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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n 28. 2021

베르세르크

미완 그래서 더 자유롭고 조금 안타까운 그런 이야기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은 언제나 나를 망쳐 놓았다. 난 스타트선에 선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 곤 했고 이후 언제나 불만족스러운 작업물에 재능이 없다고 나 자신을 못 박아 버렸다. 성장하는 과정을 나는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취하는 차선의 방식은 어떤 창작물을 가지고 나만의 비평을 써가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나의 완벽주의는 때론 다른 방식에서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완결성을 쫓는 나의 기질이 작품을 통한 나만의 해석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을 비평하는 것은 나를 비평하는 것보다 언제나 쉽다.


미우라 켄타로 — 장인정신을 가진 만화의 마스터로 알려져 있다. 꾸준히 작화가 성장하는 만화가였고 하나의 완성품을 내놓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로 유명하다. 왠지 그의 완벽주의에 대한 집착은 나의 내면의 고통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 생각하는 것이 괴로운 그런 만화가였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 특히 어둠은 나를 빨아들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제 세상을 떠난 그를 기리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그의 작품을 해석해 볼까 한다.


나는 오타쿠적 기질이 약해서 디테일과 설정 자체에 대한 세부사항은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의 작품은 한참 전에 ‘황금시대’가 완성된 이후에 처음 보았고 그 이야기에 매혹되어 당시 연재된 분량을 한 번에 읽어 내려갔지만 그 이후에는 느린 연재로 인해서 흐름을 완전히 놓쳤고 따라서 후반부의 내용은 아직 읽지 않고 그냥 대충의 흐름만을 들어 알고 있는 상황이다. 연재되는 대로 만화를 쫓아서 읽으면 그의 작품 전체의 테마를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느낌이라서 나는 솔직히 이 작품이 완결된 이후에나 나머지 분량을 챙겨볼 심산이었다.


그래서 여기에 써놓는 나의 해설은 그냥 뇌피셜이며 나만의 망상을 글로 적어놓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등장인물은 당연히 ‘그리피스와 가츠’이다. 작가가 이 둘의 대립을 통해 작품 전체의 테마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다른 인물보다 당연히 두드러진다. 주변 인물의 서사가 약한 편은 아니지만 이 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쫓아가야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놓치지 않고 전체 구조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그리피스와 가츠는 상징성이 대단히 강한 인물들이라고 느껴진다. 밝음과 어둠의 대비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게는 인생의 의미와 삶의 구원 그리고 어떻게 나약한 인간이 운명에 맞서 일어설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도구로 작가가 이 둘을 창조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둘 다 삶의 의미를 쫓는 인물들이지만 그리피스와 가츠는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 그리피스는 자기만의 성, 왕국을 가지는 것이 꿈이다. 화려하고 인상적이며 신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가는 그리피스는 정말 매혹적으로 그려진다.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고, 행동력은 감탄스럽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매력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가츠를 만나게 된다.


그에 비해 가츠는 세상의 부조리에 그냥 내팽개쳐진 인물이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단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불길하고 재수 없는 존재가 되어 끝없이 부정당하는 존재.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일찍부터 검을 손에 잡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배신당하고 끝내 살기 위해 꿈틀대며 저항하지만 그 저항 자체가 죄가 되어버린 인물. 목줄을 끊고 도망친 가츠는 외로운 늑대처럼 홀로 전장을 떠돌다 그리피스를 조우하게 된다. 이미 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던 그리피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힘으로 가츠를 제압함으로써 그를 손에 넣게 되고 그렇게 둘의 관계가 시작되면서 운명의 수레바퀴도 굴려가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존재의 증명은 오직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다크 판타지를 표방하는 이 장르적 특징에서 힘 자체가 부조리를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느낌이 강하다. 힘이 곧 정의인 세계에서 그리피스는 이 질서를 아주 냉혹하게 이용하고 책략을 펼치면서 자신의 심복인 가츠를 이용하여 정적을 제거해 나간다. 그렇게 그리피스에 이용되면서도 용병단에 소속되어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던 가츠는 전장이 아닌 정치노름 속에서 무구한 어린 생명을 제거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이제 그리피스와 가츠는 크게 분화하기 시작하고 작가가 어떻게 두 인물을 설정하였는지도 분명하게 보이게 된다.


그리피스는 공주를 앞에 두고 화려한 말을 시작한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무엇이며 친구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은 듣는 사람을 순식간에 사로잡는다.


“타인의 꿈에 이끌려 다니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 정하는 내게 있어 친구란 그런 대등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가츠는 그리피스의 말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는 상대의 인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의지로 홀로 섰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그는 그토록 갈망하던 삶의 의미, 그리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이렇게 손에 넣고 홀로서기를 마음속에서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에 비해 그리피스는 화려한 의식으로 꿈을 좇는 자이지만 자신이 쫓는 꿈의 진실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것을 그의 말을 통해 드러내 버렸다. 타인의 꿈에 이끌려 움직여도 대의를 함께 쫓는 이들은 친구라 할 수 있고, 힘이 대등하지 않아도 서로 의지하고 마음으로 연결된 자라면 그 역시 친구라 할 수 있으며 하는 역할이 달라서 그에 따른 구분이 있을지라도, 마음의 연결에는 상하가 없는 것인데 그리피스의 의식은 철저하게 계급화된 사회의 질서를 내면에 내재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피스가 쫓는 왕국은 사실 허상 자체라고 할 수 있고 그가 이미 손에 넣은 ‘매의 단’ 자체가 그가 꿈꾸던 내용적 실체라고 할 수 있음에도 그리피스는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파랑새를 쫓아 어둠을 헤매는 소년으로 고착화되어버린 캐릭터가 그리피스라고 하겠다.


