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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Oct 17. 2019

직장 내 폭력, 어디까지 참아야 할까

나를 지키기 의한 최소한의 바운더리

얼마 전 회사 내 윤리위원회에 폭력사건 하나가 제보됐다. 피해자는 동료이자 상급자인 A에게 만성적으로 폭행을 당해 온 B. 자그마치 4년이었다. 그가 괴롭힘을 당한 시간은.


B는 회사에 정식으로 소속된 것은 아니지만 용역 하도급 직원으로 20대 후반부터 8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일했다. 오랜 시간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팀 내에서 대체 불가한 인력이 됐고, 회사는 그의 용역 계약이 끝날 무렵 단기계약 직원으로 그를 채용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상근계약직’ A는 B보다 직급이 높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더 나은 조건에 더 오랜 기간 일했다는 이유로 B의 상사 역할을 하려 했다. 그들은 B가 용역 직원일 때부터 함께 일했는데 그 때도 이미 마땅한 권리인 양 B에게 은근한 갑질을 했다. B를 무시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물론 B가 실수를 하거나 A가 말한 대로 일을 하지 않을 경우 윽박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여러 법적인 이슈가 터지면서 더 이상 상근계약직이라는 직군을 통해 사람을 부릴 수 없게 되자 회사는 일정 기간을 두고 사내 계약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15년가량 상근계약직으로 일한 A는 당연히 B보다 먼저 정규직이 됐다. 내가 속한 회사는 정규직원이 되면 범법 사유가 없는 한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곳이었므로 A는 이제 ‘잘릴 위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 즈음부터 B를 향한 A의 갑질은 도를 넘기 시작했는데, 한때 언어 폭력에 불과했던 A의 갑질은 신체 폭행으로까지 이어졌다.


B의 증언에 따르면 A는 평일과 주말 관계없이 오전 8시 B에 전화를 걸어 업무 보고를 요구했다. 참고로 회사의 출근 시각은 오전 9시다. 두 사람만 있게 될 경우 A는 B가 일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의 뒤통수를 후려치거나 구둣발로 다리를 걷어차는 등 직장 내에서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을 휘둘렀다. 멍자국이 자욱하던 그의 무릎은 계속된 폭으로 여기저기 피가 터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몸과 마음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채워져 갔다.


타인의 폭력에 무뎌진다는 것


B는 4년이 넘도록 A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차마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오랜 용역 생활에 지친 B에게 정규직이 된다는 건 정말 절실한 일이었다. 고용 안정을 보장 받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 근무 조건이 B에게는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기회였다. 먼저 정규직이 된 A는 “자신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정규직이 될 수 없을 것”이라 협박하며 B에게 막말과 폭행을 일삼았다. 그런 과정에서 B가 싫은 내색을 하거나 크게 반항하는 일이 없자 A는 B에게 어떤 행동을 해도 된다는 나름의 정당성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심지어 같은 팀의 리더도, 주변의 동료들도 그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혹은 알면서도 방관했는지도 모르지만 A는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B에게 가혹 행위를 한다거나 소리를 지르는 법이 없었기에 쉽게 알아채기 힘든 상황임에는 분명했다. 나 또한 A와 B를 함께 알고 지내며 가끔은 밥도 먹는 사이였는데, A가 종종 B에게 성질을 부린다는 것쯤을 알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B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며 A를 달랬기에 사태가 이 정도인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A는 보통 “나 아니면 누가 B를 챙기겠어”, “이번에 B 꼭 정규직 시켜줘야지” 따위의 말들을 하고 다녔다. 그래서 나는 A가 겉으로는 성미가 사나워보여도 인정머리는 있는 사람이라 회사 내에서 누구보다 B를 챙겨주는 친구인 줄만 알았다. 정말 너무도 순진한 착각이었다. 타인 앞에서 자신을 위하는 척 떠들어대는 A를 바라보던 B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B의 사연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여 A를 비난했지만, 동시에 A가 그렇게 하도록 방치해 둔 B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어떤 상황이었든 B가 그렇게 당하도록 스스로를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말이야 쉽지, B의 상황이 직접 되어보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참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될 지도 모르는 직장 내 위계 폭력 속에서 저항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나조차도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방과 대적하기보다는 도망하는 편을 택했으니까. 오랜 시간 폭력에 익숙해지다 보면 이에 맞서 반항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엄청난 일이 되어버린다.




