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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n 28. 2021

완벽주의

완벽, 그 허무한 환상.

오늘 밤 내 삶이 끝난다면 나는 후회할까?


솔직히 나는 아닐 것 같다. 나름은 열심히 몸부림치며 살았기 때문에 내 삶 자체에 큰 후회는 없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는데 하는 감각도 없고, 그냥 고단했던 무언가를 마감하는 느낌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금의 나를 추동하는 강렬한 욕망이 없기 때문인지 최근의 나를 보면 그냥 억눌린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탐구하고 제어하는 것이 나의 최대 관심사가 된 느낌이다.


나는 분명히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고 내게 완벽주의란 그냥 질병이다. 이 이상한 기질은 나를 아주 오랫동안 괴롭혔고 또한 나를 파괴적으로 만들곤 했다.


그 파괴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조금씩 해볼까 한다.


자기 모멸감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모두 조금씩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거대한 실체적 존재가 되어 자신을 덮치는 것을 감각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완벽주의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발전한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질병적 증상이니 말이다. 아! 그리고 실패를 상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이 증상은 더 쉽게 강화된다.


나는 최근에 이 증상을 아주 강하게 경험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글쓰기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밖으로 공개하려고 하는 나의 결심이 이 증상을 아주 강화하고 있다. 이것은 신체 내부의 불안이 무의식적 방어기제를 발동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외부로부터 공격받을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에 대한 집착 말이다. 난 이 글을 반말체로 쓰고 있다. 이렇게 하면 분명히 읽는 것이 불편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불편함을 고려한다면 나의 글은 당연히 높임체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또 이것저것 눈치를 보면서 나의 글에서 온갖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 글을 훑어보고 꼼꼼하게 내용을 검토할 것이다. 완벽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면 공격받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안전할 것이다. 뭐 결국 이런 최종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자기 탐구라는 궁극의 목적은 사라지고 안전을 위해 자기 검열을 하게 되고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이 뭔지 나조차도 알지 못하게 되고 나는 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이 순환고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가? 글은 쓴다고 해서 그냥 늘지 않는다. 알고 있다. 기계적으로 무엇을 반복한다고 해서 자기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벽에 막힌 지점에 도착하면 자기 노력으로 결국에는 그 난관을 뚫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기 고집과 아집으로 어제 했던 것을 오늘 또 반복하면서 자신의 오류와 불완전성을 어떻게든 거부하고 감추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결국 자기 방어 체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충동에 반응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위험을 즐긴다. 그들은 모험가가 된다. 하지만 그 충동에 중독되어 자기 제어를 하지 못하게 되고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경우는 내 케이스가 아니다. 나는 그런 케이스에 대한 내적 경험이 약해서 그런 사람들이 자기 충동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알지 못한다. 나는 겁쟁이라서 방어에 특화되어 있다. 한번 그런 경향성이 생기면 스노볼은 계속 굴러가서 이 경향성이 끝없이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몸과 마음에 증상이라는 것을 일으키기 시작할 즈음이면 이것은 이미 쉽게 고칠 수 없는 악성이 되어버린 이후라는 것이다.


완벽주의 말이다.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그냥 완벽은 상상의 산물이다.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때론 실존한다고 착각하고 그것을 맹신하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고 불안전하며, 인간은 자기모순적이며 불안하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허무주의자 같다. 하지만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단지 내가 느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완벽하지 않은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조작을 하면 된다.


컴퓨터의 프로그래밍과 같은 원리이다. 특정 체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만 작동하도록 만들면 그 체계 안에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한 그것은 완벽하다고 말을 한다. 그럼 그 대가는 무엇일까? 자유를 저당 잡히는 것이다. 생각하는 자유를 저당 잡히고 의심하는 것을 멈추고 규칙을 따르고 이익 (충동과 쾌락)을 따라가면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그냥 만들어진 흐름 속을 살아가다 보면 인간의 사고는 마비되어 버리고 그 순간부터 역으로 편안함을 느끼면서 그 상태가 오히려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인식하게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그 사람의 기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할 수는 없다.


나의 완벽주의는 매일 내가 눈뜰 때마다 내 안에서 깨어나서 나를 미친 듯이 공격한다. 나의 글이 쓰레기라고 말이다. 글을 쓸 때 자아도취에 빠져서 자기를 잃어버린 너의 글은 쓰레기야. 쓰레기야. 이 위선자. 비겁한 놈 등등등… 끝도 없다. 눈 뜨는 그 짧은 시간에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내적 갈등은 그야말로 개판이다.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나는 내 글을 모아놓은 폴더를 조용히 지워버린다. 그리고 편안해진다. 이것이 나의 완벽주의다.


그야말로 완벽하지 않은가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 그 상태를 무한으로 늘려가는 것이 누군가의 완벽주의의 민낯이다. 나는 완벽한 글을 쓰려는 게 아니다. 그냥 밖으로 쏟아내지 못해 엉망이 되어버린 나의 내부를 뒤집어엎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공개되지 않은 글들은 또 다른 실패가 되어 나를 무한으로 갉아먹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시작한 것을 마무리하지 못하는지 아는가? 끝나지 않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미완이기 때문이다.


이건 개소리다. 그야말로 헛소리다. 비트겐슈타인은 젊은 날에 그의 철학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말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 진리다. 누가 진리를 알고 있는가? 누구도 알고 있지 못하다. 단지 그 파편의 조각들을 나누어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자기 파편을 진리라고 말하면 안 된다. 침묵하라는 것은 내 것이 진리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진리가 아닌 말은 뭔가? 개소리, 헛소리다. 그러니까 우리는 평생을 개소리, 헛소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헛소리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하는 말이 개소리라는 것을 알고 하고 있다면 말이다.


멍멍….!! 누군가의 헛소리를 읽어준 당신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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