자신이 손에 넣은 것들의 가치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던 그리피스는 가츠가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가 홀로서기를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 가츠는 철저한 소유물이었다. 많은 찌그러진 사랑의 관계가 종속적 소유관계로 변질되듯이 그리피스는 진실된 동료관계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었고 스스로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꿈조차 그냥 허울뿐인 빈 껍데기였다는 것을 가츠가 떠나가면서 어렴풋하게 자각하게 된 그리피스는 이후 급격하게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냥 자신의 왕국이 아니라 어떤 왕국을 만들 것이라는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을 힘의 역학관계로만 이해했던 그리피스에게 거의 유일했던 내적 연결인 가츠가 떨어져 나간 이후 보여주는 그의 모습들은 이 캐릭터의 정신적 기반이 얼마나 허약했던가를 잘 보여주는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왕국은 허상이었고 그것을 쫓는 그의 완벽함도 껍데기였던 그리피스는 자신이 세상에서  이룩한 실질적 가치였던 ‘매의 단’을 마침내 강마의 의식을 통해 바치면서 이야기는 이제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환이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츠의 인생은 다시 한번 바닥까지 굴러 떨어지고 간신히 헤쳐 나온 내적 어둠은 그리피스를 향한 ‘복수와 단죄’라는 어둠으로 다시 한번 물들게 된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황금시대’ 편이 되겠다. 그런데 그 이후에 진행되는 내용들의 얼개를 대충 둘러보면 작가는 이 황금시대를 자기 작품의 핵심으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파트가 이 ‘황금시대’가 되었고 이후에 대한 반응에는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아서 작가가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면서 꽤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분명히 있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공허를 걷는 두 인물에 대한 서사이다. 함께 추구하던 꿈이 산산이 부서진 이후 그리피스는 새롭게 부활하여 더 강한 부하들과 함께 이 세계에 자신의 왕국을 다시 구축해 나간다. 그리고 가츠는 자신의 연인이지만 그리피스로 인해 정신이 붕괴된 케스커를 보며 복수심에 빠져들어 자신이 추구하던 삶의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지만 이후 다시 동료들을 하나, 둘씩 모아가면서 그들의 도움으로 ‘힘’만으로 모든 것을 부수며 자신조차 망가뜨려 나가는 ‘광전사’에서, 운명의 사나운 휘둘림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의지를 보여주며 자신의 삶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고 이를 증명해가는 존재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이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큰 주제가 아닌가 추측해 본다.


개인적으로 그리피스는 작가가 일부러 화려하게 그리는 만큼 허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캐릭터다. 강마 의식으로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가도 다시 유계와 현실의 겹침이 일어나는 상황을 이용해서 새롭게 탈피해서 기존의 모습으로 부활하고 이후 하는 일이 다시 허울뿐인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일이라니… 뭔가 의미 없고 허망하다.  시지프스적이라 해야 할까? 끝없이 자신의 야망을 쫓아 움직이지만 그 속에 알맹이가 없고 끝내 손에 넣은 꿈으로 그의 허기진 영혼은 이제 채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더욱더 정신적 허기는 심해질 것인가?


세상의 부조리와 정면으로 직면하여 끝없이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아 헤매던 가츠는 동료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최종적으로 찾게 될까? 복수라는 광기에 물들어 모든 것을 파괴할 것처럼 광폭해졌던 정신은 이제는 덧없고 허무한 공허의 늪에서 빠져나와 평안함에 이르게 될 것인가?


작가의 타개로 후반부의 이야기는 미완으로 남게 되었지만 전체적인 얼개와 주제는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세한 디테일적 설정을 즐기는 마니아들에게는 이런 식의 마무리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은 다 완성된 상태로 자신이 생각하는 주제의식을 어떻게 잘 연출할 것인가만 남겨놓고 고민하다가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좀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이미 오래전에 스토리라인은 다 완성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작가의 완벽주의 성향이 작품을 계속 다듬다가 끝내 후반부의 공백을 남겨 버린 것 같다.


존재의 의미란 무엇일까? 그리피스는 꿈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도구로 ‘힘’을 주목하지만 나중에는 끝없이 ‘힘’ 자체만을 추구해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에 비해 가츠는 타인의 인정에 의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증명받으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그리피스의 매의 단을 통해 연대를 배우고 다시 복수의 광기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타인과의 진심 어린 소통을 통해 방향성을 회복하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구축해나가면서 존재의 의미도 새롭게 정립하는 것 같다. 즉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테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작품이고 이제 완결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끝이 나버린 작품이기에 미루어 두었던 후반부를 찾아서 마저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다 읽고 나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을 작품에서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내가 가장 공감했던 두 캐릭터의 이야기를 여기에 이렇게 남겨두고 이후에 큰 감상의 변화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또 새롭게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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