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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Nov 01. 2019

이 가을, 마음껏 고독하라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드는 책 이야기

어느덧 완연한 가을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손끝 발끝까지 색을 입은 나무들, 옷깃에 스미는 차가운 바람. 가을이 만든 오색빛 풍경을 찬탄하다가도 문득 알 수 없는 고독감에 빠지는 것은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일 테다. 10월의 끝자락에서 이른바 ‘가을타기’를 하던 중 오래 읽지 않아 먼지가 노랗게 쌓인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프랑스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의 <말하는 떡갈나무>라는 동화책이었다.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 숲에는 500살 넘은 오래된 떡갈나무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말을 하는 마법의 나무라며 근처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두려워 했다. 어느 날 돼지 떼에게 쫓기던 고아 소년 에미는 우연히 떡갈나무에 오르게 되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나무는 갈 곳 없는 에미에게 집이 되어 주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가 된다. 나무와의 교감 속에서 에미는 진정한 자아와 삶의 지혜, 사랑을 배우며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해 간다.


한 차례 바람이 불어와 나무의 잎새를 흔들 때마다 에미는 나무가 자신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했다.


9살 즈음이었을까. 엄마가 사준 동화 전집 중 실려 있던 이 책을 나는 백 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말을 하는 거대한 떡갈나무는 이파리를 흔드는 바람 소리에 대한 에미의 착각 혹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발현된 이미지일 테지만 어린 나를 온갖 상상 속에 빠뜨리곤 했다. 동시에 내 가슴 속에도 한 그루의 떡갈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에미를 동경하고 질투하며 가슴 속 떡갈나무에게 말을 건넸던가.


돌이켜 보면 이 책이 유독 내 마음을 흔들었던 까닭은 유년 시절 내가 겪었던 ‘고독’의 감정을 채워줬기 때문이었다. 어린 아이에게 무슨 고독이란 감정이 있겠느냐만 “산다는 것은 깊은 고독 속에 있는 것”이란 작가 입센의 말처럼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아기에게도 고독이란 감정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시 어른들은 이해해주지 않던 그 감정들을 오직 책 속의 나무만이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책의 저자 조르주 상드 역시 고독한 유년 시절을 겪었다. 4살 때 어버지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 자란 그녀는 사색을 벗 삼아 성장했다. 작가로서 상드는 <말하는 떡갈나무>를 비롯해 가난하고 불우한 아이들이 대자연 속에서 내적으로 성숙해나가며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이야기를 주로 집필했다. 그녀의 외로웠던 유년기는 고독 그 자체를 슬프고도 아름다운 감정으로 변모시켜, 동화라고 하기엔 가슴이 너무도 먹먹해지는 이야기를 쓰도록 한 동기가 되었으리라.

조르주 상드(1804~1876)

누구의 가슴엔들 한 그루 말하는 떡갈나무가 없으랴. 고독은 유쾌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고독하지 않은 인간은 성장하기 어려운 법.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동안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지 않던가.


하지만 고독에만 기대어 살 수 없을 터. 떡갈나무는 더없이 좋은 안식처가 되어 주었지만 어린 에미에게는 상상 속 나무가 아닌 그를 보살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가족이 필요했다. 결국 에미는 마음씨 좋은 이웃을 따라 숲을 떠나게 된다. 떡갈나무와의 소중한 우정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이를 통해 상드는 “인간이 느끼는 고독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해소하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상드 역시 숲 속에 갇혀 외로움을 달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쪽을 택했다. 음악가 쇼팽과 시인 뮈세를 비롯해 72년의 생애 동안 사랑과 우정을 나눈 사람의 수가 2000명이 넘는다니, 고독의 아이콘 상드는 동시에 자유로운 사랑을 전파하는 ‘사랑의 여신’인 셈이다.


에미가 영원히 숲 속에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말을 걸어오는 떡갈나무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도 모두 필요하다. 이 가을, 마음껏 고독하자. 그리고 사랑하자. 사랑의 여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좋은 것은 사랑 뿐”이라는 상드의 말처럼 고독을 사랑으로 치유하는 사랑의 전도사는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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