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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Aug 06. 2019

왜 나는 유년의 내가 안쓰러운 것일까

결핍과 자기연민은 극복 가능한가

SNS를 자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한두 번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접속해 업데이트되는 피드를 지켜보곤 한다. 친한 친구, 실제로는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지인,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자기검열된' 삶의 한 조각들을 목격하는 것은 어느덧 습관에 가까워진 것 같다. 소셜 미디어 자체가 보통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연출하거나 배출하고 싶은 감정을 쏟아내는 한 사람의 ‘무대’로 기능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알면서도 이를 관망하게 되는 것이 SNS의 이중적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 연출된 삶의 조각들을 별 생각 없이 지켜보는 가운데 문득 '부러움'과 '자기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컨대 완벽한 미모를 자랑하는 누군가의 비현실적 사진을 보면서, 1년에 몇 달은 해외에서 호캉스를 즐기며 일상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비정상적 자유를 목격하면서 부러움에 빠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듯 보이는 내 또래 여성들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 가령, 함께 웃고 있는 단란한 가족 사진을 보거나 60이 넘은 부모님이 여전히 서로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 극복하기 어려운 박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내게는 결핍의 대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다. 80년대에 결혼한 부모님은 그 세대의 다수가 그러했듯 '조건'을 전제로 만나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가난이 싫었던 엄마는 비교적 부잣집 출신이었던 아빠를 만나 먹고 사는 걱정 없이 편안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가족의 등쌀도 한몫했으리라. 애초에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 조건이라는 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변할 수 있기에 예상치 못한 조건의 변화는 결혼 생활을 이어갈수록 두 사람의 관계를 악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사실 그 두 사람이 어떤 결혼 생활을 해왔는지 가늠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충한 채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것 같았다. 마치 연결된 두 섬에 따로 사는 것처럼. 자라오면서 부모님이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사랑을 주고받는 모습을 본 적은 매우 드물다. 상대방으로 인해 절망하고 그 결과 서로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오히려 익숙했다.


어느 가정인들 속사정이 없으랴. 그렇지만 내게는 사랑 없는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무척이나 상처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 상처는 내가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어느 정도 아물었겠지만 때로는 터지고 또 덧나면서 내 마음 속에 더 깊은 상처를 남겨놓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또래 친구들이 늘 부러웠고, 가끔은 그런 환경에서 자랄 수 없는 나의 상황이 슬프게 느껴졌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종종 유년 시절의 내가 무척이나 가엾게 느껴졌다.


과거의 상황은 현재의 나를 형성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나는 구김살 없이 내가 가진 것들에 만족하기보다는 끊임없는 자기반성으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유형에 가깝다. 게다가 돌이켜 보면 내가 연인관계에서 갈구했던 것은 언제나 '서로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었던 것 같다. 학벌이나 집안, 부... 그 사람의 조건이 어떠하건 일단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감정, 신뢰와 배려 같은 것들이 내게 가장 큰 행복감을 준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야말로 관계에 있어 내게 가장 큰 조건이었다. 이는 지금의 나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위와 같은 가치관의 형성은 어린 시절의 결핍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 키스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타 부서 부장이 나를 비롯해 아직 미혼인 직원들을 붙잡고 '결혼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주문한 적이 있다.


"이건 특히 남성에게 해당되는 겁니다. 결혼할 여자의 집에 가서 장인장모가 될 분의 모습을 상세히 지켜보세요. 그 집에서 장인어른이 장모님에게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그게 곧 자신의 모습이 될 테니까요. 결국 사람이란 자라온 환경대로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반드시 행복한 부모 아래서 자란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야 합니다."


술자리에서 그저 웃자고 한 소리였겠지만 그의 말 속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렇다면 행복하지 못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평생 결혼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괜한 자격지심처럼 보일까봐 침묵으로 응답할 뿐이었다. 평소 굉장히 젠틀하고 명석한 상사였고 내가 좋아하던 분 중 하나였기에 그의 말은 내게 더 상처로 다가왔던 것 같다. 나는 결코 부모님과 같은 결혼 생활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지만 그의 말처럼 부모님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은 정말 내게 대물림될 수 있을까?


얼마 전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심리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함께 어울리기에는 굉장히 즐겁고 재밌는 사람이었지만 사실 자신의 속마음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는 타입이었기에, 그가 상담을 받았다는 소식은 꽤 놀랍게 다가왔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상담이었지만 10회 세션을 통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유년 시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내가 가진 가치관, 나의 행동을 규정짓는 어떤 정신적인 것들, 나아가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의 본질 안에는 유년시절의 '무언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입밖으로 억압된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꽤나 유익한 시간이었으므로 마음의 병이 없더라도 한번쯤 상담을 해볼 것을 권했다.


평소 나는 스스로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면 깊이 파인 상처는 일상에서 불쑥, 난데없이 고통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진심 어린 조언에 문득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된 나의 모든 것을 구성한다는 이론이나 이러한 믿음에 따른 일반의 생각들은 내게 절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실 나상담을 통해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어쩌면 나는 유년 시절의 구체적 상황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상처를 인정해야만 현재의 나를 더욱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상처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지워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러나 나를 괴롭히는 막연한 결핍과 자기연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외면해 왔던 내 안의 나와 마주해야만 하는지도 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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