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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Jun 25. 2019

부고에 대처하는 방법

유순희 씨를 기억하며

<부고알림> 유순희님


퇴근을 바라며 오후를 보내던 보통의 날이었다. 오후 4시 31분. 휴대폰을 울리는 문자는 다름 아닌 부고 안내였다. 이름을 본 순간 눈을 꿈뻑이며 휴대폰 액정을 다시 들여다봤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정말 맞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유순희’는 한 사람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속이 울렁거렸다.


유순희 씨를 알게 된 건 2년 전인 2017년 여름이었다. 취재를 통해서였다. 우연찮게 알게 된 그의 스토리가 무척 흥미롭게 느껴져 그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70세가 되던 해, 그는 못다한 학업을 마치기 위해 50년 만에 다니던 대학에 복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 월남 파병으로 학교를 떠난 그는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타국에서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며 50여 년을 살아왔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못다한 대학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사실 이 나이에 공부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5배는 더 공부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어요. 과제를 하는 것도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모교에 돌아와 공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정말 즐거워요. 몸과 마음도 더욱 건강해졌고요. 가끔은 너무 기뻐서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그때 만난 유순희 씨는 칠순이 넘은 나이였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아침 6시 도서관에 도착해 저녁 7시에 학교를 떠난다는 그는 학업에 대한 즐거움으로 생기가 넘쳤다. 그리고 따뜻했다. 피자 동호회를 만들어 자신의 손주들보다 어린 후배들과 피자를 나눠 먹으며 어울릴 만큼 어떤 권위나 구김도 없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펜팔로 만난 여인을 만나기 위해 브라질까지 날아가 청혼을 한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아내를 향한 그의 사랑은 열렬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써줘 고맙다며 나를 종종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늘 미국에서 사왔다는 페레로로쉐 초콜릿이 들려 있었다. 미국에 갈 때마다 한국에 있는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초콜릿을 사온다고 했다. 초콜릿도 맛있었지만 수많은 사람 가운데 나를 기억해주는 그의 마음이야말로 초콜릿보다 부드럽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온 건 올해 초였다. 이번에는 초콜릿과 함께 두꺼운 책자 하나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그의 자서전이었다. 그는 대학교에 돌아와 공부하면서 하루하루의 생활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며 2017년 8월 28일부터 100일 동안 하루에 다섯 장씩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고 했다. 장장 764페이지가 되는 책을 열어보니 그의 손글씨로 빼곡했다. A4용지에 써내려간 530페이지를 비롯해 그의 사진과 심지어 성적증명서 등이 함께 프린트되어 있었다. 출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으리라. 자전적 기록의 묶음에 가까운 책이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그의 의지와 열정이 느껴져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부고 문자를 받은 날, 퇴근 후 장례식장에 찾았다. 그의 빈소 앞에는 흔한 조화 하나 없고 방문객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도 미국에서 날아오는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고 했다. 한국에 잠시 와 있는 동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 거라고. 다행스럽게도 함께 수업을 듣던 후배 학생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영정사진 앞에서 참았던 눈물이 핑 콧등을 때렸다. 내가 취재 당시 촬영했던 사진 중 하나가 걸려 있었다.


집에 돌아와 책장에 넣어 두었던 그의 자서전을 펼쳤다. <유순희, 너 참 괜찮은 놈이다> , 책의 제목에 웃음이 삐져 나왔다. 책을 받긴 했지만 사실 빼곡히 쓰여진 글들을 읽을 엄두가 차마 나지 않았었다. 읽어 내려가다 보니 그가 걸어온 70년 세월의 조각들이 페이지마다 아스라이 걸려 있었다. 따뜻한 미소로 나를 찾아오던 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부고 소식을 들을 때면 언제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기 마련이다. 그와의 인연이 그리 오래된 것도 깊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마음이 쓰였다. 아마도 그가 보여준 삶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에서 오는 안타까움과 부재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유순희 씨는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때로는 벅차고 두렵기만 한데, 70이 넘었을 때 나 또한 그처럼 스스럼없이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세월의 흔적 속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으로 반짝일 수 있을까. 그가 보여준 삶의 태도를 귀감으로 삼고 아름답게 늙어감으로써 유순희 씨를 기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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