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글쓰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언제나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있었다. 하지만 완벽함에 집착하는 나의 기질은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잡념들이 글이 되어 형체를 갖추어가는 것을 쉽게 용납하지 못했다. 어딘가 모르게 미숙한 글은 모자란 나 자신의 투영이었고 그것을 보는 것은 내 싫은 목소리를 녹음하여 듣는 것만큼이나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글은 쓰이다 말았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면서 방황하는 나의 정신은 그 자체로 나의 정체성이다.
나이를 먹어가면 나라는 존재가 저절로 뚜렷해질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변화하는 동물이고 그 변화 속에서 뭐가 나인지 그리고 내가 아닌지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자기와의 대화에 무척이나 서툴기 짝이 없었고 무엇보다 지적하고 비판하기 좋아하는 속성, 최근에야 그것이 나의 약한 자의식에 대한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반작용이라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이 나 자신의 글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스스로 찌그러지고 어그러진 나 자신의 글을 읽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인간이 원래 모순적이라는 것. 그래서 자신만의 기준이 없는 영혼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쉬운 교훈을 최근에야 나는 내면화할 수 있게 되었다. 옳고 그름… 세상은 다름으로 가득 차 있고 모든 사람들의 기준과 의견은 모두 다르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기호, 기준도 계속 바뀌어가는데 그 속에서 나의 모든 취향을 옳다고 생각하는 오만함과 무지함 더 나아가 스스로의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는 비겁함까지 더해져 나의 글은 한참이나 늦어지고 말았다.
나는 내 글이 싫다. 왜냐하면 너무 난척하고 약하고 비겁한 나의 내면이 그대로 나의 글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바라보고 성찰하기 위해 이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의 글은 맞춤법부터 표현까지 모든 것이 서툴고 어쭙잖다. 하지만 그게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연습이 지금 이 글쓰기이다.
오래된 글을 찾아서 나의 글을 읽어 내려갈 때 최근의 글보다 오히려 오래된 글에서 묘한 반가움을 느낀다. 나 스스로 느끼지 못했지만 어쨌든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너무 다르고 심지어 세상을 보는 관점도 완전히 달라져서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내가 한 공간에서 서로 만난다면 둘은 아마 철천지 원수가 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이 과거의 나는 정말 순수하게 악을 미워했고 그 악이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것이 선이고 나와 다른 것이 악이라는 너무나 단순한 이분법에 갇혀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젊은만큼 뜨거웠고 그 뜨거움을 어떻게 토해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서툴게 써여진 분노가 지금에 와서 반가운 것은 그 열정에 더해서 지금은 어쨌든 무언가 조금 자라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 조금이지만 한 발을 내딛고 전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이 글들을 더 많이 썼더라면, 치기 어린 투정의 글이라도 더 치열하게 써 내려갔더라면 어땠을까?
지난날 여자 친구에 보여준 글. 그리고 뭐라고 평가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심각하게 모욕감과 모멸감을 느꼈던 것은 나 스스로의 내면이 너무 초라했기 때문에 그것을 들켰다는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어린 만큼 미숙할 수밖에 없는데 어릴 땐 그 미숙함이 부끄럽다. 그때 내가 용기를 내어 나의 내면을 꺼내 보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래서 좀 더 일찍 나 자신과 대화하기 시작했다면 아마 방황은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지금에 와서 후회라는 감정은 들지 않는다. 왜냐면 남루하고 너덜너덜한 지금의 내 모습이 왠지 나에게 꼭 맞는 옷처럼 그냥 어울린다는 느낌이어서 말이다. 이런 나를 스스로 사랑하는 법, 그것이 글쓰기이다. 그래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