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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Dec 18. 2019

하마터면 꼰대가 될 뻔했다

대학생에게 한 수 배운 사연

내가 하는 일에 있어 ‘인터뷰’는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20대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돌이켜 보면 적어도 500여 명 이상 인터뷰를 해온 것 같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인터뷰 기술’은 어느덧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을만한 역량이 되었고, 그 사람이 어떤 캐릭터인지와 크게 관계없이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겼다.


좋은 인터뷰를 이끌어내는 비결 중 하나는 ‘질문을 잘하는 것’이다. 좋은 질문은 곧 좋은 답변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가 잡히면 사전에 그 사람과 관련된 최대한 많은 것들을 파악하며 참신한 질문들을 뽑아내려 노력하는 편이다. 이렇게 스스로 준비가 되면 인터뷰를 실패할 일은 굉장히 드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NASA 출신의 도심 항공 연구원을 만날 일이 있었다. 사실 항공 분야는 잘 알지 못하는지라 나는 그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관련된 분야에 대해 '공부'하며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의 개인적 삶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곁들인 질문까지, 이 정도면 꽤 완벽한 인터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인터뷰 당일 마침 그가 다닌 모교의 학생 기자가 인터뷰에 함께 하며 영상을 촬영할 것이란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정된 시간을 요긴하게 써야 했으므로 나는 학생과 중복되는 질문을 배제하고 그들의 동선 및 할애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사전에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현장에 함께할 학생은 아무런 계획도 없어 보일 뿐 아니라 준비한 질문도 적잖이 형편없는 것이었다.(적어도 내 시선에서는) 그래도 해당 분야에서 굉장히 저명한 인물을 만나는 자리인데 너무 준비가 안 된 채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업무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는 내가 먼저 40분 정도를 쓰는 것으로 진행됐다. 제법 쓸만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크게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인터뷰이가 조금 긴장을 한 것 같았다. 준비한 질문이 너무 딱딱하거나 뻔했을 수도 있다. 약간의 아쉬움을 안고 인터뷰를 정리하자 이어 학생 기자가 짧은 영상 클립용의 가벼운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인생의 좌우명’, ‘나의 연애 스토리’와 같은 어찌 보면 맥락에 맞지 않는 질문이었으나 그는 인터뷰 현장을 180도 다르게 만들었다.


어수룩하게 보이던 학생 기자의 강점은 ‘공감력’과 특유의 ‘쾌활함’에 있었다. 그는 먼저 생글생글 밝은 미소로 인터뷰이에게 인사를 건네며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놓았다. 어느덧 인터뷰이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아주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학생 기자는 그의 사소한 멘트에 크게 공감하고 추가적인 질문을 던지며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인터뷰이가 인터뷰를 하는 내내 매우 편안함 마음으로 ‘대화’를 즐긴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나 또한 인터뷰를 할 때면 최대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보다는 제한된 시간에 가능한 좋은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어쩌면 참신하고 번뜩이는 질문들로 인터뷰이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방과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학생 기자의 ‘인터뷰 기술’을 목격하며 나는 내가 세워놓은 기준에 맞춰 적절한 ‘준비운동’ 없이 무리한 경기를 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아랫사람에게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통념처럼 가지고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내가 경험이 더 많고, 아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 습관처럼 배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막상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알은체를 하는 주변의 꼰대들을 비난하는 나 또한 꼰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학생 기자에게 한 수 배운 이날의 경험을 되새기며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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