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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Nov 19. 2019

체르노빌에서 본 미래

탈핵을 할 수 없다면

나른한 오후 한 때, 작은 날파리 한 마리가 책상과 그 위에 덮인 유리판 사이로 휙 하고 들어왔다. 순식간이었다. 종이나 얇은 엽서 정도만 들어가는 작은 공간에서 날파리는 잠시 멈칫 하더니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나갈 구멍을 찾는 듯했다. 그는 자기가 어디에 들어왔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거였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투명한 유리 아래 갇혀 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그 작은 생명체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빠져나오기가 더 힘들 텐데, 그는 자꾸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손을 둥글게 말아 날파리가 바깥쪽으로 나갈 수 있도록 책상을 두드렸지만 그는 되레 겁을 먹은 듯 빙글빙글 같은 자리를 도는 것이었다. 그러다 거의 책상 입구까지 다다라 탈출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밖으로 한 걸음 내딛질 못하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들어갈수록 살 수 없는 그 미지의 공간으로.


왜 나는 그 날파리를 보며 체르노빌의 사람들이 떠올랐을까? 유리와 책상 사이라는 정말 상상도 하도 못한 공간에 들어온 날파리의 상황처럼 체르노빌의 그 사람들도 지금 자신에게 닥친 일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꾸 안쪽으로 들어가는 벌레처럼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살에 가까운 행위들을 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최근 에미상 1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화제가 된 미드 ‘체르노빌’을 본 뒤 드라마에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진 책 <체르노빌의 목소리>을 읽게 됐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발전소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과학자, 의료인, 군인, 이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이 책은 저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대표작이기도 하다. 비교적 쉬운 언어로 번역되었지만 문장 하나하나 읽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고역스러웠다.


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죽음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 전례 없는 세계의 비극이 발생했을 때 그 누구도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알지 못했다. 사건의 책임자들은 골든타임이 다 지나도록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정부는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 마냥 기관총을 멘 군인들을 배치시키고 도시를 통제했다. 그 모습을 본 작가는 자조적으로 말한다.


“거기서 누구를 쏘고 누구로부터 방어하려 한 걸까? 물리? 보이지 않는 입자? 오염된 땅 혹은 나무를 쏠 것이었나?”


시민뿐만 아니라 정부 관계자, 군인, 의료인에 이르기까지 체르노빌 사람들이 유리 안에 낀 날파리처럼 허둥대는 사이, 죽음은 문턱까지 와 닿았다. 방사능은 공기 중에 땅 속에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에 깊게 뿌리내렸다. 러시아 환경단체가 수집한 통계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건 후 15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사고 당시 핵 구름이 나흘 만에 아프리카와 중국까지 도달했다니 그 영향은 체르노빌에만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는 20세기 최악의 사고로 꼽히지만 안타깝게도 인류는 과거로부터 충분히 배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2011년 3월,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우리는 25년 전 그때처럼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당시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인적 체계도 없었고 훈련도 하지 않았다”며 “이렇게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리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 두 번의 사건으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직시할 수 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적절한 대응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원전 수는 총 25기로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와 함께 원자력 선진국으로 꼽힌다. 게다가 원전 밀집도는 세계1위 수준. 땅 넓이에 대비해 가장 많은 원전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원전 밀집도는 핵 사고가 일어났을 때 피해 규모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안전관리의 주요 대상이 된다. 아무런 대비 없이 혹여 어느 한 곳에서라도 사고가 나면 그로 인한 피괴력은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한빛원전 허위보고 사태는 ‘안전한 원전’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지난 5월, 전남 영광 한빛원전 1호기에서 열 출력이 기준 제한치의 5%를 초과해 약 18%까지 급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경우 원자로 가동을 바로 멈춰야 하지만 약 12시간이 지난 뒤에야 수동정지됐다고 한다. 사고 관계자들은 원전 재가동이 지연될 것을 우려해 열 출력 초과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굳이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노후 원전 재가동은 우리 원전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더욱이 ‘원전 마피아’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원전을 둘러싼 각종 권력관계 및 비리는 당연하다는 듯 용인되어 왔다.


저자는 책에서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나 또한 미래에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상황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된다. 원자력 의존도가 높은 지금, 원자력 발전을 모두 신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원전을 가동할수밖에 없다면 우리에게도 언제든 원전 폭발이라는 끔찍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안전성에 대한 논의를 음지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가 반복됐을 때 자신에게 닥친 위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안으로만 향하던 그 날파리로 남지 않도록, 체르노빌의 증언이 그저 비명으로 남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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