나는 직장 생활 2년차부터 1년 반가량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나를 특정해서 괴롭혔다기보다는 그 사람 자체가 워낙 어려운 인물이었던지라 팀원 모두가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사내에서 최연소로 팀장이 된 그는 나보다 10살 많은 여상사였는데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이 보여주듯 일욕심이 무척 많은 스타일이었다. 부하 직원이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일을 해내지 못하면 조언을 해준다거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기보다는 “왜 그것밖에 하지 못하느냐”며 화를 내고 상대방의 자존감을 깎아내림으로써 성과를 끌어내려 했다.


일터에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나 행복이 아닌 ‘성과’였으므로 사무실 밖 보통의 윤리, 예컨대 연령, 역량, 성향 등에 따른 개인의 차이는 그에게 배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화가 나면 욕설을 퍼붓는 것은 물론 책상 주변의 물품을 던지며 긴장감 흐르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우리는 매일 그의 기분이 어떤지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당시 우리 사무실은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는 가끔 친근감의 표시라며 우리를 “이년아”라고 불렀다. 그와 함께 일을 하면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와 같은 ‘언어폭력’이었다. 그때 나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수없이 소리 쳤다.


“이년이라고 하지 마세요.”


“이년이라고 하지 마세요!”


결국 함께 일하던 2년차 계약직원은 견디다 못해 일을 그만 뒀다. 알고 보니 그는 가장 어리고 힘이 없는 계약직원에게는 손으로 머리를 민다든가 하는 신체적 폭력도 몰래 일삼고 있었다. (이 친구 역시 당할 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다 일을 그만둔 뒤에야 우리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팀에서 20년 넘게 일한 상근계약직 선배동료는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며 전근 신청을 했다.


셋이 함께 친하게 지내던 것을 꺼려하던 차에 두 사람이 팀을 나가자 나를 향한 그의 괴롭힘은 한층 심해졌다. 특히 약자일수록 괴롭힘의 강도가 컸기 때문에 계약 직원들이 없으니 팀의 막내이자 가장 만만한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그때 나는 일은 차치하고 그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너무도 끔찍했다. 아침마다 회사에 가는 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마음에 병이 들었다는 진단을 내렸을 무렵, 나는 미뤄뒀던 인사 이동 신청을 했다.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때 왜 나는 하지 마세요,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 마디를 한다고 크게 달라질 일은 없었을 텐데.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했더라면 그도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이년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텐데. 어쩌면 나의 회사 생활이 조금은 덜 끔찍했을지 모르는데.


그때 나는 그 사람 자체가 무서워서, 혹은 직장 내 위계질서에 압도를 당한 나머지, 혹은 그 다음해에 있을 진급 시험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하는 조바심에서 나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그 사람에게 당해야 했던 수많은 폭력과 그 안에서 참고 상처 받아야 했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너무도 미안해진다.


나의 경험을 비롯해 일련의 직장 내 폭력 사건을 돌이켜 보면, 폭력의 가해자는 ‘약자’일수록 더욱 가혹해지기 마련이다. 반항하고 저항하면 손해를 보는 쪽이 어리고, 불안정한, 노동 시장의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비슷한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고 피하는 선택을 했지만 그 선택은 내 삶에서 무척이나 큰 후회로 남는다.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지 못한 그 순간들이 그가 나를 괴롭혔다는 사실보다 내게 더 큰 상처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윤리위원회의 조사가 끝나고 A는 과연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폭력 사태 앞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관대한 보통의 상황을 가정하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날지 모를 일이다. B의 용기 있는 고백이 단순한 경고로만 끝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의 공론화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는 누군가에게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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