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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Jul 23. 2019

한여름밤 벌레와의 동침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에서

지난 주말, 인천 무의도에 위치한 하나개 해수욕장에 다녀왔다. 무의도는 인천 중구 무의동이란 지역에 딸려 있는 섬으로 영화 <실미도>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지로 알려진 곳이다. 섬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이 근방에 실미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인천은 구경이나 바다를 만끽하기 위한 휴양지라기보다는 여행을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 정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야 했지만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인천공항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공항에서 섬까지는 차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서해 바다에 대한 환상은 없었던지라 풍광에 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처음 만난 무의도는 나름의 운치와 멋을 지니고 있었다.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 한없이 펼쳐진 검은 갯벌과 수평선을 둘러싼 초록 능선의 조화란!     


밀물은 오후 4시 정도부터 서서히 시작되는데,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 위해서는 20분 넘게 갯벌을 걸어야 했다. 발바닥으로 온갖 생명력을 느끼며 갯벌 위를 걷는 것이야말로 서해 바다의 진정한 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스로 무릎까지 찬 바닷가에 몸을 담그며 떨어지는 해와 더불어 붉어져 가는 하늘과 고요한 산자락을 바라보던 순간 또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북상하는 태풍으로 하늘은 흐리고 이따금씩 비가 내렸지만 그 덕에 무의도의 바다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는 남자친구를 포함해 총 9명의 친구들이 함께했다. 대학시절 엠티마냥 인원이 많다 보니 숙박이 문제였다. 무의도 자체에 펜션이 많았지만 우리 모두 뚜벅이 신세였을 뿐 아니라 하나개 해수욕장 자체에서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멀리 가지 않고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성수기라 비좁은 방 하나도 15만 원에 달했다. 방은 만석이었고 텐트에서 자기로 한 두 명을 제외한 8명은 최대 4명까지 수용 가능한 작은 방 두 개에서 나눠 자기로 했다. 잠자리에 유독 예민한 나는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래, 뭐 하루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무의도에서의 밤을 맞았다.     


본격적인 악몽은 모기의 습격에서부터 시작됐다. 바다와 산을 끼고 있는 곳이다 보니 모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을 터. 출입문을 열 때마다 모기와 나방이 불빛을 좇아 사람을 쫓아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한 차례 모기 사냥이 끝났을 무렵 벽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핏덩이와 모기의 사체가 짓이겨져 있고, 방바닥에는 기절한 혹은 사망한 나방들이 후두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여름 바다의 잔인함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악몽은 잠자리에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다. 새벽 1시 정도였을까? 잠이 막 들려 하던 그 순간, 방을 나눠 쓰던 동생 한 명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나를 깨웠다.    


“악~~~~~ 언니! 빨리 일어나요!!!”    


지네와 같은 형상을 한 벌레 한 마리가 내 머리 옆을 지나 베개 아래로 들어갔다는 거였다. 우리는 고등학생 소녀마냥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벌레를 잡기 위해 베개를 들춰냈지만 부엌을 향해 빠르게 도망하는 벌레를 잡을 용기는 내지 못했다. 그저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 혹시라도 벌레가 다시 나올까 바닥을 발로 쿵쿵 내려치기도 했지만 불이 꺼지기 전까지 벌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밤이 흐르는 사이, 낮 동안 섬이 주던 그 행복감은 어느덧 불안과 공포로 바뀌고 있었다. 벌레뿐 아니라 녹물이 의심되는 수도 상태와 눅눅한 이불, 술에 취해 자꾸만 문을 열어대는 방지기들까지. 급작스레 그 현장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1초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에 섬으로 택시를 부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겠지만 나는 애꿎은 택시 호출 버튼을 누르며 남자친구에게 탈출을 고했다. 술에 조금 취한 듯한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내 말 좀 들어봐. 벌레들도 저마다의 삶이 있는 거야. 네가 네 삶을 살아내듯이 그들도 그저 자기들의 방식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거지. 너를 해치려고 이곳에 있는 게 아니야.”    
“벌레가 내 몸 위로 기어가면 어떡해?”    
“설마 물기야 하겠어? 벌레가 오면 내가 널 지켜줄게.”    


나 역시도 몇 잔의 술과 피로, 스트레스 탓에 취한 상태였는지 어쩐지 그의 말에 안심이 되는 것만 같았다. 곧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 택시 호출을 멈추고 그의 옆에 누워 잠을 청하려 했다. 그날 밤 잠은 얼핏 설핏 나를 찾아왔던 것 같다. 방은 고요했고 벽이나 바닥에서 탁탁 어떤 소음이라도 들리면 나는 아까 부엌 아래로 숨어 들어간 그 벌레 소리인가 싶어 소스라치게 놀라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어느 때에는 방지기들이 신나게 코를 골거나 잠꼬대를 하며 선잠을 깨웠다. 나를 지켜주겠다던 남자친구는 깊은 잠에 빠져 벌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따금씩 시계를 보면 아직도 긴 새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몽 같은 밤이 끝나고 태풍이 지나간 무의도의 아침은 전날의 그것보다 한층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침빛을 맞으며 물안개 자욱한 바닷길을 걸으니 간밤의 피로도 한층 희미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밤새 ‘벌레와의 공생’을 실천하려 애썼지만 벌레의 생을 이해하기에 아직 나의 인내심과 아량이 너무도 부족한 것 같다. 되레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내게 편안한 잠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으며 나 자신을 아볼 수 있었다. 미래에 다시 섬에 가게 된다면 무의도에서 경험한 벌레와의 동침을 교훈 삼좀 더 현명하게 여행 계획을 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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