눌러주기만 하면 생수가 바로 탄산수로 변한다. 오히려 플라스틱 페트병 처리로 머리 아플 일이 없어서 좋다. 


사실 난 환경운동가는 아닌 지극히 보통의 환경 관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에 로켓배송, 새벽배송들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며 매번 쓰레기 배출하러 갈 때마다 한가득 쌓인 아이스박스와 플라스틱들을 보면 인간은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이기적인 존재이구나 란 생각이 새삼스레 들기 시작하며 온라인으로 식품 배송을 하는 것부터 줄여 나갔다. 원래는 주기적으로 샐러드와 호밀빵 등을 배송해먹던 나였다. 대신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러가기 시작했다. 마침 집 근처에 꽤 활성화된 시장이 있는 것이 행운이었다. 매주 1~2회씩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직접 보면서 사서 집에 와서 직접 샐러드용 채소를 손질했다. 예전에는 샐러드 만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정기 배송 해먹었는데 요샌 오히려 주말에 1주일치 샐러드 채소와 과일 다듬으면서 조금 더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고 행동을 하면 조금 불편해질 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부지런해진다. 기존엔 그 불편함으로 낭비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오히려 이것은 낭비가 아닌 나를 인식하는 시간으로 쓰인다. 


최근 제로웨이스트 (Zero-waste) 개념이 한국에서도 조금씩 인식되어지고 있다. 카페에서 텀블러를 쓰는 건 이제 꽤 일상에 자리 잘 잡았는데 식당 테이크 아웃할 때 일회용 용기가 아닌 집에서 들고 온 반찬 용기를 내미는 것은 여전히 큰 용기를 요구한다. 사실 "일회용 용기 말고 제 반찬 용기에 담아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일이 뭐가 그리 힘들겠냐만은 "유별난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지 않는 마음도 있어서 괜히 소심해지는 거다. 그럼에도 "나는 환경을 위해 직접 행동하고 실천하는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역으로 자부심을 가지면 비교적 당당해진다. 우리 모두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편리함'을 굳이 포기하고 '불편한 실천'을 선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 알기 때문에. 


물론 우리가 문자 그대로 쓰레기를 하나도 배출하지 않고 생활하는 삶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내가 탄산수 페트병을 잔뜩 시켜먹다가 탄산수 제조기로 바꾼 것처럼, 일상 속의 나의 소비 패턴에서 남들보다 더 쓰레기가 많이 배출되는 습관이 있다면 그것을 대체할만한 습관을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 습관 자체가 당신을 '환경을 생각하는 쿨한 사람'으로 보이게 해줄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거창하게 환경운동가가 될 필욘 없지만 문제를 의식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닌,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며 생활을 해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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