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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Nov 14. 2019

솔직함이 미덕이라는 착각

마음 속 생각을 모두 말할 필요는 없다

듣기 좋은 말보다는 쓴소리를 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다. 어떤 점에서 이는 맞는 말이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그저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무조건 “잘한다” 빈말을 던지는 친구보다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지적해주는 이가 어쩌면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친구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잘못된 선택’ 이라는 건 과연 누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그것이 친구건 애인이건 부모건 형제이건 간에, 우리는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누군가를 정말 잘 안다고 생각해도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란 모두 다르기에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나에게 옳은 선택이 타인에게는 그른 선택일 수 있지 않은가.


내게도 한때 진정한 벗이라 생각한 친구가 있었다. 20년지기인 그는 평소 남의 이야기를 잘 귀담아 들어주정한 사람이었다. 나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제일 먼저 찾았고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들 털어놓았다. 그가 해주는 조언 또한 진심으로 받아들이려 애썼다. 다소 이상적인 내게 그는 현실적인 조언들을 많이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지혜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듯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성상’에 대한 그의 기준이었다. 그에게 괜찮은 남자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조건이 좋은 남자’였다. 여기서 조건이 좋다는 것은 학벌과 능력, 재력 등의 스펙을 의미한다. 30대가 되고 결혼을 본격적으로 염두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사’자 직업이 아닌 사람 혹은 돈이 없는 사람과는 애초에 데이트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을 찾아 헤매는 내게 말했다.


“우리 이제 더 이상 20대가 아니잖아. 난 네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왜 나는 유년의 내가 안쓰러운 것일까”라는 글에서도 언급했 듯 거의 나에게 최고의 조건이란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지금도 거기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탓에 친구는 내가 그런 기준을 갖고 남자를 만나는 일을 못마땅해 했고, 급기야는 현재 내가 만나는 남자가 어떤 점에서 내게 부족한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된 이유는 그가 모아둔 돈이 없고 대단한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나는 그 ‘조건 좋은’ 남자들이 친구에게 어떤 식으로 상처를 줬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위한다는 그의 조언이 무척이나 마뜩찮게 느껴졌다.


결국 우리의 대화는 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그의 외적인 스펙만을 기준으로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친구가 야속하다며 따져 물었다. 친구 또한 제 딴에는 나를 생각한다고 한 말이었는데 화를 내는 나의 반응을 보고 무척이나 놀란 눈치였다. 그날 그렇게 어색하게 헤어진 뒤 친구는 몇 차례 만나자 연락해 왔지만, 나는 서운한 마음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아 "다음에 보자" 하고 재차 약속을 미뤘다. 그 과정에서 친구 또한 나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거였다. 그렇게 우리의 끈은, 어찌 보면 너무도 쉽게, 끊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속에 있는 말을 다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너를 잘 아니까 나는 너를 함부로 판단해도 된다고, 혹여 내가 말실수를 하더라도 너는 나를 용서해 줄거라고. 너를 아끼고 사랑해서 하는 말이니까.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미숙한 판단에 의한 말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신뢰하고 의지하는 만큼 받게 되는 상처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솔직하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했다가 관계를 그르치는 것을 나는 너무도 많이 보았다. 솔직함에도 어느 정도 예의가 필요한 이유다.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난 이해할 수 있어.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막상 타인의 입에서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을 때 이를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대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함부로 평가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솔직함이 반드시 진정성에 대변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굳이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말을 해야만 직성이 풀릴 지라도 내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다 끄집어냈을 때 되레 듣는 이는 지치기 십상이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때에도 말하기 전 몇 번이고 깊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나는 렇게 생각하지만 나의 그런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내가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그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지 말이다. 조금이라도 나의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솔직하게 말하기보다는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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