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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13. 2021

눈의 여왕

브런치 프로젝트 5.

시대의 질서라는 것이 원래 현실 자체보다는 훨씬 왜곡된 이미지를 대중에게 주입하고 그것으로 인해 사회에서 여러 문제점과 불화가 발생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한 시대에는 그 시대 전체를 포괄하는 하나의 질서가 계속 유지되고, 공유되어 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의 축적이 가속화되면서 트롤의 장난처럼 이제는 가장 기본적인 그 규칙조차 산산이 부서져 이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의 질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하나의 시대 속에 여러 가지의 가치관이 혼재하는 시대이다. 그러다 보니 세대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지역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별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며, 인종마다 다른 가치관을 지니면서 내가 가진 것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모두를 적대시하고 대립하는 그런 혼돈의 시대가 열리고 말았다. 눈의 여왕에서 깨어진 거울 조각이 박힌 사람들은 차갑게 변하고 또 무엇이든 나쁘게 보게 되는데 이것은 현대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깨어진 거울 조각처럼 나의 견해라는 것은 전체 중에서 아주 작은 일부를 반영하는 조각일 뿐임에도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조각만이 진실이고 옳은 것이며 남들이 가진 것은 틀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서로의 조각들을 무시하고 대립하고 불화하면서 반목한다.


작은 마을에 살던 소년 카이에게도 그 불행은 피해 갈 수 없었고 심장과 눈에 이 거울 조각이 박혀버리고 그 여파로 어린 시절 단짝 친구였던 게르디와 멀어지게 된다. 이념과 사상이 인간의 인식 속에 파고들기 시작하면 인간은 본래의 순수한 모습을 아주 쉽게 잃어버린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며 어울렸던 친구도, 자신이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며 애착했던 부모도, 서로 의지했던 형제도 모두 저버리고 그 이념과 사상이라는 허상을 쫓아서 돌진하게 되는 것은 과거에도 있어왔던 일이고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현실의 모습이다.


어느 겨울 소년 카이는 눈의 여왕을 만나게 되고, 그녀는 카이에게 추위를 느끼지 않게 하고 게르디와 가족을 잊게 하는 입맞춤을 한다. 시대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개인화된 우리에게 지금의 현실은 여전히 혹독하게 느껴진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존재가 무엇일까? 우리는 현실 곳곳에서 ‘돈’의 여왕을 만나게 된다. 돈, 그렇다 돈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비루함 따위 아주 쉽게 망각할 수 있다. 나의 무너진 자존심과 자존감 모두 ‘돈’이면 해결이 된다. 나를 무시하는 가족과 친구에게도 ‘돈’은 그대로 만병통치약이다. 쉽게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나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것을 명령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절대반지. 그것이 이 시대의 ‘돈’이다. 돈에 몰두하는 순간 우리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세상에 다시 없이 친한 친구도 사랑하는 가족도 일단 ‘돈’ 벌이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나의 눈은 멀고 나의 귀는 막혔다. 그렇게 우리는 돈의 여왕의 입맞춤에 모든 것을 잊고 그녀의 손길이 인도하는 대로 그녀의 궁전으로 먼 길을 따라 걸어간다. 눈의 여왕은 카이를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가 얼음 조각으로 된 퍼즐을 풀어야지만 이곳을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카이를 찾아 갖가지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게르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 친구를 다시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전진하고 마침내 눈의 여왕의 궁전에 도착하게 된다. 홀로 얼어붙은 강에 서 있는 카이를 마주 보게 되는 게르다. 시대의 발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던져 주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선택의 자유가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시대에 의해 오직 하나의 선택만 허용되던 시절에는 우리는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그 길을 따라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남들이 하는 대로 공부하고,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 속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만고만하게 성장하고 거의 비슷한 삶의 스토리를 갖고 공동체라는 틀 안에서 함께 소통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시대의 큰 질서가 깨지고 붕괴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기존의 세대가 살던 삶을 그대로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기존 세대들과 전혀 다른 삶의 경험들을 가지게 되고 그 다른 경험들이 세대를 소통하지 못하게 만들고 갈등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갈등은 공동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고 이제는 개인 하나하나가 마치 섬처럼 홀로 고립되어 존재하게 되어버렸다. 차가운 고독의 강가에서 홀로 멍하니 서 있는 ‘카이’는 이제 현시대의 개인 하나하나의 모습이다.


이제 이야기는 마지막을 향해간다. 게르다는 홀로 외롭게 서 있는 카이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은 카이의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을 녹인다. 카이도 함께 눈물을 흘리자 그의 눈에 있던 거울 조각도 빠져나오게 된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카이는 게르다와 함께 얼음 조각 퍼즐을 맞추고, 둘은 무사히 얼음 궁전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게르다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은 그 자체로 ‘소통’에 대한 갈망이다. 서로가 가진  따뜻한 마음이 나의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 안타까움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것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무너지게 만든다. 나의 너무나 소중한 가족에게 나의 진심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몸부림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화된 인간의 쓸쓸한 내면세계이다. 서로 다른 논리와 생각들은 가족조차 반목하게 만들고 서로의 등을 지게 만든다. 나의 논리가 ‘옳은’ 것이 되는 순간부터 나와 다른 논리는 ‘틀린’것이 되고 그것은 가족의 논리라고 할지라도 용납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닿고 싶은 가족의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고 안타까움은 점점 커져간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면 우리는 자신의 ‘옳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의 의견은 ‘옳음’이 아니고 수많은 다른 의견 중에 하나인 그저 작은 파편일 뿐이다. 그리고 옳고 그름이 사라진 오로지 따뜻함을 가진 가슴 하나로 상대를 크게 끌어안아줄 용기를 가져야 한다. 게르다의 뜨거운 눈물이 카이의 가슴에 박힌 거울 조각을 녹인 것처럼 우리의 따뜻한 가슴만이 나와 반목하는 모든 소중한 사람들의 가슴에 박힌 그 거울 조각을 녹여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가슴의 거울 조각이 녹아내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때 카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소중한 사람들도 눈의 거울 조각이 녹아내려 자기 본연의 모습을 하나하나 되찾게 되고 그 순간 우리는 그토록 바라 왔던 ‘화해’의 감정을 공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원래 모습을 되찾은 우리들은 더 이상 자신이 가진 내면의 조각만이 유일한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손에 들린 것은 세상의 진리에서 부서져 나온 무수한 조각들 중에 하나일 뿐이며 이것은 싸워서 서로가 서로를 지워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하나의 다른 조각으로 인정하여 함께 끌어모아 보다 총체적인 모습을 만들어가야 할 그런 파편들인 것이다. 서로의 대한 신뢰와 소통 그리고 반목에 대한 화해는 우리의 조각들을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하나의 큰 퍼즐을 맞추는 열쇠로 작동하게 해 줄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카이와 게르다가 그랬던 것처럼 미로처럼 얽히고 복잡한 현실의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 풀어가면서 그 어두운 얼음궁전의 그늘을 빠져나와 마침내 무사히 시대의 혼돈을 벗어 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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