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고 싶은 모든 것들에…
인생의 목표.
나에게 단 하나의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화해다. 이것을 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 자신과의 화해, 가족과의 화해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
특별한 악의는 없다. 하지만 무수한 상처가 쌓여 있는 이 관계 속에서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거의 질식 상태로 마비되어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 걸까? 막막함, 이 막막함이 항상 나를 도망치게 만든다. 이런 난장판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움직여야 한다. 길은 움직이면서 찾는 수밖에 없고 내게 움직임이란 이제 글이다.
아버지. 큰 이름. 큰 사랑. 그리고 큰 아픔.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숨 막힘이 따라오는 것도 사실이다. 난 아버지의 기질을 많이 닮아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와는 많이 다르다. 살아온 시대가 달라서 그래서 내용물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식이라서 아버지의 고지식함을 그대로 닮아버렸고 그래서 우리는 자석의 같은 극처럼 서로를 밀어낸다.
아버지를 보면 언제나 늙은 나귀가 떠오른다. 하나의 목표인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이제는 거죽만 남아버린 노쇠한 존재 하지만 그렇게 끌고 온 가족이 머무는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왠지 억울한 아버지. 그 억울함을 이해해서 맘이 너무 아픈데 이럴 때 억울함의 원재료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상처 받은 영혼이 너무나 아파서 항상 고함을 지르고 이제는 귀까지 어두워진 아버지, 그 아버지를 그냥 한번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럴 때마다 힘껏 껴안은 내가 아버지의 뾰족한 가시에 찔러서 그대로 가라앉아버릴 것 같은 공포를 나는 아직 이겨낼 수가 없다. 그냥 그게 너무 무섭다.
아버지의 모토는 그냥 열심히 사시는 것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만큼 그렇게 열심히 살면 모든 원하는 결과가 저절로 순리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그 믿음대로 사셨다. 하지만 4형제는 모두 아버지의 마음만큼 살아주지 못하고 있다. 그게 아버지를 패배자로 만들어버렸고 그 상처로 마음이 온통 쪼개지고 갈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가족을, 자식을 마음에서 놓아 본 적이 없는 이 분은 그래서 계속 괴롭다. 괴로우니 몸부림을 치시고 그 몸부림에 또 다른 누군가가 괴롭다. 어떡해야 하나… 어른들의 기준으로 아들들은 어딘가 고장 난 불량품들인 것이다. 그렇게 나도 나 자신이 고장 난 불량품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온갖 죄악이 가득한 듯한 분위기. 잘못들, 잘못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몰라서 방황하는 영혼. 우리 속에는 저마다의 ‘정의’와 행복, 성공이 존재하고 그 방향성은 이미 한참 전에 어긋나 버렸다. 인생에서 결국 방향타를 잡고 자기 항해의 목표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인 것이기에 나는 결국 내 갈길을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를 한번 꼭 안아주고 싶다. 내 안에 온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 온기를 다 아버지의 작고 초라해진 육신에 넘겨주고 싶다. 언제가 학교를 다녀온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그 시절의 아버지처럼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많은 자식들 중에서도 거의 막내이셨던 아버지는 기회에 항상 목말라했다. 그래서 자식들의 공부에 그렇게 열정적이셨고 자신이 못 받은 기회를 우리에게 주면서 우리가 성공으로 자신의 한을 조금은 풀어주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나는 어쩌면 또 다른 자기 증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기회만 있었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는 증명 말이다. 그래서 어린 내 눈에 비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지금의 우리 부자만큼이나 냉랭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때 아버지는 온통 빨개진 눈으로 슬픔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때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그렇게 불쌍하게 연민하고 있었다는 것에 나는 놀랍고 의아했다. 왜 그렇게 싫어하고 원망했으면서도 저렇게 슬픈 걸까?
지금 난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닮아서 똑같은 연민을 아버지에게 느낀다. 그럼에도 무뚝뚝하고 살갑지 못한 아버지의 태도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다. 이렇게 바보 같은 순환고리 속에서 계속 방황해도 되는 것일까? 나의 모든 방황은 사실 아버지의 은혜로 인한 것이다. 내게 기회가 없었다면 나를 아버지가 계속 사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한가롭게 무엇을 사색하고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한참 전에 무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를 계속 붙잡고 있어 준 존재가 아버지인 것도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혼자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되내어 본다. 그리고 언제가 정말 따뜻했던 인간적인 포옹을 아버지와 다시 한번 나누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