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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치열 Aug 25. 2021

내 인생의 첫책<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부제: 세상에 맞서는 NGO활동가 18명의 진심


"오랫동안 같이 일했고 친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터뷰한 글을 읽어 보니 알지 못했던 사연이 많았어요. 그만큼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지요."


2020년 5월부터 2021년 6월까지 활동가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다. 기사를 본 활동가의 지인들이 한 말이다. 한 달에 두 건의 기사를 쓴 적도 있고, 한 건의 기사를 쓴 적도 있다. 활동가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는 <아름다운재단>과 <더 이음>이 기획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시작할 때는 두어 명의 활동가를 인터뷰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그때,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참 좋은 기획이네요. 연재를 이어가면 어떨까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잠시 망설였다. 활동가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지만, 정리해서 글로 남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재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나 역시 곳곳에서 고군분투하는 활동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활동가가 하는 일의 비중을 줄이고 활동가라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반응은 첫 회부터 폭발적이었다.


[관련 연재] 문세경 기자의 '활동가 인터뷰' (http://omn.kr/1pu7l)


연재 횟수가 늘면서 기준을 세웠다. 많이 알려진 활동가를 피하고, 작은 조직에서 묵묵히 일하는 활동가를 만나는 것으로 했다. 글에는 활동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내가 활동했던 경험도 살짝 비추면서 에세이처럼 썼다. 이렇게 연재된 글이 기대 이상의 호응을 받자, 나는 고무되었다.


활동가들을 '미화'하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인터뷰 글은 다른 글보다 과정이(인터뷰이 섭외, 만남, 정리, 피드백 받기 등) 복잡하다. 거기다 인터뷰이에게 바짝 다가가서 공감해야 하므로 공을 많이 들인다. 그래야 겨우 한 편을 완성할 수 있다. 인터뷰를 마칠 때마다 고민이 되었다. 다음 인터뷰이를 만나면 또 그에게 공감하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렇게 번거롭고 품이 많이 드는 인터뷰를 1년이 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것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일하는 활동가를 미화(?)하는 즐거움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화 속에는 팩트가 있고 애정을 담는다. 글에는 활동가가 겪는 좌충우돌이 있다. 기뻤을 때와 슬펐을 때가 있고, 소진을 겪고 방황했던 시절도 있다. 인터뷰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동안의 활동을 돌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번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쑥스럽지만 좋았다."


활동가들의 이같은 즐거운(?) 비명은 글을 쓰게 한 동력이 되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십 년 동안 활동하면서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은 꺼져가는 내 의욕에 불을 붙였다.


활동가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알릴 때나, 긴급한 사안이 터졌을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인터뷰는 했어도 활동가 스스로에게 집중한 이야기를 할 기회는 없었다.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바빴을까, 얼마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도록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1년 2개월 동안 열여덟 명의 활동가를 만났다. 활동가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조금씩 지쳐갔다. 힘들어서 더 못 만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곧, '다음엔 누구를 만날까?'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이상하게도 활동가를 만나면 만날수록 더 만나고 싶다는 함정에 빠졌다. 새로운 활동가를 만날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활동가일까, 하는 호기심과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처음 보는 활동가를 만나기도 했다. 나를 처음 보는 활동가는 내가 퍼붓는 디테일한 질문을 받고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미련하게도 인터뷰가 끝나고서야 알았다. 인터뷰 중에 잠시 머뭇거리며 어쩔 수 없이 답하던 인터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눈치도 없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할까'에만 집중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온 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약점을 건드리는 질문을 한 건 아닐까, 자존심이 상하는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막상 활동가를 만나면 이와 같은 고민은 온데간데없고 정제되지 않은 질문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맥락에 맞는 질문이 아닌 나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질문을 퍼부은 적이 많았다.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얼마나 숨기고 싶은 자기만의 비밀이었을까, 미련한 나는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야 곤란했을 인터뷰이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무례한 질문을 퍼부어 곤란케 한 활동가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돌이켜보니 그 맥락 없는 질문 때문에 주옥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화자찬도 잊지 않는다.


'디테일한 질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냐.'


이 정도면 심각한 자아도취다. 이러다 정말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는 거 아닐까. 자중하자. 번뜩 정신을 차리고 다음 인터뷰이 만날 생각을 한다. 이번엔 누구를 만날까?


열두 명의 활동가를 인터뷰한 뒤... '기적'이 일어났다  


어느 날 한 지인이 내가 쓴 활동가 인터뷰 기사를 보더니 좋은 콘텐츠이니 한국출판문화산업 진흥원이라는 곳에 원고를 보내보라고 했다. 이곳은 죽어가는 출판시장에 생기를 불어 넣고 각종 출판 사업을 지원하는 정부 지원 기관이다.


작년에도 그곳에 원고를 보냈다가 낙방한 경험이 있기에 올해는 꿈도 꾸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왜냐면 좋은 콘텐츠는 많고, 뽑히는 원고는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인은 내 원고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원고 마감일까지 2주가 채 안 남았을 때 지인은 팁을 주었다. "서문을 잘 쓰세요. 심사위원들은 서문을 보고 좋은 원고인지 아닌지를 판단합니다." 나는 미친 듯이 썼던 서문을 고쳤다. 당시만 해도 열두 명의 활동가 밖에 만나지 않은 상태였기에 책을 내기에는 부족한 원고였다. 하지만 원고의 80%만 완성해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고를 보낸    후인 5 , 드디어 결과 발표가 있는 날이다. 나는 그날 서울에 없었다. 제주도에서 진행하는 5060 여성 트레킹 프로그램을 마치고 제주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이었다. 주머니속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응모를 권했던 지인의 카톡이었다.


"선생님의 원고가 선정되었네요. 축하합니다."


믿어지지 않았다. 내게도 한 번쯤 행운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올 줄은 몰랐다. 기쁨의 환희를 감추지 못해 제주 공항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옆에 있는 지인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서울로 출발 전에 먹기로 한 점심은 내가 쏜다며 호기를 부렸다.


단독 저자로 쓴 내 인생의 첫 책,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 세상에 맞서는 NGO활동가 18명의 진심>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책 표지에는 열여덟 명의 활동가 이름이 한 자 한 자 쓰였다. 한 명 한 명을 떠 올리며 인터뷰할 때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들의 소중한 활동, 가슴 깊은 곳에 쌓인 애절한 마음을 세상에 내 놓을 수 있어서 기쁘다.


설레고 기다려지는 누군가와의 만남. 만날 때마다 데이트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 산 지 1년.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보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이 맛에 글을 쓰고 책을 내나 보다. 무엇보다 <오마이뉴스> '책이 나왔습니다' 코너에 반드시 글을 쓰고 말겠다는 '소원'을 이뤘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다음은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서문에 쓴 말중 일부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지 못했던 단체도 알게 되었다.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고 인터뷰이에게 피드백을 받는 과정은 번거로웠다. 그렇지만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만나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그들이 겪는 고충을, 기쁨을, 보람을 알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더 많은 활동가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굳이 자신의 활동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있기에 아직은 살만한 사회라고, 이들을 외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남은 인생은 이들에게 진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고백한다. 그 빚을 갚는 일에 함께 해 주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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